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er

플루타크의 알렉산더 전기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단락으로 시작된다.

[알렉산더와 카이사르, 두 영웅에 대한 사료는 그 방대함을 자랑하는데 때로는 그 방대함이 영웅의 실체에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난 방대한 사료를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는 전투 상황과 일지에 연연하기 보다는 일화를 통해 영웅의 성격과 인물 됨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사실 플루타크의 변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알렉산더와 카이사르에 대한 인식만큼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알렉산더를 젊고 방탕한 야만족의 정복왕으로 묘사한다. 혹자는 잘 교육 받은 우아한 전제군주로 묘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광기에 사로잡힌 독재자의 모습을 그리기도 하며, 비운의 제왕으로 묘사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다시 말해 나처럼 무엇이 진짜 알렉산더의 모습이냐 하는 문제가 전혀 중요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상이 단지 흥미로울 뿐이다.

올리버 스톤판 알렉산더
올리버 스톤판 알렉산더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꽤나 재미있다. 세 시간이란 시간이 한 다경으로 느껴질 만큼 영화는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대왕의 정신적 후계자로 인정 받는 톨레미의 나래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올리버 스톤이 조명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들어낸다.

제왕의 수많은 후계자들 가운데 왜 톨레미였냐고 묻지 말아달라. 파라오란 명칭으로 불리는 톨레미만으로도 올리버 스톤이 의도하는 바는 명쾌하다. 이제 관객은 초반부터 극명하게 들어 나는 감독의 의도를 따라 톨레미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대왕의 여정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올리버 스톤치고는 정말 친절한 배려다.

사실 인지하기 어려운 배려이긴 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잇수스와 티루스, 이집트로 이어지는 알렉산더의 여정을 나래이션 처리함으로써 신의 아들 알렉산더가 아니라 인간 알렉산더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제우스 아몬의 아들이라는 신탁과 일련의 종교적 체험을 건너뜀으로써 그는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영역에 속한 알렉산더를 그려낸다. 이 두 가지 배려가 있기에 영화는 한층 쉬워진다. 신이 되려는 사내가 아니라 인간으로써 그가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인간의 업적을 뛰어넘으려는 자부심 강한 사내의 영광과 좌절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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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가멜라, 페르세폴리스, 박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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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집이라는 뜻을 지닌 가우가멜라 전투는 지금껏 본 수많은 영화의 전투신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전투신이었던 것 같다. 포진이 끝난 뒤 전투 나팔이 울린 순간부터 다리우스의 전장 이탈로 전투가 종결되는 그 시점까지의 시퀸스는 작은 깜빡임 조차 허용하지 않을 만큼의 박력을 자랑한다. 우익을 본대(주력)로 지칭하는 대화나 페르시아 기병대가 전개된 그 틈을 이용해서 다리우스를 생포한다는 후세 역사가들이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는 작전 전개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일사분란 한 진형이 갖는 압력이 잘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투의 사실성을 높이는 것은 이런 압력과 전투 개시 나팔이 울리기 전까지 병사들이 보이는 굳은 표정과 몸짓이다. 호플론에 왼손을 끼고 장창을 꼬나 잡은 마케도니아 밀집보병대가 임무가 공격이 아닌 모루라는 사실이 서글프긴 해도 말이다.(난 개인적으로 알렉산더의 캠페인에 대해서는 리델 하트의 분석을 선호한다)

