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sham’s & Goldsmith’s

국사 문제집을 풀다가 려말 권문세족들이 교초 때문에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는 지문을 읽었다. 원조가 주원장에 의해 외몽고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교초에 의존하던 권문세족의 자본 유동성이 악화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재작년에 써놓았던 [그레셤의 법칙]이 떠올랐다. 어째서 잇속에 밝은 권문세족들이 그레셤의 법칙을 몰랐을까?

[#M_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그레셤의 법칙| less…|

사람들이 경제학의 법칙가운데 가장 쉽게 기억해 내는 법칙이 바로 그레셤의 법칙이다. [수요 공급법칙]과 함께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얼마 되지 않는 경제학의 법칙 가운데 하나니까 그 유명세는 따로 지적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실제가치보다 액면가가 높은 저질의 화폐와 실제가치와 액면가가 같은 양질의 화폐가 있을 때, 양질의 화폐보다 저질의 화폐를 먼저 사용한다는 그레셤의 법칙. 그러나 과연 이 법칙을 최초로 내건 사람도 그레셤 본인일까?

16세기 영국의 금융가 토마스 그레셤은 런던 거래소의 설립자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고문관이었던 그는 1558년 악화를 다시 주조하여 외국환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구상을 설명하기 여왕에게 보낸 편지 첫머리에서 “Bad money drives out good”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것을 1858년 H.D.마크로드가 [그레셤의 법칙]이라고 명명한 것.

하지만 그레셤보다 역사적으로 더 먼저 이 사실을 언급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14세기 경제학의 일인자 니콜 오렘 주교다. 오렘은 화폐 정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신뢰할만한 양질의 화폐는 상업에 이롭다고 말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최초로 그레셤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레셤의 법칙이 역사에 적용되었던 또 다른 사례들을 찾아보자. 로마제국은 말기에 화폐인 은화의 순도가 떨어지면서 경제적 위축으로 쇠망을 앞당겼다. 14세기 유럽에서는 백년 전쟁이 발발하여 무리하게 화폐를 찍어낸 결과 상업이 위축되기도 했고, 중국의 경우 원나라의 표준 통화인 교초의 남발로 원이 멸망하고 마는 역사적으로 지대한(?) 공헌을 한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말에 대원군은 당백전을 남발하여 당시 기축 통화였던 통보가 사라지는 체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레셤의 법칙은 미국의 경제사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19세기말의 은 쇼크. 당시 농민들은 은본위제를 주장했고, 상공인들은 금본위제를 주장했다. 당시 정치권은 어쩔 수 없이 금은 양본위제를 수용하고 있었는데 금과 은의 교환비율이 실제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아 실제보다 고평가된 은화는 시장에 엄청나게 풀려나왔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금화는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악화인 은화가 양화인 금화를 몰아낸 꼴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사람이라면 [오늘날처럼 주화가 아닌 신용화폐 중심인 시대에 이 법칙은 무용지물이지 않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화폐도 이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시장에 신용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카드결제를 계속 한다면 결국 시장은 채무불이행을 견뎌낼 수 없어 신용화폐가 악화가 되는 현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이러한 상황에 있다면 어떤 화폐를 쓰겠는가? 비교적 양호한 다른 화폐도구들도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신용화폐를 선택할 것이다. 또한 경기가 하락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당신은 블루칩보다도 정크 스톡(Junk Stock)을 먼저 내 버리지 않겠는가?

그레셤의 법칙은 물론 그레셤이 경제적 용어를 사용하여 법칙으로 통용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체험 속에 묻어있던 이론이다. 재산을 많이 가진 귀족들도, 밭을 가는 농부들이나 장사를 하던 상인들도 모두 양화는 쌓아두고 악화로 자신들의 경제생활을 누렸을 터.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 내기보다 어느 누가 먼저 그 현상을 관찰하고 이론으로 정리하여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집어넣느냐]가 중요하다는 법칙의 법칙(?)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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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지폐나 서양의 지폐나 기본적으로는 청구권을 보장하는 증서에서 비롯되었다. 금태환이던 은태환이던 지폐는 실물 화폐로의 교환을 인정하는 증서다. 실제로 지폐의 역사는 상당 부분 상업 어음의 역사와 겹친다. 그런데 동양의 지폐와 서양의 지폐는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

일직부터 중앙 전제왕권의 통제 아래 있던 전매권이 청구권에 대한 반대 급부로 제공되던 동양에서는(소금과 철이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었다. 국가가 필요로 한 병장기와 군량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급부로 염전이나 광석에 대한 권리를 제공했다) 왕조의 부침에 따라 지폐와 귀금속이 그레셤의 법칙을 따라 바쁘게 움직였고, 전장을 통한 상업 어름 거래와 중앙 정부에 의한 지폐 발행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근대적 은행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뒤졌다.

