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의 대가

<검의 대가>는 인물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아니 인물뿐만 아니라 배경도 아름답다. 전반부에 묘사된 인물과 배경만큼이나 후반부의 사건 전개가 빼어났더라면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레베르테씨를 너무나 오랫동안 곡해했노라고, 그는 흔하디 흔한 보통의 작가가 아니라 진정한 대가였노라고, 스스로의 낮은 안목을 괴로워하며 시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좋은 인물과 배경을 가지고 만들어낸 이야기는 진부한 삼류 스토리에 지나지 않는다. 전반부의 아름다움에 취해있다가 후반부의 당혹스러운 이야기 전개에 얼이 빠져 있노라면 어느새 이야기의 결말에 다다른다. 그리고 한참동안 아쉬움에 속이 쓰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서투른 건축가가 생각난다. 레베르테가 지닌 인물을 형상해 내는 재주의 탁월함이 마약처럼 끈적하게 손을 붙잡지만 이야기에 끝에 다다랐을 때마다 난 [이건 아냐]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분명 서사 구조의 빈약함을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 소설이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한동안 소설 속 주인공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한다. 스스로의 행동에서 소설 속 인물을 발견하고 어느 사이에 인물의 말투를 따라하며, 똑같은 걸음거리로 걷기 시작한다. 좀처럼 인물에 몰입하는 경우가 드문 나로서는 특이한 일이지만 그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분노하고 흥분하며 심지어 침울해 하기까지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검의 대가>에서 그가 창조해 낸 하이메 아르타를로아는 외롭고 고독한 캐릭터이다. 하이메는 부유하지도 않고, 지적이지도 않으며, 시대에 뒤쳐진 노 검술가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우리는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내면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순수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우아하지만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복고풍을 선호하는 그처럼, 기예가 아니라 스포츠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검술만을 사랑하며 세상에 무관심한 그를 통해 우리는 강한 척 해야만 하는 외피를 입지 않는 좀처럼 들어나지 않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검의 대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검술가의 사랑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였더라면, 검의 성배를 찾아 방랑하는 기사의 이야기였더라면, 노년에 찾아온 사랑에 흔들리는 자신을 용서하기 힘든 괴팍한 노인의 비가였더라면 이 소설은 한층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멋진 캐릭터는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음모에 연루되고, 살인을 목격하며, 사랑하는 여인의 목숨을 거두게 된다. 게다가 레베르테는 검의 성배를 발견하는 모습으로 첫번째 장편 소설의 마무리를 지으려 했지만 솔직히 어설프게 배낀 하이틴 로맨스처럼 촌스럽다. 검의 성배를 깨닫고는 사랑하는 여인의 주검 옆에서 검을 휘드르는 노인의 모습에서 그의 검이 그려내는 궤적이 노검술가의 삶이자 눈물이라고, 그의 삶이 아니러니라고 느끼기에는 모양새가 너무 좋지 않다.

사실 난 아직도 레베르테가 어째서 탐정물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하이메처럼 호소력 있는 인물을 고작 살인 사건과 음모의 도구로 이용하는 그의 마음을 도저히 모르겠다. 만약 츠바이크에게 하이메가 주어졌더라면 그는 어떤 소설을 썼을까? 삶에 남은 것은 검술 하나밖에 없다고 믿는 초로의 대가에게 불현듯 찾아온 사랑과 좌절을 눈물과 웃음을 거둘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하지만 레베르테의 성장을 즐겨보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첫번째 장편 소설인 <검의 대가>와 비교해보자면 그의 최신작인 <남부의 여왕>은 노련미와 대가다움이 살짝 엿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재밌는 것은 레베르테의 인물을 훔쳐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하이메가 검의 성배를 찾아, 방어할 수 없는 완전 무결한 공격법을 찾아 날마다 검을 휘둘렀듯이 우리 역시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니 말이다.

[#M_ P.S. 만약 아래의 <나>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하이메 아스타를로아에 반할 것임을 보장함 | less.. |

스물을 넘긴 뒤부터는 난 이상하게 짝사랑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은 있지만 언제나 잘 풀리지 않는다. 가끔은 십대에 경험한 내 사랑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속된 말로 평생에 딱 한번만 허락된다는 진짜배기 사랑을 이미 해보았기에 감정의 극한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곤 한다. 감정의 극한에 이르렀을 때 느낄 수 있는 씁쓸함과 회환에 고통스러워 하는 나를 두 번 다시 보고싶어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이런 삶도 나쁘지는 않다. 누군가의 마음에 나를 심어가는 과정 혹은 지배력을 확장 시키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비효율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은 그것이 무척이나 행복한 일임에도 수많은 노고가 뒤따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헤어진 연인들이 서로를 증오하는 이유의 속내에는 이런 상실감을 보상 받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튼 위험을 싫어하고 가치 평가에 민감한 나로서는 이래서 짝사랑을 선호한다. 짝사랑은 애초에 기대 수준을 매우 낮게 설정하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릴 염려가 적다. 아니 보통의 사람들로서는 참아낼 수 없는 수준의 관심으로도 행복해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것이야 똑같지만 해야 할 일들이 놓치거나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치명적인 실수만큼은 피할 수 있다. 게다가 자신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느끼지 못하기에 자신을 버린 상대에게 관대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난 결국 격렬한 사랑을 소망하게 된다. 그것이 더 이상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해도, 혹은 나를 잃어버릴 위험 것임에도 불구하고 짝사랑은 이내 모두를 태워버릴 거대한 열정으로 변한다. 열정은 지귀를 태운 불처럼 커져 결국에는 스스로를 태운다. 하지만 비록 어그러진 사랑일 뿐이더라도 열정이 불길로 승화하는 그 순간에는 감정의 극한에 다다랐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재가 된다.

