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Passant

이른 아침, 리퍼러를 보다가 심장이 멎었다. 테터 센터를 통해 들어온 하나의 흔적 때문이었는데 그 흔적은 ‘초희에게’였다. 만약 ‘초희’라는 검색어였다면 이렇게까지 당혹스럽지는 않았을 것 같다.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기 힘든 이름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희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런 글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고 있어야만 검색할 수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그녀 밖에 없다.

만약 일반 검색 엔진이었더라면 흔적을 쫓아 꼬리를 잡아 보려는 시도조차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터 센터는 블로그 사용자를 전제로 한 메타 사이트다. 어림 잡아 500여 개의 블로그만 돌아다니면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동명인의 존재 가능성 때문에 확신이 아닌 확률 게임 될 공산이 크겠지만 단 1%의 확률도 내가 이런 우행을 저지를 수 있는 충분한 사유가 된다.

갑자기 그녀의 삶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오늘날 내가 지닌 취미와 기호의 원주인이었던 그녀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한 일이었다. 마음이 정해졌다면 하룻밤이면 충분히 그녀의 삶에 다가갈 수 있다. 사람은 변해도 문체와 그 속에 담긴 호흡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 짧은 문장으로도 그녀를 찾아낼 수 있다 믿었다. 눈이 멀어도 목소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닉네임으로 대표되는 온라인의 자유로움도 본질을 감출 수는 없는 법이기에.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 온 글 중에 가장 우아한 문체를 구사하던 내 옛사랑의 삶을 보는 것은 되려 나에게 크나큰 고통이 되리라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보지 못했음에도 오랜 시간을 방황했는데, 그녀의 삶을 지켜보면서 내가 [온전한 나]를 지켜낼 수 있을까? 겨우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만들었는데 또 다시 서푼 짜리 자존심이 되지 않을까? 그녀의 삶에 내가 끼어 들 자리가 없을 때. 사랑이 아닌 친절한 성격에서 우러 나오는 답례를 받았을 때 난 섭섭해 할지도 모른다.

[#M_ 그대가 초희라면 | 착각이라면 낭패, 당혹, 부끄럽겠군 |

난 여전히 그대로야. 똑같은 키에,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버릇. 집에 내려오고 나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란 걸 하고 있고 독서는 많이 줄였어. 홍차는 에프리콧을 즐기고 있고, 커피는 신맛을 선호하고 있어. 체스는 백을 잡고 1600 수준으로 떨어졌고, 매일 12시에 잠들어서 7시에 깨어나

참. 그 펜촉 잊어버렸어. 다른 포스트를 읽다가 발견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말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그냥 마음이 무거워서 훔쳐가는 것을 방치했어. 열 아홉과 스물 사이였는데 그때는 마음이 가벼워지고 싶었거든. 하지만 지금도 혼자 아쉬워 하곤 해. 요즘은 연필을 애용하고 있는 까닭으로, 게다가 노트북을 항상 켜놓고 있기 때문에 펜으로 글 쓰는 버릇은 사라져 버렸지만.

사실 작년 1월에 그렇게 가버린 것 아직까지 후회하고 있어. 그렇게 가다가 청구에서는 죽을 뻔 했고 결국 그 녀석하고도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지. 자업자득이라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처음에는 마냥 힘들어 했던 것 같아.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반복되는 상황에 화가 나서 스스로에게 못할 짓도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적당히 구질하고, 적당히 주름진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은 것 같아.

넌 여전히 그 사자 머리를 하고 있는 거야. 늘 적당한 길이의 생머리만 본 나로서는 조금 충격적이었지만 잘 어울리더라. 사실 그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직감했어. 무슨 일이 어떤 내용일지도 어느 정도 짐작했고… 참 너 보고나서는 마농 레스꼬를 또 읽었다. 그냥 별 재미없는 소설인데 괜히 읽고 싶어져가지고 말이야.

그냥 지켜봐 줘. 호언장담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다짐하고 있어. 네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자세를 바로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아! 그리고 생각만 해도 힘이 나는 사람이 또 다시 내 삶에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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