11일 오후

서울에 다녀왔다. 엘로우 워커를 바꾸는데에도, 모처럼 화사한 프린트의 셔츠를 사는데에도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행복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덧 귀향한지 일년이 지났고, 그 일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다는데 감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음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레드 망고
하나양 덕분에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레드 망고에 다녀왔다. 싸이와 블로그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평가를 보아 왔지만 읽는 것만으로 맛을 상상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구르트에 뿌려진 토핑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가끔 친구들이 레드 망고에 다녀왔노라는 표시를 낼 때마다 궁벽한 오지에서의 내 삶을 개탄할 수 밖에 없었는데. 하나양 덕분에 원철군과 나는 작은 소원을 하나 풀 수 있게 되었다. 여자 친구라는 녀석들은 커피 아니면 술에 열광하는 터라 그동안 우리의 작은 소망을 표출할 수 없었던 것.(각성 좀 하시지요!)

아무튼 꽤나 신기했다. 단순한 아이디어를 사업화시킨 안목도 괜찮았고, 소비자 타켓팅도 괜찮았다. 구체적으로 연구해 본 것은 아니지만 20대 초반 여대생들이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접근법이 꽤나 유효한 듯 싶다. 커피전문점에 비하면 발랄하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비하자면 덜 부담스러운 절묘한 세그멘테이션에 놀랐다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맨날 들러 붙는 남자친구를 떼어버리고 진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서, 카페인과 니코틴, 지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그런 컨셉의 가게에 들어가서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는 나와 원철군은 무엇일까?

프라푸치노와의 화해
다음 코스는 안암동 스타벅스였다. 휴학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참 공사중이었는데 일년이란 시간은 옛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만든다. 예전에 여기에 있던 향나무집은 상당히 맛있는 음식점이었는데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 건물이 통째로 변했잖아. 안암동에 어울리지 않는 6층 건물은 무엇일까? 맞은 편에 IMP가 보였다. 대학 1학년 때 아이리쉬를 마시며 책을 읽었던 곳. 가끔은 기사 정리도 하고 사랑과 꿈을 이야기 했던 곳. 몸을 감싸주는 카우치의 편안함이 나를 반기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스타벅스에 가면 난 보통 세 가지를 선택의 카테고리에 올려 놓는다. 오늘의 커피나 아메리카노 혹은 타조 핫차의 민트향,(오늘의 커피가 까페 베로나나 가제보, 혹은 하우스 블랜드인 날은 마냥 행복해 한다는..) 원철군은 까페 라떼를 즐기고 시정군은 오늘의 커피나 아메리카노, 지선양은 카라멜 마끼야또, 혹은 라떼, 우리 장은 음 역시 마끼야또로군.

그런데 하나양이 고른 것은 카라멜 프라푸치노였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도 시럽을 넣지 않는 나였지만 갑자기 프라푸치노와 화해하고 싶었다. 지난 2년동안 휘핑 크림이 들어간 커피는 절대 마시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면서 왠지 더 이상 그러기가 싫어졌다. 과거의 한 순간에 매달려 기호를 박탈 당하는 것은 어딘지 봉건적이란 말이지.

나에게도 기억에 괴롭힘 당하는 일 없이, 맨날 마시는 쓴 맛의 커피 대신에 떫은 홍차 대신에 프라푸치노를 선택한 그 날의 그녀에 놀랐던 아찔한 당황 없이, 단맛을 즐길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차에 대한 기호마저도 바꿀 정도로 그녀가 누구를 좋아했던지 말던지 나에게도 단맛에 매혹당할 권리는 있는 것이라고… 2년 반만에 마신 카라멜 프라푸치노는 정말 맛있었다. 단맛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싫어하는 척 했던 것이구나. 이렇게 또 하나의 구속이 깨졌다. 커피향이 땀에 젖어든 눅눅한 손수건에 베이는 것을 느끼면서 한달 동안 온몸에 아로새겨졌던 피곤이 풀림을 느꼈다. 이렇게 하나씩 털어버릴 때마다 난 조금씩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로군.

6 thoughts on “11일 오후”

  1. 레드망고…작년 여름에 이화 여대 앞에서 가봤었는데,그때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도 않았고,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어요.올해 웰빙 열풍이 불면서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2. 저도 이번에 간 것이 처음이었어요.
    지금 있는 곳은 워낙 궁벽한 곳인지라 그 흔한 KFC도 없는 곳이거든요.

    정확한 사례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웰빙이
    소비자 로열티를 상승시키거나 구전 효과를 강화시키는 요소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근래의 웰빙형 상품의 특징은 소비자의 소득 탄력성이 높고 가격 탄력성은 비탄력적인 것 같거든요.
    다시 말해 소비자가 가게에 들려 지출할 수 있는 가격의 유의수준이 높다는 것이죠.
    소비자가 가게 안까지 들어서기 위해서 고려하는 기준 중에 웰빙은 덤 정도가 이닐까 싶습니다.
    -요렇게 아는 선배 애널리스트들이 분석하더라구요 ^^-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그냥 한번 가보았는데
    다음에 또 가자면 그리 어렵지 않게 따라 나설 것 같다는 그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커피나 홍차에 더 끌리거든요.

  3. 향나무집 고기가 참 괜찮지.
    먹성 좋은 녀석들과 함께 가기에는 경제력이 안 되지만,
    적당히 고기를 즐기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고급스런 가격과 질에 비해서 약간은 소란스러웠지만..

    없어진 것은 아니고, 장소를 옮겼을 뿐이야.
    뒷골목으로 옮겼으니 아직도 그 맛을 즐길 수 있겠지.
    바램이 있다면 한적한 곳으로 옮겼으니,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점.

  4. 어쩐지 우리 삼천포 같은데. ㅋㅋㅋ
    아무튼 그 뒷골목 어디쯤인지 짐작이 가는군.
    간만에 한번 가볼까?

    그나저나 성신 여대쪽으로도 내가 꿰ŠW고는 있는데
    그것도 한 때인 것 같아. 요즘은 집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고 편하더라.
    심지어는 고기 종류도 마찬가지야.

  5. 어째 별로다.-_-
    공들여서 바꾼 것 같지는 않지만,
    찬물을 끼얹져서 미안하군.
    그러나 사람이 솔직해야지.ㅋㅋㅋ
    좀더 생각해봐.
    ‘Simple is best!!’ ^^

  6. 공부해라!ㅋㅋㅋ
    나 3시간이나 쏟아 부었다고. ㅡ.,ㅡ
    아직 제작 중인데 이렇게 찬물을 뿌리다니…
    오기로라도 겨울까지 걸어놓아야겠다.

    그런데 단순하기로 치면 이것이 더 낫지 않나?
    리플을 달 때를 제외하면 더욱 단순할텐데?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