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소소한 편벽

혹자에 의하면 사람마다 기억을 담아두는 장소가 다르다고 한다. 어떤 이는 작은 소품에 기억을 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달력에 기억을 담는다. 하지만 내 경우 기억을 담아두는 장소는 늘 한결같이 책장에 고정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책장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시간 내가 살아온 시간이 아스란히 보인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부터, 오늘날 몰두하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수많은 책들이 나를 반긴다.

하지만 단순하게 내용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책갈피를 넘기던 당시의 상황과 감동까지 책이란 물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책을 빼서 보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이지만 단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서지의 감촉과 활자 모양, 그 내용을 읽었던 당시의 감상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어쩌면 나에게 읽는다는 [생각하다, 보다, 느끼다, 웃다, 슬퍼하다]를 모두 내포하는 나만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어디에 가던 가방에 읽을 책 한권을 빼놓지 않는 버릇도 어쩌면 이런 기억의 연장 선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특정한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행동만으로도 이런 저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비록 하루종일 낱장 하나 넘기지 않은채 그저 가지고 다니기만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책이 없는 내 모습에 당황스러워 한다. 성능 좋은 이어피스와 포터블 플레이어, 그리고 책을 소지 하지 않는 나를 목격하는 일이란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란 고정관념이 어느 사이엔가 친구들 사이에서 중론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근래의 난 간서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 하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찾아 읽기보다는 한번쯤 지금까지 읽어온 것들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무한정 쌓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꺼내 볼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친 것 같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나에게는 책에 관한 소소한 버릇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한번 잡은 책은 무조건 인지가 나올 때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문이 마음에 든 책은 반드시 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읽어 싶어지는 책들이 갑자기 늘어날 때에는 믿음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숫제 마음이 아프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저 녀석들을 외면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난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불쌍한 남자의 표정을 짖는다. 추억을 잃어버린 기억 상실증의 남자처럼,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처럼, 거울에 비치는 내 표정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내 인격을 장악하고 있는 이기적이고 잘난 척에 중독된 영혼은 결코 이런 표정에 속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일반인의 순수한 시선으로 즐기는 문학조차 이 인격에게서는 엄격한 검열 대상이다.

뭐야 이런 이야기를 읽을 것이면 차라리 못 다 읽은 실용 서적을 읽으라고. 저번에 롬바르트 스트리트의 뒷부분 2챕터 이해못하고 넘어갔잖아. 콜로서스는 3장 남았고, 자기조직의 경제는 사놓고 손도 못대고 있잖아.

선물 받은 문화상품권과 지갑에 남은 잔돈으로 샨샤의 소설을 사려던 난 이 인정머리 없는 영혼에게 오늘 또 지고 말았다. 아무리 예술과 거리가 먼 전공이라지만, 평생 동안 문학과 예술의 창조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것이 존재하는 법이고, 써먹을 수 있는 간결한 형태의 지식이 아닌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을 때가 종종 찾아온다는 사실을 이 영혼에게 인식시키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도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영화 한 편을 나눌 이유와 아름다움을 탐닉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는데 이 영혼은 쉽고 간결하게 No라 말한다. 주어진 일들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하기 싫은 일들로만 가득 채워진 일상을 살게 되리라는 신곡의 지옥편에나 나올 법한 협박에 난 오늘도 무릎을 꿇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딱 하나만큼은 너그러운 영혼이니까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고 애써 자위하면서…

3 thoughts on “책에 대한 소소한 편벽”

  1. 어렵지만…한 몸의 두 영혼이 함께 충족하고 공유 할 수 있는 삶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텐데…우리네 삶이란 늘..이렇게 變拍의 숙명을 타고나나 봅니다..그래도 살아야할 가치가 있는, 이 세상 60억 인구 중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이거 하나만은 늘 각인하고 살기를…
    그대에게..혹은 다른 불특정 다수에게..그리고 나에게…
    p.s.”.이번주에 가을 절정의 끝자락을 만끽하세요..”
    어제밤 TV기상예보관의 멘트입니다…
    어디..가까운데라도 가셔서 거부하는 몸짓의 나뒹구는 낙엽들의 상처를 듣고 오심이 어떠런지요..’
    모 저야 매일 하는짓이 그런짓이라서….’

  2. 오디세우스가 사이렌의 유혹을 물리쳤듯이 지금은 모든 유혹을 견뎌야 하는 시기겠지요.

    나는 얼굴을 붉히는 저 모란, 흔들리는 저 나무, 속삭이는 저 바람이다.
    나는 순례자들을 하늘의 문으로 인도하는 저 가파른 길이다.
    나는 정화시키는 뜨거움이고, 조각하는 아픔이다.
    나는 계절을 가로지른다. 나는 별처럼 빛난다.
    나는 우수에 젖은 인간의 미소이다.
    나는 산의 너그러운 미소이다.
    나는 영원의 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이다.

    샨사. 측천무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3. //Julia
    낙엽이 발목을 붙잡는 느낌은 날마다 즐기고 있는 걸요. 성질 급한 녀석들이 중력에 몸을 맡긴 10월 초부터 꾸준하게 보고 느끼고 있답니다.
    그리고 저 포스트에는 친구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중의법과 과장법이 사용된 문장이라 실제의 기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책보다 더 매력적이고 즐거운 것이 삶에 나타났다는 일종의 선언지이죠^^

    //sooaim
    오딧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친 방법이 있었군요.^^
    활대에 묶인 오디세우스처럼 편법을 동원해야 겠어요.
    집에 들어가는 길에 작은 서점에 들려 딱 한시간씩만 읽다 들어가면 되겠네요.

    편의점에 들렸다가 도입부를 읽게 되었는데
    섬세하고 단아한 문체에 끌리더라구요.
    보통의 작가들(제가 읽은 작가는 거의 남성이었어요) 역시
    섬세하고 단아한 문장을 가진 경우가 있긴 하지만 씹는 맛이 다르더라구요.

    언어로 표현하긴 힘든데 조금 더 부드럽고, 격의 없다고 해야할까요.
    메마른 듯 건조하지만 씹어보면 과즙이 풍부한 과일을 맛보는 기분이었어요.
    물론 제가 읽은 부분이 책 전체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번역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위험과 가능성이 존재하긴 하지만
    되려 진실을 확인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솟아 나더라구요.

    지금은 <바둑두는 여자>까지 손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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