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conda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공황에 이르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역사에서는 <잃어버린 세대>로 규정한다. 그들은 대체 무엇을 잃었기에 이런 명칭으로 불리는 것일까?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잃어버린 세대>를 위한 문학적 기념비를 세웠다. 그들이 꿈꾸던 <아메리칸 드림>과 그 꿈이 무너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골콘다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골콘다의 주인공들은 <잃어버린 세대>가운데에서도 시대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활동했던 당시의 월스트리트는 이 책의 제목처럼 [지나가기만 해도 부자가 된다던 인도 남동부의 도시] 골콘다였다.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월스트리트에 몰려들었고, 주식시세기에 떠오르는 흥분을 공유했으며, 활황장이 가져다 주는 짜릿한 곡예에 도취되어 있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던 곡예가 끝나던 날. 월스트리트는 더 이상 황금을 안겨다 주는 도시 골콘다가 아니었다. 시장의 폭락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뇌리를 경제적 공황보다 더한 정신적 공황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세기의 상승이 멈춤과 동시에 <잃어버린 세대>는 그들의 꿈을 영원히 잃어 버렸다.

골콘다의 주인공인 리차드 위트니는 이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다. 증권거래소의 이사장이었고 모건은행의 거래중개인(브로커)이었던 그는 대공황 시기에 월스트리트의 <백기사>였다. 하지만 그는 몰락했고, 몰락의 뛰어넘어 파렴치한 범죄로 모든 명예를 잃어 버렸다. 위트니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까? 단지 그가 탐욕스러웠기 때문에? 탐욕은 이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간결한 언어다. . 위트니는 수많은 <잃어버린 세대>와 마찬가지로 단지 꿈을 꾸고 있었을 뿐이다. 다만 아쉽게도 위트니의 꿈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었던 꿈이었다는 것 그리고 증권거래소의 이사장이었던 그마저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헛된 꿈을 꾸었다는 사실은 이들이 왜 역사에게 <잃어버린 세대>로 규정되는가를 설명하는 가장 명백한 근거다.

이 책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위대한 위트니>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훗날의 역사가 우리를 새로운 <잃어버린 세대>로 규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Modified 2004. 10. 31
위의 본문은 3년전에 썼던 리뷰.
오랜만에 골콘다를 집어 들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골콘다에 묘사된 상황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정도의 유사성이 느껴진다. 이 책의 숨겨진 의도처럼 위기는 본질을 매번 다른 가면으로 숨긴 채 찾아온다. 인류가 경험한 모든 경제 위기의 시초는 신용 경색과 신뢰성 상실이었다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경제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합리성과 profit이 지배하는 것 같은 이 영역도 알고보면 기본은 상호 신뢰다.

믿을 수 있는 거래 상대라는 사실을 반대편에 인식시키는 것. 이것은 거래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이고 협상의 전제조건이다. 골콘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행간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은 믿을 신뢰성과 이것을 지키기 위한 비용 혹은 이것을 잃은 대가다.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도 이 교훈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다.

시장의 교란 요인을 양산하는 정부와, 관망하는 기업, 혼란 속에서 자기 파멸의 덫에 걸린 가계.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교훈은 항상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교훈 속에서 교훈을 뼈에 새기고 실천하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교훈은 듣기 지겨운 카산드라의 예언이 되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