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란 계절병

연말에 다가오면서 까닭 없는 외로움이 깊어진다. 사실 엄격하게 따져보면 내 삶이 외로울 이유 따위는 없다. 사랑이 부족한 것도, 우정이 부족한 것도, 미래가 어두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말이 다가올 때면 이유없이 나타나 정신 세계에 외로움이란 병증을 안겨주는 이 질병은 단순한 계절병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12월이 되면서 핸드폰을 주시하는 버릇이 도졌다. 까닭 없이 메시지를 작성했다가 딱 소리가 나게 폴더를 닫는 경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있다. 차를 마시는 와중에도 춥고 고립됐다는 감정에 허우적거린다. 혹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난 [보고 싶다]와 [그리워 하다]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단순하지가 않다.(뭐랄까? 나에게 그립다는 가슴 시리도록 그립다는 의미이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집중해서 그립다는 의미이다)

짧아지는 연필과 넘어가는 책장에 행복해 하는 것은 여전하다. 규칙적인 삶을 유지하는 것도,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것도 여전하다. 해가 지기 전에 귀가하며 여가 시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원칙에도 충실하다. 귀가하자 마자 책과 소지품을 정리하며, 청소를 하고 집안일을 거드는 것도 변함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삶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헛된 쾌락을 추구하는 일도, 미래를 저당 잡혀 현재의 방종에 투기하는 일도 없다.

물론 은밀하게 즐기는 쾌락도 몇 가지 있다. 귀가하는 길에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기 보다는 꼭 걸어서 다닌다는 것. 인적이 드문 길을 걸으며 평소와 다르게 걸음 소리를 낸다는 것.(요즘은 아이다에 열중하고 있다) 걷는 동안 온갖 망상에 나를 내맡긴다는 것. 가끔은 스스로를 이프성에 갇힌 에드몽 당테스로 가정하고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파리아 신부가 읽어주는 책들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글을 쓸 때 흠모하고 있는 누군가의 이름을 꼭 새겨 넣는다는 것. 이 정도다.

사실 좋은 아들, 듬직한 동생,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자 친절한 형(혹은 오빠), 똑소리 나는 젊은이인 나에게 무슨 이유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의 계절병이 찾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계절병이 찾아와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데 말이다. 여전히 우선 순위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한눈 같은 것은 팔 줄도 모르는 나에게 찾아온 이 계절병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아니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조금은 있다. 이렇게 투정 부리기 위해 글을 쓰는 시간과 리알토의 오래된 음반을 들음으로써 유발되는 약간의 산만함. 열었다 접었다를 반복하는 동안에 급격하게 짧아지는 핸드폰의 내용연수. 겨우 이것 뿐인데 어째서 해마다 이 계절병은 지칠 줄 모르고 찾아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8 thoughts on “외로움이란 계절병”

  1. 난 이제서야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해지는 듯 해.
    혼자라는 것이 애인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네.
    시간, 날짜에 대한 감각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고,
    연말, 연초에 대한 구분도 어느새 없어졌다.
    그저 똑같은 하루일 뿐이고, 해야할 일이 있다는 사실만
    생각날 뿐이다. 그래서 여느 때 같았으면 조금은 들떠있거나
    설레일 연말이 전혀 그런 기분없이 조금 빡빡하게 생활해야
    겠다는 생각만으로 꽉차 있는 것인가봐.

    조금만 외로워해.
    누구와 있던지, 어디에 있던지 사람은 본질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자네 곁에 있고, 추억을 공유한 고교시절 친구들이
    지척에 있으며 전화하면 언제든지 받아줄 내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이런 말하면 꼭 그녀석 말을 꺼내면서
    갈구던 자네에게 그 말 그대로 해주고 싶군.
    적어도 자네는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곳에 있잖은가.
    그러니 조금만 외로워 하시게.ㅋㅋ