(사실 세계 무역에서 중국은 오랫동안 사치품의 최대 수출국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귀금속 유입은 아편 전쟁 이전까지는 풍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물 대신 은화가 조세 부과의 표준 화폐로 유통되었을 정도로 중국 경제권의 귀금속 유입량은 풍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 저장성은 탁월하지만 수익률은 낮은 귀금속보다는 지폐가 모험적인 상인들에게는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반면 서양은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환전 은행이 골드스미스의 노트를 거쳐 대체은행으로 발전했고, 종국에는 근대적은 은행을 낳았다. 개별 국가의 금속 화폐 발행은 전시대를 통틀어 꾸준하게 이루어졌지만 청구권을 지닌 지폐의 발행은 금융 귀족으로 불리는 소수의 가문이나, 상인 길드를 통해 이루어졌다. 상업 어음과 지폐의 발행이 일원화 되었던 셈이다.

[#M_ 은행의 기원. 골드스미스의 노트| less.. |

은행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금과 출금을 담당하는 텔러들과 그들 너머로 보이는 관리자 몇 명,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대형금고와 청원 경찰을 떠올릴 것이다. 물로 이것이 전혀 잘못된 이미지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것이 몇 백년 전의 은행을 상상했을 때의 이미지라면 이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영어로 은행을 뜻하는 [BANK]는 원래 환전상이 돈을 쌓아두던 탁자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은행의 역사는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다. 14세기 유럽에는 수많은 도시와 국가의 개별 통화가 있었고 원활한 상거래를 위해서는 이들 통화의 가치를 판단할 중개인이 필요했다. 이런 역할을 맡은 것이 개개인의 환전상이었고 역사는 이 시기의 은행을 환전(換錢)은행이란 말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런 개개인의 환전상에게 잊을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흔히 금융귀족으로 알려진 플로렌스의 메디치가와 아우크스부르크의 푸거가 그리고 베니스의 정부는 개개인의 환전상의 행동을 전유럽적 단위로 묶음으로써 대체(代替)은행을 탄생시키게 된다.

예를 들어 파리의 A라는 상인이 런던의 B라는 상인에게 상품구입대금을 지불해야 한다면 과거에는 A가 산 넘고 강 건너 그리고 마지막으로 환전상에게 들려 화폐를 바꾸어 B에게 지불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A가 파리에서 은행에 입금을 시키면 B는 런던의 은행에서 찾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간소화 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이 가지고 있는 은행권발행과 예금 제도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우습게도 이것은 은행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금이나 귀금속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장인(GoldSmith)이 써주던 보관증(GoldSmith’s Note)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보관증을 고액의 상품매매에 화폐대신 사용하는 기민함을 보여주면서 이들 장인들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골드스미스의 원리이다.

골드스미스의 원리란 무척이나 단순하다. 모든 보관증이 한꺼번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원리와 일부 보관증은 전혀 환급을 받지 않는다는 점 이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면 우리의 금세공사는 실제 보관 중인 귀금속보다 많은 액수의 보관증을 발행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금세공사는 이렇게 잉여 발행된 보관증을 가지고 사채업을 겸업했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여러분들에게 누군가가 현대의 은행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전문적인 용어를 들어가며 끝없이 난해한 대답으로 상대방을 질리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백년 전의 은행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물어본다면? 겁먹지 말자. 현대의 은행이나 과거의 은행이나 은행은 [전부 똑같은 원리에 의하여 움직이는 은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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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아시아의 국제 무역과 그레셤의 법칙은, 아니 국제 무역과 은행의 발전 과정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진화했다. 다시 교초로 돌아가자.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이 시작될 무렵 고려에 들어온 교초는 오래지 않아 고려의 고액 지폐로 자리 잡았다. 원나라와의 외교 사절의 접대비와 군사비 명목으로 유통되던 교초는 중국에서는 날이갈수록 실질 가치가 하락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고려에서는 통화로서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화폐의 명목 가치가 실질 가치를 앞선 그레셤의 법칙의 예외가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귄문세족에게는 경제적 실질 가치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명목 가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영미식 커리큘럼으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가 고려 시대의 교초의 가치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지폐에는 묘한 성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조공무역과 관련된 실제 가치와 명목 가치의 괴리다. 서구인이 무역의 합리성이라 부르는 등가성의 원칙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기 전에 동아시아의 무역 원칙으로 자리잡은 것은 실질 가치보다 명목 가치였다. 조공 무역을 통해 받쳐지는 진상품과 하사되는 하사품들은 실질 가치보다 더 큰 명목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안정되어 있을 경우 하사품으로 받은 지폐는 곧바로 시장에서 지불 화폐로 사용되었다. 왕조의 통치력이 불안해 하사받은 지폐의 가치가 시장에서 낮게 평가 받을 경우에는 본국으로 가져와 경제적 가치 대신 정치적 명목 가치를 중심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데 상대 가치를 중심으로는 본 측면에서는 그레셤의 법칙이 충실하게 지켜졌지만 화폐 자체로 본 그레셤의 법칙에는 예외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무역 관행은 어느 나라에도 괴멸적인 피해를 주지 않은 채 오랫동안 동아시아 경제권을 묶는 가교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영미식 스탠다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지만 적어도 몇세기 전의 서구가 주장하던 등가성의 원칙은 등가성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유혈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었다. 실질 가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정 무역에서 이익을 얻는 방법은 어느 한쪽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 명목 가치와 실질 가치를 구분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동아시아의 무역 관행과 비교하자면 제로섬 게임이 분명하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 무역의 표준 양식이 된 서구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는 본질이 있고 상황에 따른 예외가 있는 법이다. 또한 예외 속에서도 본질은 살아 숨쉰다. 그레셤의 법칙과 골드스미스의 원리는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행동의 동기를 설명해주는 가장 좋은 설명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행동이 구체화되는 방식은 문화와 관습, 시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체화된 행동을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던 가치를 모르는 현대인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이 사실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일 경우에는 말이다.