_M#]

7 thoughts on “검의 대가”

  1. 역시 모처에서 뒤마~, 플랑드르~를 무난하게 쭉 읽어내려가고 있었는데. 항해지도에 가서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이런저런 곁가지들로 포장된 3류 스릴러를 본 느낌이랄까요? 어느나라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식의 마케팅과 비블리오 미스테리의 범람을 어떻게 봐야될런지 하는 생각도 한동안 들더군요. 여튼 코르소를 보며 느낀 횡량함만은 충분히 긍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물론 얄팍하기만 한 제 지식의 한계내에서의 독법이겠지만…;; / 검의 대가도 조만간 들어가 보게될지도 모르겠네요. 하이얌님의 글을 보고 있노라니…

  2. 제 경우에 있어서는 국내에 번역된 다섯 권의 책 가운데 항해지도가 가장 인상 깊었답니다. 책을 읽던 당시의 저는 삶과 소설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었거든요. 당시 제 삶에는 탕헤르가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코이에게서 ‘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4주동안 모처에서 밤마다 항해 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탕헤르와 코이에 대한 감상을 매일 적어 보았는데 어렵더군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하겠지만 전 탕헤르와 코이을 통해 제 삶의 한 단면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세이렌에게 끌려가는 코이를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되었죠. 3류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고전보다 더 나를 아프게, 혹은 알싸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책장에 누워있는 이 책의 표지를 만지면서 과거로 통하는 추억의 문을 열곤 하죠. 이 책이 제 책장에 있는한 난 결코 내 삶의 탕헤르를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만약 제 삶에 탕헤르가 없었더라면 lunamoth님의 의견에 완벽하게 동조했을 것 같아요. 이런 저런 곁가지들이 신경을 거슬리고 있으며 개연성 없는 스릴러라고 투덜거리며 읽었기 때문이죠. 전 단지 제 삶에 놓인 탕헤르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기에 코이의 해답이 알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코이는 해답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빼어난 소설은 아니지만 독자의 상황이 소설을 빼어나게 만드는 그런 때가 가끔 있잖아요. 저에게 있어 항해지도가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두서없이 늘어놓은 것 같이 죄송스럽군요.

  3. 스킨이 멋지네요. 하이메의 검술과 그의 연습실처럼 글과 블로그가 잘 어울립니다. 찾아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연애편지의 대가」다운 현란한 글솜씨에다 편집장의 내공이 느껴지는 레이아웃에 항상 부러움을 느낍니다(둘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이군요). 인문 사회 서적만 읽다가 소설을 사랑하는 방법을 잃어버려 안타까워 하던던 중 이렇게 멘토를 발견하고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답니다. 『남부의 여왕』이 기대되는 군요.

  4. 스킨 수정시 한 일이라고는 옆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신 일 밖에 없는 저로서는 칭찬에 되려 머쓱해지는군요. 하지만 분위기 만큼은 저로서도 매우 흡족하답니다.

    지인들의 풋사랑을 담아내던 서간체가 인터넷 쇼핑몰에 보내는 항의 편지에나 쓰이고 있고, 열심히 익혀둔 편집 기술은 OB의 잔소리쯤으로 치부되는 현실 속에 살고 있긴 하지만 칭찬이란 언제 들어도 고래도 춤추게 만들 만큼 흐뭇한 것 같습니다.

    양심에 비추어 볼 때 멘토이기에는 한없이 미흡합니다만 <남부의 여왕>은 평범한 이야기 속에 한 여자의 성장과 아름다움,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그림자가 녹아있는 재미난 소설이더라구요. 전형적인 Drug Story임에도 후반부의 다소 어색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꽤나 재미나게 읽은 듯 싶어요.

  5. 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레베르테가 굉장히 대중적인 플롯을 구사하는 작가라는 점이었다. 레베르테가 구사하는 플롯 자체는 굉장히 통속적이고, 뻔하다. 이 작가는 특정한 부분에 대한 마니아?

  6. 이 책에 대한 평가 역시 다소 상반되는군요. ^^
    P.C.I.님이 매혹당하는 인물들이 일정한 색깔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은 누추하고, 쇠락하고, 슬픈 느낌을 주는 우울함.
    (보통 그 사건은 인물 자체의 결함이라기 보다는 외부적 상황의 문제지만)
    그것이 특정한 계기와 사건을 통해서 역전이 가능해지는 플롯.

    네, 덕분에 레페르테의 글을 조금 더 깊게 읽을 수 있게 되었네요.

  7. 특정 분위기의 캐릭터에 대한 선호에는 긍정합니디만 역전이 가능한 플롯에 대한 선호는 딱히 잘 모르겠네요. 상황 자체에 대한 아이러니와, 우연에 의한 해피엔딩이 재미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거야 에우리피데스를 좋아하는 탓이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답니다.(이런 엔딩은 해피엔딩임에도 여전히 비극성은 남아 있는 법이구요)

    하지만 <검의 대가>가 플롯보다 캐릭터가 더 나은 소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빨간그림자님이나 저나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