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maicha Green

오랜만에 젠마이카 그린을 마시고 있다. 이 녀석과 친해진지는 꽤나 오래되었는데도 녀석을 마시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커피빈에 들릴 때면 늘 이 녀석보다 화려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 차들에 오감이 마비되곤 하기 때문이다. 지갑 사정이 넉넉할 때면 자스민차에, 날씨가 더울 때면 차이 라떼에,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에프리콧 실론에 빠져든다. 그리고 가끔 사내 녀석들과 원치 않을 걸음을 내딛을 때면 포모사 우롱을 마신다. 이래 저래 젠마이카 그린과 친해지기란 어렵다.

사실 젠마이카 그린의 맛은 [현미 녹차]의 맛과 비슷하다. 하지만 질에 있어서 만큼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목넘김의 차이라고 해야할까? 보통의 현미 녹차가 지니는 껄끄러운, 혹은 석연찮은 마무리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보인다고 해야할까? 화려한 맛은 없지만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본연의 맑은 맛이 있다. 게다가 젠마이카 그린을 마실 때 느껴지는 포만감은 마음을 행복하게 만든다.

크리스마스 오후. 자스민차를 마시고 있던 둘째 누이, 애프리콧 실론을 마시고 있던 원철군. 블랙퍼스트 블랜딩의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나는 차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차의 경우 향은 뛰어 나지만 맛은 별로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홍차를 더 선호하긴 녹차의 다양함과 깊은 풍미에 비하자면 홍차가 열세가 확연한 것은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진귀한 녹차가 아님에도 솜씨 좋게 우려낸 홍차의 맛을 뛰어넘는 젠마이카 그린만 봐도 그렇다. 녹차의 쉬운 접근성에 비교해보자면 홍차는 까탈스럽고 번잡하다. 어쩌면 홍차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대접할 적당한 홍차는 포션의 애플티나 스톡홀름 블랜딩이 아닐까 싶다. 연하지만 탁하지 않은, 강렬한 향 속에 숨겨진 얇은 맛에 열광하는 내 취향이 특이한 것이라면 말이다.

(내년에는 책과 루빈스타인 콜렉션에 사용 가능한 자원을 총 투입할 예정이라 비싸고 구하기 힘든 블랜딩은 내 후년까지 참아야 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 놀러 온 원철군이 선물해준 루빈스타인은 들을 수록 마음에 든다. 가끔 눈에 띄는 혹평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마음에 쏙드는 연주다)

사실 차에 대한 내 기호는 순수한 나만의 것이 아니다. 기분따라 쉽게 물들고 쉽게 질린다는 설명이 차에 대한 내 기호를 가장 간결하게 제시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디오 대여점에 들릴 때면 문득 기억나는 옛 추억에 괴로워 하는 것처럼 차를 고르는 순간의 난 그 기호를 선물해준 그 사람을 떠올리며 심란해 한다.

스물 다섯이 되는 새해에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기호를 하나 찾아야 겠다. 새해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현시점에서 가늠해 보자면 젠마이카 그린이야말로 나만의 기호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하지만 어떤 것이 되었건 일주일 뒤에는 차를 고를 때마다 옛 추억에 얽매여 심란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insurance security가 되는 일도 machinery로 취급 받은 일도 스물 다섯에는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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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Genmaicha Green”

  1. 뭐냐, 너?
    왼편의 액자는 꼼꼼히 감출 만큼 철저한 네가 왜 저런 실수를 했을까?
    구도를 잘못 잡았다고 핑계를 대기엔 너의 실력을 내가 아는데
    뭐냐,너?
    조회수 500을 넘기는 이곳에 아무리 반쪽이라지만 과년한 처자의 사진을…
    무슨 꿍꿍인게야. 나의 강압에 이렇게 보복하는 것이냐?
    내가 모르는 흑막이 있는게 분명해. 당장 수정하도록…

  2. 음…사진은 본인이 찍은 것이 아니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역시 자네가 찍은 것이 었구만.
    뭐, 내가 잘못 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insurance security에서는 탈피한다고 하더라도
    machinery에서는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잖나.
    아무튼 내년에도 쉬엄쉬엄 하시게나.ㅋㅋ

  3. //은둔자
    왼쪽 액자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발생한 순간적인 실수였어.
    없애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새로 찍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그냥 올려놓았음
    500은 딱 한번 넘었다고. 그것도 다 봇들이 드나드는 것이니까 괜찮아.
    게다가 실제 인상하고는 완전 다르게 보이잖아.

