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er Circle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들 대다수는 망설임 없이 자신이 속한 조직을 이야기한다. 직장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술집에서 주위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을 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화제가 바로 자신의 조직에 대한 비판과 상사에 대한 살벌한 애정 표현(?)이라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관찰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조금 더 이 술자리의 표정을 바라보자. 한켠에서 입가에는 약간의 비웃음을 띤 채 깊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조직 비판」을 감상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러는 것일까? 해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사람은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속한 사람이다.

저자는 이너서클을 『조직 내 소수의 핵심 권력 집단』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더 이상 『실력만으로 말하는 시대』가 아니라 『매끄러운 정치적 기술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제는 성실성뿐만 아니라 민첩한 정치적 센스가 성공의 키워드로 부상하는 시대라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많다. 성실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좋은 인간 됨됨이를 무기로, 혹은 파벌을 만드는 것으로.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너서클은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실패하는가?

저자는 조직 내 파워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속한 조직의 특성과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조직은 얼마나 정치적인가?』 그리고 정치적 수준에 따라 자신의 대응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순수주의자라면 비정치적 조직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협력주의자라면 가벼운 정치적 조직에서 더욱 가치를 빛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호전주의자이거나 책략가라면 저자는 절대로 순수한 성격의 집단에 발을 담그지 말 것을 권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정치적 센스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다. 저자가 이너서클을 전략적으로 분석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쳐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파워 게임에서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2001.12)

Modified 2004.12.22
이너 서클은 정직한 책이다. 논의의 바탕이 되는 조직에 대해 이너 서클만큼이나 정직하게 [조직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고 말해주었던 책은 없었다. 아니 조직 이론의 대가들일수록 오히려 내부 긴장에 대해 슬금슬금 넘어가는 경향이 농후하다. 내부 긴장으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정서적 압력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책은 경영 서적 코너가 아니라 심리학 코너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르다.

하지만 출간 된지 3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이너 서클이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한번도 이너 서클의 존재에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차제하더라도, 그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가늠이 되지를 않는다. 분명 이너 서클의 존재를 가볍게 다룸으로써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나 좋은 라인을 타고 이너 서클이 되기 위한 정치적 센스가 반드시 필요한가? 그것이 생산성과 조직의 화합, 리더십의 본질적인 요소인가에 대한 회의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분명 이론상 최상의 조직은 이너 서클이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다. 하지만 리더의 입장에서는 이너 서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차별을 통해 충성심을 확보하고, 경쟁을 유발시키며, 탈락자를 거세시키는 잔혹한 시스템의 필요성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을 사용하면서도 조직 내부의 인간성을 매몰시켜 조직 자체의 괴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현실적 제약과 수단이 목적을 통제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매우 찝찝하다. 비즈니스는 인간적인 동시에 인간적이지 않다라는 한 인터뷰어의 말이 떠오른다. 비젼과 접촉점은 인간적이어야 하나 내부 통제 기법과 성과 분배까지 인간적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 논지였다. 인간적이다는 명제에 매달리게 되면 보다 큰 비인간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조직의 숙명이란 그의 말도 떠오른다.

참여는 증진시키고, 신의칙을 엄수하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엄정해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어렵다 해서 피해갈 수 있는 일도 아니란 말이 생각난다. 매우 점잖하고 인자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의 말에서 느껴지던 약간의 씁쓸함도 떠오른다. 남자들 대부분이 군대란 상명하복의 조직에서 배워온 조직 스킬이 비즈니스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안이한 자세가 더 큰 비인간적인 문제를 낳는다는 말에 뼈가 있던 것도 기억난다.

최상의 조직은 이너 서클이 없는 조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너 서클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체된 조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답을 알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한 삼십년 후쯤에는 약간의 답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그리 자신감이 있는 예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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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게 뜬금없이 이너 서클에 대한 리뷰를 올리는 것은 공화국의 몰락을 읽은 다음부터 머리 속을 맴돈 생각 때문이다. 공화점 로마와 제정 로마의 차이. 그것은 시민 전체가 공유하던 이너 서클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제정과 그것이 존재하던 공화정의 차이가 아닐까? 독재자와 제왕에게는 이너 서클이 필요하지 않은 법이다. 모두가 빈자이고 야망을 실현할 수 없는 사회에서도 이너 서클은 필요하지 않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는 모르지만 최소한 사회 영역에서 이너 서클은 분명 도전 받고 있다. 점차적으로 축소 압력을 받고 있는 이너 서클은 양날의 검이다. 당장은 인간적이나 이너 서클이 사라진 사회는 자기악을 통한 성장을 다시는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이너 서클의 크기를 설정하는 것은 항상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사회의 발전과 함께 이너 서클이 보다 넓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너 서클을 향한 욕구는 정말 가공할 힘을 자랑했고 그것이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이너 서클을 넓히는데 주력하기 보다는 없애려 노력한다. 이너 서클의 부정적 기능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너 서클의 없애려는 노력은 다만 축소를 가져올 뿐이고 이를 통해 더 큰 피해를 받는 것은 이너 서클에 속하지 못한 아웃 사이더라는 사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없어 보인다.