아무튼 권문세족은 교초의 태환 정지로 유동성을 잃고 역사에서 퇴장했고, 현대는 조공무역을 봉건 관습으로 취급해 버리는 서구의 등가성 원리(물론 여기에 비교우워론과 자유무역의 이점이라는 현대적 이론이 첨삭되긴 했다.)에 지배 당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머리 속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낯설어진 옛날을 산책하는 것은 꽤나 운치있는 일이다. 레이 황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역사에는 그것이 등장할 만한 필연적인 흐름이 있으니 말이다.

7 thoughts on “Gresham’s & Goldsmith’s”

  1. 예. 스킨이 지겨워져서 바꾸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한루님과 같은 것이더군요.
    게다가 포스팅 주제 역시 역사와 관련된 경제 법칙이라
    되도록 역사 쪽에 관련된 구체적인 기술은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분위기는 어쩔 수 없네요.

    엔비 링크 블로그에서 본 plodpaw님이셨군요.
    ‘아직 하이얌의 청혼을 받을 생각은 없지만’이란 코멘트를
    읽다가 농도 조절에 실패한 쓴 홍차를 마신 저로서는
    링크를 안할 수가 없군요^^

  2. 아…그 법칙이 그레셤의 법칙이었군요.얘기만 많이 들었을 뿐,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얘기인지 잘 몰라서 궁금해 하고 있었어요.
    바뀐 스킨 참 이쁘네요.태터툴즈에서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스킨이 아닌가 합니다^^

  3. //가디록님
    예. 근래들어 최고의 인기 스킨이 아닌가 싶어요.
    푸른색 그라디에이션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 역시 그레셤의 법칙을
    제대로 배운 기억은 없군요.

    //닭의비행님
    네. 혼자 흐뭇하게 웃으며 읽었던 기억이…
    근래들어 자주 들리게 된 링크 블로그였답니다.
    이제야 그 주인을 알게 되었군요.
    그런 의미에서 슬쩍 링크 걸었습니다.

  4. 오랜만이군, 이런 글.
    자네가 학교 다닐 시절이 생각나네.
    임프에서, 교양관 앞 벤치에서, 사대 뒤 벤치에서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해주었던 이야기들이 생각나는 군.
    어쩐지 여유로움의 표출 같은데…ㅋㅋ
    간만에 즐거움을 선사한 자네에게 골든독 커피한잔 사겠네.^^

  5. 이번 가을이 시작되었을 때
    다시는 골든독에 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고.
    그러니 차를 한잔을 사고 싶거든 S.나 C&T로 데리고 가라.
    개인적으로 포모사 우롱이 너무 마시곤 싶긴 해.

    뭐 여유로운 정도는 아니고 점심이랑 저녁시간에
    잠시 시간을 낸 거야. 예전에 써놓은 글들에
    조금 덧붙인 것에 지나지 않지. 그리고 오탈자는 방금 고쳤다.
    맥에서는 맞춤법 검사 안되는 까닭으로 빨리 쓰면 늘…

    아무튼 IMP의 아이리쉬와, 교양관 앞에서 먹던 아이스크림과
    사대 벤치에서 마시던 데자와는 또렷이 기억나는군.
    역시 우리는 비자발적독신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하려나봐.
    머리 속에 남아있는 기억이라고는 전부…

    아니 너만 그렇군. 난 너 군대갔을 때 나름대로 재미난
    삶을 보냈다고. 아무튼 다음에 놀러갈 때
    까페 베로나나 포모사 우롱, 혹은 민트차를 마시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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