  2. ㅋㅋㅋ 난 너 왜 외로운지 알아!!
    내가 여기 와있기 때문이지~ 후훗..
    어차피 한국에 있었어도 연말을 같이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테지만,
    왠지 불가피하게 떨어져서 보내려니 기분이 이상한게지.
    그런거지? 그런거지? ㅋㅋ
    난 오늘부터 회계학 복습 들어가쓰~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엔 정말 막막했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까
    전에 했던게 나름대로 조금씩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게 신기하더라구.
    아직 완전 굳어버린 머리는 아닌가봐^^;;;

    오늘은 근처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당.
    옆에 한국 여학생이 앉아서 잠깐 공부하다가 퍼져서 계속 자는데,
    내가 마치 한국에 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버렸었어.
    그러다가 영어가 들리면 퍼뜩 놀래구.. ㅎㅎ

    집에서 꽤 가까운 곳이라 발견해준 엄마아빠한테 감사드리는 중이징..
    열심히 걸어다니면 살도 빠질 것 같애!!! 헛된 바램이라고?! ㅡㅡ+
    사실 살 빼는거 거의 포기중.. 이렇게 그냥 살고 억지 그만 부리라고 하느님이 화내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아픈데 없는거나 감사하고 살라고..

    여긴 밤이라 또 횡설수설이야.. ㅡ.ㅡ;; 미안미안 ~
    리뷰 시작하니까 이제서야 끝이 보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해 ㅋㅋㅋ
    열심히 해서 시험 잘 보고 갈테니 술마실 속을 준비해 두시게나^^
    미쓰유우 ~~~~

  3. //wc
    지금의 자네 증세가 나에게도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아마 작년 가을이었을 거야. 그 때 내 마음이 딱 그랬던 것 같아. 새벽 4시에 잠들어 오후 2시에 깨는 생활을 상상할 수 있겠어? 시를 읽다가, 차를 마시다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과가 수없이 반복되었듯 싶어.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고 지금은 그 사정이 사라진 셈이지.

    사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외로울 여유조차도 없어야 정상이야. 해야 할 일들은 많고 갈 길은 먼데 여기에 멈추어 있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어. 그럼에도 조금은 외롭고 지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야. 살면서 겪은 시험가운데 가장 고난이도의 시험이기에 가끔은 나답지 않게 인내력의 끝이 보이는 순간이 나타나더라고. 하지만 걱정할 정도로 깊은 것은 아냐. 본질적으로 나란 사람이 그렇게 감상적인 사람이 못되잖아. 한번 빠지면 깊게 빠지지만 털어내는 것도 빠른 사람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보다는 네가 더 걱정이야. 아무튼 결론에서 보이듯이 내게서 외로움이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전무하다고. 내 의지가 외로움 따위에 휘둘릴 일은 절대 없다고 이름으로 맹세한지 오래 되었다네.

    //지선
    시험 기간에 신관 302호실에서 터를 잡고 놀던 때가 기억나는데. 왠지 도서관에 앉아 있는 네 모습이 그 때 그 모습일 것 같은 상상이 드는걸. 머리를 묶을 끈이 없어서 나한테 신문사에서 고무줄 챙겨 오라고 메세지보내던 비리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키득거리는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솔직하게 네가 있었다면 원철군이나 나나 우리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연말을 기다렸을 것 같아. 지금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를 기본 계획으로 삼지는 않았을테지. 12월의 마지막 주가운데 최소한 이틀은 같이 있지 않았을까? 22살 때는 그랬잖아. 그때는 거의 날마다 보았던 듯 싶은데.

    회계학이라. 2년가까이 회계에 손을 안대었더니 계정 과목조차 까먹고 있는 실정이야. 우리말로 된 계정마저 까먹은 판에 영어로 된 계정은 아예 배운 기억도 안난다. 아무래도 난 머리가 굳은 것 같아. 원리에 나온 기본 성질도 기업이 안나고 건설 기간중의 이자같은 중급영역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걸. 복학하면 세무 회계 들으란 협박에 시달릴텐데 심하게 걱정스러워.

    어차피 모델이나 연애인이 아닐 봐에야 몸매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귀국하면 법대 후문 만두국집 어떠신가? 며칠 전부터 꿈에서 그 집이 나와서 식욕을 자극해. 어느 새 그 집 못가본지도 2년이나 되어버렸거든.