이너 서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르되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미성숙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너 서클을 향한 욕구를 훼손시키지 않는 정도로 그것을 확장시키는 것이 더 옳은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이너 서클이 축소되고 욕망해도 얻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지면 사람들은 도태되고 절망하며 활력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합리적인 이너 서클을 설계하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이래서 정치란 절대 사라지지 않는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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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thoughts on “Inner Circle”

  1. 입 한켠에 웃음을 머금고 사람들을 훔쳐보는 것은 나도 즐겨하는 일인데…
    물론 inner circle 입장에서가 아닌 단순한 observation이지만.ㅋ

  2. 웃음을 머금은 시각적 특징 말고도 청각적 특징이 하나 더 있을 텐데
    귀신 곡하는 웃음 소리라는 평판이 따라 붙은 그 예의 이상한 웃음 소리도 있다고.
    그 웃음 소리 덕에 눈에 안띄는 옵저버는 되기 힘들지. 암암!

  3. 그 웃음소리는 보통 잘 안 나온다구.
    너희들하고 있을 때나 들을 수 있는 것이라서
    보통 때 내가 얼마나 invisible한지는 모를 것이다.ㅋㅋ

  4. 너를 학교에서 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는 그럼 수업에는 꼬박꼬박 들어가는데 invisible body라서 그런 것이었군.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 이상한 웃음 소리나서 뒤를 돌아보면 학교에 없어야할 내가 학생처럼 학교에 와 있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네가 있더라고. 그래서 아직도 나보고 이번에 무슨 수업듣냐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

  5. 그것이 그렇게 이상한 웃음소리 였던가?
    난 잘 모르겠던데.
    아무튼 나도 날짜가 나왔는데, 설레임보다는 무덤덤함이 앞선다.
    한해를 날려버린 것에 대한 후회는 별로 들지 않았어.
    그리고 외국에 나가는 시기에 대해서도 좀더 고려중이고…

  6. 내 웃음 소리도 괴상한 편인데 네 덕분에 난 정상 취급을 받잖아. 시정군 말에 따르면 귀신이 흐느껴 우는 듯한 웃음 소리라고 하더군.

    그래 나온 날짜가 2월 29일이라고?(한숨 길게 한번 내쉬고 있음)
    아무튼 올 가을에는 제발 한국을 떠나 있어라.
    지금 떠나지 못하면 평생 가기 힘들지도 몰라.

  7. 내 203문답을 스크랩하려고 예전 홈에 갔더니,
    싸이트 자체가 없어져 버렸더군.
    다시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문항이었는데…
    언젠가는 다시 한번 할 날이 오기는 하겠지.
    그때와 비교해보면 재밌을 것도 같았는데, 아쉬움만 남는 군.

    불활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 세대의 특이성(distinctiveness)은 아니고,
    방황하는 정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나만의 특이성은 아닌데
    왜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헤메고만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네가 작년 초에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나만의 반쪽을 찾으라는 말.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일이 되었든, 취미가 되었든 그 무엇이든…
    역시 나란 인간은 평범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합의성(consensus)에 비추어 안심하고, 어쩌다가 일괄성(consistency)을 발견하면
    ‘역시 나라니까’라는 자만심이 들고…

    아무튼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개운하게 날려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를 벗어나면 조금은 달라지려나?ㅋㅋ

  8. 난 참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 주시는 부모님. 말없이 지켜보기는 하지만 걱정쟁이인 누나들.
    공부한다는 소리는 절대 믿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주는 친구들.

    손에서는 재미난 책이 떨어질 일이 없고, 귀에서는 아름다운 음악이 끊기질 않고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할 일도 없고, 또 미안해 할 일도 없고,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모든 것이 뜻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삶은 아니지만
    긴장과 초조함이 주는 스트레스를 수고로와 할 만큼 나약하지는 않으니 다행이고
    생각해보면 난 정말 복받은 놈인 것 같아.

    하지만 가끔은 나 역시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던 옛날이 더 행복했다는 생각을 하곤 해.
    지금과 비교해보자면 비효율, 낭비 그 자체였던 옛날이지만 그 시간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즐겁더라. 그때는 하루하루가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감정의 과잉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 나날이었는데 그때를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난 뭔지.

    우리는 이미 시간이 주는 유용함을 누릴 수 없는 나이에 접어들어들었으니까. 이제는 감정 과잉과 낭비가 주는 이유 모를 행복감에서 벗어나 정적이고 고요하며 능률적이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이 세계로 건너오렴. 이유 모를 행복감이 없기에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게 되겠지만 그것도 썩 나쁘지는 않더라. 무엇보다 책장과 음악을 늘리는 일.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고 지배당하는 일 없이 온전하게 나만 사랑할 수 있는 상황이 주는 편안함을 느껴보라고. 고민은 이제 잠시 멈추고 해야할 일에 집중하렴. 해야할 일도 끝내지 못한 우리에게 고민은 분명 사치야. 사실 그리 고민스러워야할 상황도 아니고 넌 그저 강을 건너기를 주저하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강을 건너고 나서야 넌 옛날과 오늘을 비교할 수 있는 시야를 얻게 된다고. 그러니 주저하지 않길 바래.

  9. 그래.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 자꾸 외면하려고만 한다.
    블로그 타이틀도 거창하게 ‘추억 없는 20대가 더 낫다!!’라고
    적어 놓았는데 그다지 바뀌어진 것은 없는 듯 하다.

    아무튼 친구들이 한 둘씩 합격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만 든다.
    일단 2월말에 있는 두 가지 시험(한가지는 토익이다.)을
    기점으로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야지.ㅋ

  10. 추억이 없기는.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십년만 지나면 간간히 술한잔 기울이면서 그때 참 좋았노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네.

    추억이 없는 20대가 가끔은 더 나은 것 같은 생각도 들어. 추억이란 것이 시시때때로 생각나 나를 번잡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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