그러나 전투의 승자가 된 알렉산더가 바빌론으로 개선 행진을 했다는 나래이션은 올리버 스톤의 조크로 보인다. 페르시아의 행정 수도가 수사였고,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의 약탈 명령과 방화로 불타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잊혀진 옛 도시 바빌론을 통해 알렉산더의 광기를 피해 보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였다. 존재하지 않는 도시는 불태우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이 있다. 페르세폴리스가 아닌 바빌론이라면 불태우지 않아도, 약탈하지 않아도 괜찮다. 올리버 스톤이 그리려 했던 알렉산더가 코스모폴리탄 알렉산더였더라면 페르세폴리스 약탈과 방화는 그 상에 대한 부정적인 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리우스를 쫓는 알렉산더의 추격에서 그는 꽤나 깔끔한 연출이 보여주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모든 이야기에서 다리우스의 죽음은 적에게 너그러운 알렉산더의 면모가 들어 나는 일화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너그러움에는 승자의 교만과 우월이 깔려 있다. 대제국 페르시아의 왕을 전투뿐만 아니라 인간미로도 압도했다는 그리스의 자부심이 흘러 넘치는 이 일화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다리우스의 대사를 지워버린다. 죽음을 맞이한 왕과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왕 사이에서 왕좌와 망토가 교환된다. 짧지만 이 시퀸스는 공정하다. 그리고 패배한 왕의 죽음으로 영화의 전반부는 마무리 된다. 후반부가 새로운 지배자 알렉산더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것처럼._M#]
문체는 변하지 않는다
사실 극장으로 걸어가는 나에게는 세가지 걱정이 있었다. 하나는 표가 모두 매진되었을 수도 있다는 불길함, 다른 하나는 가는 빗발이 언제 소나기로 변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맨 마지막 하나는 올리버 스톤이 만든 블록버스터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사실 지금껏 그가 만든 영화는 저예산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작자의 입김에 흔들릴 만큼 거대한 규모도 아니었다.

하지만 박력 있는 전투신을 끝으로 영화는 이제는 익숙해진 그의 문체로 쓰여진 희극으로 변했다. 사랑과 영광이라는 주제를 알렉산더와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을 통해 풀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다면 이 시점에서부터 관객의 평가는 양분된다. 지루하다는 의견과 세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으로 의견이 나뉘는 시점이 바로 이때다.

사실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제국이라는 역사가들이 일반적으로 설정한 대립 축이 아닌 사랑과 영광을 대립 축으로 설정한 감독의 이야기 전개는 역시 탁월했다. 대립 축이 페르시아로 설정되었더라면 페르시아 원정 이전의 두 번의 캠페인과 소아시아에서의 전투, 근동에서의 전투, 이집트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대립 축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군사적 재능이 탁월한 한 왕에 불과하다. 이런 대립 축에서 피 흘리고 좌절하는 영웅을 보여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이런 구도였을 경우 감독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따지기 좋아하는 평론가의 탈을 뒤집어 쓴 고증 애호가들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심력을 소모했을지도 모른다.

[#M_ 오이디푸스와 메디아| ! |
하지만 이런 극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배우도 있었던 것 같다. 졸리가 연기한 올림피아스가 이런 경우다. 책을 읽는 듯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발음도 별로 였지만 올림피아스에 대한 캐릭터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녀는 이아손의 부인이었던 마녀 메디아가 아닌 사랑을 갈구했지만 끝내 그것을 얻지 못한 불운한 여인을 연기했어야 한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존경과 남편이었음을, 아들의 헌신적인 호의였음을 감독은 놓치고 있다.

졸리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감독은 올림피아스를 해석하는데 마녀 메디아를 택했다. 이런 선택은 필연적으로 필립왕의 암살을 내부자설로 몰아 갔고, 알렉산더의 즉위가 지극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훼손한다. 알렉산더의 왕위는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지킨 것이기도 한다는 점을 그는 간과하고 있다. 부친의 총애를 받은 아들이라면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무실한 왕권을 얻기보다는 안정된 왕권 상속을 노리는 것이 더 전략적으로 현명하다.

사실 후세의 일부 역사가들에 의해 제기된 필립 암살의 내부자설에서 그것의 배후로 지목되는 사람은 모후 올림피아스가 아니라 알렉산더 그 자신이다. 그가 이집트의 아몬 신전에 청한 신탁에는 필립왕의 암살자들이 모두 신의 처벌을 받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 자신이 연루되어있다면 부친살해의 죄가 자신에게도 직접적 미치는지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오디푸스와 메디아를 등장시킴으로써 시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랑과 영광이라는 주제에 첨가된 부친 살해의 업과 처벌은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훼손하고 불분명하게 만든다. 졸리라는 비싼 배우가 아니었더라면 조금 덜 튀는 올림피아스를 그려낼 수 있었고 부친살해의 업과 처벌이라는 자칫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는 사건을 배제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_M#]
[#M_ 록산느, 인디아, 세계 제국| ! |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평가를 받는 록산느는 사실 후세(정확하게는 BBC의 다큐멘터리)의 역사가들에 의해서나 언급된다. 고대 역사서에 등장하는 록산느는 고작 한 두 문장에 불과할 뿐이다. 알렉산더 사후 임신중이던 마케도니아인들의 지지를 받은 록산나가 알렉산더의 정실인 스타티라를 처형했다는 대목이다. 정치적 중요성을 토대로 사건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고대 역사가들에게 록산느는 말 그대로 대왕의 사생활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록산느는 헤파에스티온과 함께 올림피아에 대한 대척점을 이루며 사랑에 대한 알렉산더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극에서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역사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인물들이 바로 올림피아스 반대편에 위치한 이 둘이 아닐까 싶다.