    며칠 남았지만 생일 축하. 플로리다에서의 크리스마스도 즐겁게 보내고. 눈내렸다니 부럽다. 내가 사는 이곳에는 아무래도 내년 1월이나 되어야 눈이 내릴 듯 싶어. 결론적으로 여태 눈 구경도 못했다는 이야기지. 어서 귀국해서 더 늙기 전에 뭉치자고.

  4. 동생이 은근히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원하는 것 같더라. ㅋㅋ
    내일 동생이 도착하지.. 아.. 좋아ㅡㅡ;;!
    법대 후문 만두국 집은 콜이다!! 무조건 가는거야! 히히..
    그나저나 고무줄 사건은 금시초문이다.. 난 몰라~

  5. 나라도 플로리다보다는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선호랄 듯 싶어.
    크리스마스는 춥고 눈이 펄펄 내려야 제 맛이라고.
    게다가 이런 계절에는 플로리다에는 비가 내릴지도 모르는데
    12월 내내 밴쿠버에서 비만 맞다온 계일이가 좋아할리 만무하지.
    그나저나 동생 온다니 너무 신나겠는걸.

    한국은 오늘 영하의 매서운 겨울 날씨인데 이런날은 그 만두국이 너무 땡겨.
    아침에 걸어오는데 너무 추워서 귀떨어지는 줄 알았거든.
    아침 먹은지 한 시간도 안지났는데 따뜻한 국물이 마시고 싶더라고.

    아무튼 크리스마스 여행은 동생 도착함과 동시에 떠나는 건가?
    난 원철군하고 잠시 만나는 것하고 고등학교 멤버들 망년회빼고는
    집안에서 공부나 할 예정이야. 그러니 여행가서 사진 많이 찍어 오라고.
    참. 싸이 월드에 있는 그 사진 너무 멋지던걸. 순간 네가 아닌 줄 알았다.

  6. 내 동생은 에드먼턴에 있다가 왔다네^^
    추울땐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고 하더군.
    그래서인지 여기도 꽤 추운데 추위를 안 타더라~
    요즘 잠이 없어져서 괴롭다.. 늙은이처럼 말이야ㅠㅠ..

  7. 현재 수은주는 영하4도. 이 정도 추위로도 걸어오는 동안 의식이 몽롱해지고 있어.
    이대로 침대에 누워 5시간만 더 잤으면 좋겠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눈이 올지 모른다고 하던데 최소한 오전중에는 전혀 올 기미가 안보여. 이러다가 올해는 눈구경도 못하고 한해가 끝나지 않을까 슬슬 걱정이 되는 구려.

    난 아직 젊은가봐. 끝도 없이 잠이 그리운 것을 보면. 내 하루가 가장 만족스런 순간은 단 일초도 낭비하지 않은채 하루를 보내고 침대에 쓰러질 때야. 긴장되었던 어깨가 풀리면서 온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절대 아니라고 고개 흔들 네가 보이기는 한다만) 나른하게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 좋더라고. 애인도 열광할 그 무엇도 없는 내 삶에 가장 큰 위안은 바로 잠이 아닐까 싶어.

    어제는 회식에 갔다가 가볍게 소주 2병을 마셔주시고 영하의 차가운 날씨를 뺨으로 느끼며 귀가했어. 바람에 상처가 날만큼 매서운 바람이었는데도 그리 춥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술기운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지. 오래 전 너랑 마시던 술 한잔이 생각나더라. 이렇게 추운 날 술 한잔 걸치고 좀처럼 풀지 않는 목단추도 풀어버리고 팔뚝을 걷어부친 채 끝모를 수다를 떨어대던 너와 내가ㅣ 어찌나 그리웠던지. 누군가에게 아무말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걸 수가 없더라. 갑자기 화가 핸드폰의 배터리를 뽑아버리고 가로등에 의지해 귀가했지. 귀가한 다음에는 재빠르게 술냄새를 지워버리고 또 무언가를 읽었고. 참 재미없는 연말인걸. 내년에는 재미난 연말을 보냈으면 좋겠다. 네가 원하는 그것이 이루어지고, 내가 원하는 그것이 이루어진 그런 연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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