    //wc
    사진은 내가 찍은 것, 그림은 내가 전혀 못그리는 관계로 타인이 그린 것.
    어제 오후에 받은 전화 덕분에 machinery도 싫어졌어.
    아마 옆에 있었으면 보기 드물게 화가 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듯.

  4. 둔자 실물보다 낫게 나왔다고 너 지금 선전하는거냐?
    난장이 넌 무얼 감추고 싶었던게냐? 으하하하
    홍자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홍차를 끓이는 물도 중요하다고 본다…
    물맛따라 온도따라 맛이 또 다르더군
    개인적으로 홍차의 떫은 맛이 좋아하고 우유를 넣은 것도 가끔은 좋고 그런데
    또 어떤 우유를 넣느냐도 중요하지…..
    그런데 아무리 마셔도 옛날에 먹던 맛은 안나….
    비스켓 한조각하고 먹는 홍차의 궁합이 예술이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섞인 재료 보다는 섞이지 않은 것이 좋더라…
    그런데 홍차의 기원은 인도냐? 중국이냐?….

  5. 중국이야. 야삼티는 영국의 플렌테이션에 의해 시작된 것이고.
    물맛하고 온도따라 차맛이 다른 것은 홍차 뿐만이 아니라 커피, 녹차 모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따라서 (C.P.)차의 맛은 종류가 결정한다는 전제가 성립되는 셈이지.

    hermit양의 실물에 대한 논의는 각자 블로그에서 하도록 하고
    난 감출 것 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6. 엄밀히 말하자면 홍차의 기원은 유럽(영국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묶어서 유럽.ㅋ)
    으로 봐야하는 것 아닌가?
    녹차를 들어오다가 썩어서 그것이 아까웠기에
    고안한 방법이 썩은 녹차잎을 볶는 것이었잖아.
    기원에 대한 논쟁을 벌이자는 것은 아닌데,
    관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차맛은 워낙에 변수가 많으니 논외로 하자고.ㅋㅋ

    그나저나 오늘 정말 춥군.-_-

  7. 엄밀하게 말해서 중국이야. 녹차가 들여오다가 썩었기 때문에 홍차를 개발했다는 말은 수십세기에 이르는 동양 차문화를 우습게 보는 위험 발언이지. 홍차의 기원은 기원전 중국에서 시작해.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녹차보다 홍차가 먼저 발명되었을거라고 해. 보존 방법이 열악했던 그 시대에 홍차쪽이 보다 자연발생적이었을 테니 말이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자바섬에 차린 다원이 인도의 아삼과 다질링에 플랜테이션되면서 유럽의 홍차 소비는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많이 소비한다고 해서 그것의 기원을 갖는 것은 아닐 것이야. 그리고 썩은 차를 처리하기 위해서 홍차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설탕과 우유에 더 잘어울리는 차가 홍차였다는 쪽이 더 맥락에 맞는 견해가 되겠지.

    그리고 19세기 초엽에 자바에서 재배된 차는 중국산이었고 몇년 뒤 미얀바에서 새로운 차종이 발견되면서 중국의 전통 홍차업은 쇠퇴일로를 걷게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 홍차에 사용되는 차종이 미얀마에서 발견된 신품종으로 대체된 것도 이시기의 일이고.

    아무튼 한국의 차문화는 선사 문화와 엄격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차를 너무 탈속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 자스민차부터 장미차까지, 찻잎을 제외한 수많은 꽃과 나뭇잎으로도 차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탈속한 선사의 차만 차가 아니라는 말이지. 물대신 차를 마시는 것이, 삭힌 차를 마시는 것이 저속하다는 선입견이 만들어낸 편견이 아닐까 싶어.(차와 무역, 그리고 플랜테이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포메란츠의 저술을 참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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