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ru with love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만큼 뛰어난 적응성을 보이는 동물은 없는 것 같다. 비록 생태적 환경이 아닌 감정이란 한정된 영역에서의 경험에 불과하지만 [오늘]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제가 다르고 일년 정도의 시간은 헤아릴 수 없는 먼 과거가 되어 버린다.

하오 5시, 오후와 초저녁이 경계에 있는 미묘한 시간대에 원철군의 포스팅을 보았다. [A형 여자를 사랑하지 마세요]란 정체 불명의 메모에 대한 짧은 글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냥 넘어가질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언가 변명이라도, 혹은 현재의 나에 관한 설명이라고 해야겠다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정확하게는 23개월 전, A형 여자를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 수많은 글들을 통해 암시를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는데 아무튼 꽤나 진지하게 좋아했던 것 같다. 이기적이고, 무엇보다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처리하는 냉정한(냉철하다고 해주면 좋겠는데 단순히 쌀쌀 맞다는 평가가 더 많다) 내가 짧은 한 마디, 짧은 숨결에 그토록 방황할 줄은 나도 몰랐다. 커피 한 잔이 좋았고, 같이 있을 핑계를 만들기 위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아무튼 시간이 꽤나 흐른 지금에는 정체 불명의 기억만이 남아 있다. 기쁜지, 슬픈지, 혹은 안타까운지 전혀 알 수 없는 경계가 모호한 기억의 덩어리가 하나 존재할 따름이다. 만약 녀석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1년이란 시간을 조금 더 이기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과, 녀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내가 포기한 [녀석과 좋은 친구] 될 기회가 안타깝다.

사실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끝까지 내 마음을 들키지 않았더라면, 쌀쌀 맞고 건방진 내가 아닌 착한 나로 살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갈굼을 일삼아야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늦은 밤 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 친구 한 사람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기묘한 취향과 기호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친구를…

그렇다고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 이상 녀석의 눈부처에 비친 내가 어떤 모습일까 전전긍긍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잃어버린 기회가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볼 따름이다. 그냥 웃으면서 인생이 그런거지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 아쉬운 것들이 많다.

wc! 그나저나 어쩌나? 평생 처음으로 사들인 액자에, 사무실처럼 정결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내 책상에 올려진 액자의 주인은 O형 아가씨인걸?

2 thoughts on “I’m not thru with love”

  1. 조금 전 지하철에서 굉장히 attractive한 사람을 봤다.
    난 아무래도 formal한 옷차림에 끌리는 경향이 아직 강한가봐.
    톡톡 튀는 사람에게도 눈이 머물지만,
    포멀하며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을 만나면
    눈 뿐 아니라, 마음도 한참이나 머물거든.
    말 걸어보고 싶었는데, 현재의 내 모습을 보며 단념했음.
    아직까지 두근두근 거린다. ^^

  2. 원철군…
    20대 청년을 잔소리쟁이로 만들 셈이야?
    이 편력쟁이… 나처럼 몇년씩 한사람에게
    목매인 강아지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빠르게 변하는 것도
    자칫 진심을 흐리게 만들 수 있는 요소로 비춰질 수 있다구.

    지금은 무엇보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아침에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21살 크리스마스 무렵이 생각났는데.
    그때 우리는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고
    지하철에서 선배형과 마주쳤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학원에서 나오는 형을
    바라보면서 꽤나 복잡한 마음이 오고갔는데 벌써 우리가 그 나이더라.
    힘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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