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오시구려. 나의 친구

비자발적인 금주 상태에서 나를 구해주던 절친한 친구가 내일이면 떠나게 된다. 본인말에 의하자면 내년 봄에는 귀국해서 졸업하겠노라고 명랑한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의 금주 상태는 해를 또 한번 넘길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녀석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기억의 무게에 펜이 똑바로 나아가지 않는다. 너무나 즐거웠던 내 삶의 축제 기간이 떠올라 마냥 흐뭇하다. 21살에서 오늘까지 녀석이 있었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감정들이 머리 속을 맴돈다. 밤새 이야기 하더라도 밑천이 들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았던 우리의 사건들. 그 사건 속에서 울고 웃던 우리…

작년 11월 주영군이 출국했을 때 녀석은 나에게도 이런 글을 써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때가 되면 써주겠다 약속했지만 사실 녀석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은 너무 어렵다. 녀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난 지난 몇 년간 나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과 실수 역시 같이 떠올리기 때문이다. 즐거웠던 순간만큼이나 괴로웠던 순간도 있었고, 행복했던 순간만큼이나 불행하던 때도 있었기에…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한편의 희비극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스쳐지나간 수많은 운명의 희롱조차도 우리가 누린 축제를 구성하는 어떤 요소였다는 깨달음만큼이나 명백하게

사실 이 녀석은 우정이 性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녀석이다. 청소년기를 남학교에서 보낸 나에게는 이성이란 애정을 바치거나 헌신할 대상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편견 때문에 평생 친구가 될 수 있을 수많은 사람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녀석을 만난 뒤로 이런 내 편견은 시나브로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녀석과의 우정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은 이런 소소한 깨달음만이 아니다. 녀석을 알게 된 이후로 난 여유를 알게 되었고, 순간이 주는 기쁨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등에 엎혀 잠꼬대를 하는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갈지 자로 휘청거리면서도 한잔 더 마시자 투정 부리던 목소리도 생각나고, 기분에 취해 잡아 보았던 작은 손도 떠오른다. 공포 영화를 볼 때면 잡아당기던 내 셔츠의 소매도 생각나고, 배고파 기절하겠다던 그 표정도 떠오른다. 환하게 웃던 모습도, 피곤에 절어 있던 모습도, 눈동자에 맺힌 눈물도 생각나고, 사랑이 가져다 줬던 햇살처럼 밝은 미소도 떠오른다.

어느 날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녀석을 보면서 녀석의 황금기는 지금이구나 하고 생각하던 때가 기억 난다. 강의실에서 같이 수업을 받았던 일도, 책 한구석을 빡빡하게 채웠던 필담도 떠오른다. 졸려 기절하던 모습도, 나란히 앉아 꾸벅꾸벅 졸던 일도, 한 주의 수업이 끝난 주말에는 술생각에 기묘하게 얽혔던 시선도 생각난다.

졸다 깨어나 엉킨 머리 좀 풀라고 잔소리 하던 내가 보인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 누구 좋아하는 것 같아’ 하고 말하던 내 모습도, 늘 안타까웠던 녀석의 남자 친구들도 보인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그때가 아니겠지만 내 삶의 황금 시대는 그 때였노라고 되뇌이는 내가 보인다.

나의 절친한 지기인 WC군은 본인이 녀석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3년이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제야 얼마나 본인이 절실하게 녀석을 사랑했는지 깨닫고 힘들어 하는 녀석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두 녀석 모두 나의 절친한 친구인 이상 어느 한 사람의 편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기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 지겠지]란 말을 가장 깊게 믿는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난 철저하게 묵언계를 수행한다.

WC군의 블로그에 포스팅 되는 글들에서 녀석의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녀석과 내가 공유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문자화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읽을 WC군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어떤 생각을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우리의 훈련은 이럴 때 안타까움을 더한다.

언제인가 난 내 이름을 걸고 녀석에게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유치하지만 [상황에 관계 없이 무조건 네 편이 되어 주겠다]는 약속인데 술에 취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녀석의 기억 속에서 내 약속이 살아 남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녀석이 내게 해준 [시간이 흘러 변해버린 나를 발견해도 여전히 친구로 남아주기]란 약속은 또 어떤 운명을 밟게 될지…

녀석이 돌아올 때쯤이면 각자의 목표를 위해 번잡한 이십대 중반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서른에 임박한 우리를 발견하면 얼마나 허탈해질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지고 또 나이를 먹고 그러다 보면 우리가 누렸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흐릿해질까? 괜시리 우울해진다. 잘 다녀오시구려 나의 친구.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 할 수 있는 나의 친구 지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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