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ard from UNC

카드가 도착해 있었다. 평소라면 옷과 소지품,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일테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이프로 겉봉을 잘라냈다. 아니 익숙한 필체를 보는 그 순간부터 기억은 꽤나 먼 시간을 유영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어느 이면지를 채우고 있는 빡빡한 메모가 연상의 시발점이었지만 2살이란 나이 차에도 불과하고 이제는 친구처럼 익숙한 ‘어린 친구’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는 것은 꽤나 흥미 진진했다. 녀석의 스무살 2월도 기억났고, 심지어 머리 스타일의 변천사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마저 기억났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기억났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이럴 때 유쾌한 일이야 하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내 우리가 공유했던 ‘그곳’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에는 가능하면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내 이십대 초반의 8할을 차지했던 ‘그곳’이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난 아직도 내 자식처럼 사랑했던 ‘그곳’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누구나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해주는 부분이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는 부족했다는 인식이 앞선다. 내가 조금 더 집중력과 능력을 발휘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곳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곳’에 붙잡혀 놓쳐 버린 기회를 아쉬워 한다. 얻은 것도 많았지만 잃은 것도 많았던 ‘그곳’이기에 마음은 아직도 복잡하다.


사실 난 그곳에서 좋은 형들과 좋은 친구, 이제는 친구처럼 편안한 동생들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기회를 얻었고, 나이보다 넓고 조숙한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나를 믿고 신뢰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어엿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배웠다. 하지만 덕분에 사랑을 잃었고, 몇가지 소소한 기회를 잃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언제든지 회복 가능한 것들이지만 회복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쁜 카드다. 정갈하면서도 읽기 좋은 필체만큼이나 관심이 듬뿍 담긴 행간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카드의 채식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참이나 웹을 뒤졌다. 하지만 채식의 의미보다도 ‘친구’의 관심에 더 행복하다. ‘그곳’에서 잃은 것들보다 얻은 것들의 가치가 더 크고 소중함을 지난주에 이어 오늘에도 깨닫는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며, 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만난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립다.

4 thoughts on “A Card from UNC”

  1. KUBS에 계셨었군요~ 뭐 KUBS랑은 성격이 다르지만(훨씬 작고요 ^^;) 어쨌든 한건물안 식구네요(웃음)

  2. 아! 방송국은 아니었구요. 저희 쪽에서는 단대를 KUBS로 불러요.
    연구원 소속이어서 홍보관이 아닌 경영 신관에 있었답니다.^^

    지원은 꽤나 많았지만 인원 제한이 있어서 다른 곳에서 일하던
    친구들 보다 더 험난한 길을 걸었죠. 모처 편집장 달고 한가하게 굴러다니던
    친구 녀석이 어찌나 부럽던지. 하지만 전공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수업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느낌이 딱 음악감상실인데요. 시간 날때 아주 가끔 들리곤 했는데
    한두번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3. 그렇다면 경영대 쪽인가보군요;; 전남친 따라 경영대 가다가 경영 신문 보고 ‘여기선 이런것도 만드네’라고 했던 기억이;;

    동아리 활동에서 얻는건 정말 큰것 같아요. 힘들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고.. 요즘은 다들 동아리를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저로써는 이해가 안가죠 ^^; 힘들어야 그만큼 느낄수 있을텐데요.

    감상실.. 이젠 운영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조정실에서 운영은 한답니다. 놀러오시면 차라도 한잔.. ^-^

  4. 예^^ 허술해 보여도 58년에 만들어진 꽤나 오래된 곳이랍니다.
    조지훈 선생님의 축시도 헌정받았구요
    (이런 자랑이 팔불출 짓인 것은 압니다만… 버릇이예요)

    요즘 cut line 학점이 올라가는 추세라서 다들 동아리 보다는
    학점에 신경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음감실은 언제 학교 놀러가면 꼭 한번 들려야 겠네요.
    늑대 같은 친구 녀석들이 ‘차라도 한잔’이라는 코멘트를 보고
    앞다퉈 감상실 문턱을 닳게 하는 것을 아닐지 걱정은 조금 됩니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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