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백문 백답이나 자기 소개서, 면접이나 조금 분위기 잡는 소개팅에서 자주 회자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란 구태 의연한 질문인데 생각보다 이 질문은 고난이도를 자랑한다. 책을 너무 안 읽는 사람에게는 꽤나 당황스러운 질문이고, 책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평생을 살아도 해답을 찾지 못할 영원한 숙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너무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은 딱 나 정도의 사람에게는 명쾌한 대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가 무한의 애정과 존경을 받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츠바이크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기 소설의 대가
사실 츠바이크는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던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 같은 독일어권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노벨문학상으로 필력을 가늠하는 문학관 덕분인지 아니면 전기 소설보다는 순수 문학 작품에 후한 점수를 주는 학풍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츠바이크에게는 그 흔한 한국어 번역 전집 하나가 없다.

하지만 국외에서의 츠바이크의 명성은 20세기 3대 전기 작가로 추앙 될 만큼 높다. 그의 심리 분석은 매우 예리하고 날카롭다. 하지만 인간 심리의 이면을 투영하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되려 모든 열정의 근원이 되는 욕망을 해체하는 그의 펜에 느긋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면 그의 날카로운 심리 분석의 밑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소설의 재미는 작가와 독자 그리고 전기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 사이의 거리에 의해 결정된다. 인물의 행동이나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는 작가는 독자에게 지루함을 더해 주고, 인물의 업적에 금칠을 하는 작가의 전기는 역겨움을 일으킨다. 좋은 전기는 작가가 인물의 내면에 접근하면서도 객관적이야 하고 독자가 인물의 갈등과 선택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생각해 보면 결코 쉬운 조건이 아니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작가가 인물에 새로운 성격이나 부여하거나 사건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전기 작가는 진실이라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제약에 종속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츠바이크에게 만큼은 이런 여려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인물의 영혼을 이해하려는 그의 노력은 너무나 숭고해 전기를 통해 다루고자 하는 인물뿐만 아니라 츠바이크 그 자신마저도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과 전기를 읽다 보면 유독 영혼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맴돈다. 인생은 1%의 노력과 99%의 타이밍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기회주의자인 나에게 영혼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쓰지 않는 생소한 단어지만 츠바이크의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유독 영혼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 영혼과 영혼을 이끄는 열정에 대한 츠바이크의 탐구는 매우 진지하고 그 진지함을 통해서 난 내 삶을 새로운시각에서 바라볼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은 논평하기 매우 어렵다. 인간의 영혼과 열정에 관해서만큼은 지금까지의 짧은 내 삶으로는 제단할 수 없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츠바이크의 전기 소설을 다시 음미할 때쯤이면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지만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할 말이 많다. [주옥 같은]이라는 단어가 진짜로 어울리는 단편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츠바이크의 글이 될 거라고, 체호프나 모파상의 단편 소설보다 더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소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츠바이크의 소설일 거라고, 진짜 제대로 된 사랑을 해봤고 로맨스와 사랑, 인간의 가치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하는 작가는 츠바이크였을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츠바이크의 사진을 보면, 그의 편지를,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난 무의식적으로 움츠린다. 벌써부터 세파에 찌들어 냉혹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허탈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숭고한 것은 없는데. 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을 사랑한다. 그의 조금은 우울하지만 격조 있는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과 열정, 행복과 고난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의 노력을 행간으로 느낄 때마다 난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운명이란 거친 힘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애쓰는 츠바이크의 뒷모습을 발견 할 때 [진짜 작가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좌절하게 된다.

7 thoughts on “슈테판 츠바이크

  1. 난 츠바이크가 인물에 대해 서술할 때
    약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 좋아.
    내면을 들여다 보면 대단하다라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뻔히 보이니까.ㅋㅋㅋ

    그나저나 이 글 보니까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을 다시 읽고 싶은 걸..
    그런데 책을 선물했더니 없다. 다시 사야겠군.

  2. 그런데 아주 약간이잖아?
    푸세를 다룬 그 책만 제외하면
    냉소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책은 못 읽은 것 같은데?
    아니군. 30년대에 접어들어 전제주의에 대한 냉소는 짓게 깔려있군.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이 아닌 주변의 특정 인물에 대한 냉소가 아니었나?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보다 더 많은 작품이 있으니
    시간나면 꼭 읽어 보게.
    국내에 나온 전기만 해도. 에라스무스, 발자크, 마젤란, 메리 스튜어트,
    카스텔라노등이 있다구. 아직까지 마리 앙투와네트는 나도 못읽어 봤음
    해석서는 학교에서 하나 봤는데 제대로 간행된 번역본은 아직 발견 못했다.

    기록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의 소설을 보면 이 남자 정말 제대로 사랑을 해봤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고. 이 여자 저 여자에게 사랑도 많이 받아봤군.
    젊은 시절에는 화려한 로맨스의 주인공이었을 테고.
    유쾌하고 위트있는 말솜씨에 안 넘어갈 사람이 없었겠군 하고 말야.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하라구.

  3. 마젤란과 발자크는 벌써 읽었다구.ㅋㅋ
    그렇지만 이 양반의 저서를 제대로 번역한 인물이 별로 없는 듯.

    발자크를 보면 그가 받은 사랑의 단편을 볼 수 있더라.
    섬세하고도 세밀하게 묘사를 해놨고,
    특히 감정을 표현한 부분은 압권이었다고 기억된다.
    아무튼 몽테크리스토 백장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의 설레임은 없었지만
    진정 끌리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지. ^^

  4. 도서관에 가봐.
    판형은 낡았지만 제대로 변역된 것이 있다구.
    안인희인가 그 사람이 번역한 것은 대체로 엉망이지.

    그런데 왜 갑자기 몽테크리스토 백작하고 비교?
    개인적으로 신문 연재 소설을 매우 좋아하긴 하지만
    어째 비교 대상이 부적절하다!

  5. 발자크 평전은 무척 기억에 남는 좋은 ‘전기문’이었어요.
    그 분야에 상당한 감수성을 가진 작가라고 보이더군요.
    다른 것까지는 못 읽어봤지만요.
    단편 중에서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라는 걸 읽어봤었는데…
    꽤 소설도 잘 쓰는 작가였는데 말이예요.

  6. < 모르는 여인으로부터의 편지>가 재미있으셨다면 < 아내의 불안>이라던지 < 일급비밀> 혹은 < 감정의 혼란>같은 소설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츠바이크의 평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발자크의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푸세를 다룬 <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이 제일 잘된 것 같더군요. 사실 이 분야에서의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라는 말이 옳은 것 같아요.

    역사 소설이 아닌 전기 소설로 이만한 작품을 찾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요.

  7. 책이 없는 삶이 곧 죽음이로군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집을 찾아보려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확실히 ‘없군요’.
    흥미 겸해서 읽어본 게 ‘마리 앙투아네트’였는데, 그 책에서 얻은 감상이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물론 그 책에 대해 쓰신 포스트도 읽어 보았는데, 역시나 가장 마지막 장면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과 혁명의 공허함, 인생의 공허함. 심지어 작가의 자살까지도 어느 정도 예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인터넷 검색할 때마다, 참 보고 배울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엔 마리우스 잰슨을, 또 이번엔 슈테판 츠바이크를 예리하게 분석해 낸 분을 만났군요.
    아무쪼록 즐거운 독서생활 하시길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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