<세계사 편력>에서 네루는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에 대해 그의 딸 인디라에게 이런 톤으로 설명한다.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조차도 인도의 지방 참주에 불과했던 포루스를 이기지 못했노라고. 알렉산더가 인도를 이긴 것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인도인들이 멀리 서 온 정복자에게 베푼 작은 호의를 승리로 오해한 것이라고. 알렉산더가 점유한 지역은 인도가 아니라 인도의 변경에 지나지 않노라고. 알렉산더가 인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코끼리와 기마술로 무장한 인도의 정규군을 이겨야 했노라고. 강대한 전성기의 페르시아조차 넘보지 못했던 인도의 정규군을 상대로 싸운다면 상승의 알렉산더조차 쉽지는 않았을 거라고] 이렇게 말한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네루가 딸에게 쓴 이 편지가 떠올랐다. 당시의 인도인들은 드라나다족이 아닌 백인이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피부색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알렉산더에 대한 비난은 애당초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미개인을 연상시키는 인도인을 통해 오히려 세계 제국의 열망 하나만큼은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_M#]
알렉산더의 열정은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차분하게 마음 속에 스며든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쫓는다. 영웅도 이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후세의 우리는 그 누구도 알렉산더의 열망을 실현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그의 실패가 필연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필연적인 실패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은 인간의 특권이다.

사랑도 영광도 어느 것 하나 충분하게 얻지는 못했지만(물론 알렉산더가 생각하기에 말이다) 알렉산더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라는 씨앗을 우리에게 남겼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선물한 것처럼. 신이 아닌 인간이 30여년의 짧은 운명으로 선사한 것 치고는 원대한 희망이다.

사실 스톤의 시나리오는 매우 정확한 인용을 자랑한다. 대화의 대부분은 역사에 기록된 실제 알렉산더의 말이다. 극의 흐름에 따라 의외의 장소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극적 형식을 따르고 있음에도 지금껏 알려진 역사에 충실하다. 다만 신화의 과도한 인용만큼은 마음에 걸린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사용할 수 있는 상징의 수는 제한이 있는 법인데 그는 알렉산더에서 다소 과도한 상징을 인용했다. 이 점 만큼은 그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려한 볼거리가 없더라도 난 그의 알렉산더를 즐거운 마음으로 즐겼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숨이 막힐 듯한 박력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아이스킬로스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올리버 스톤판 알렉산더를 보러 간 것이기 때문이다

4 thoughts on “Alexander”

  1. 저는 알렉산더하고 사자왕 리처드가 참 비슷한 인간들이었다고 생각해요. 둘 다 그렇게 뻔뻔스럽고, 자기 운명에 확신이 있었으며 호오와 선악이 모순적일 정도로 분명했죠. 차이라면 다리우스(몇세더라?)가 살라흐 앗 딘만큼 영악하지 못했다는 점 정도일까요.

  2. 살라흐 앗 딘에게는 성왕 누르 알 딘의 그림자가 있었기에 아쉬었던 것 같아요.
    사실 아밀 말루프의 < 이교도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 나온 뒤에는
    제 마음 속의 사자심왕 리처드의 이미지는 급락을 거듭하고 있거든요.

    쁘뉴마님의 코멘트를 읽고 보니 알렉산더하고 리처드 사이에 예상외로 공통점이 많네요.
    출생이 주는 자신감부터, 죽음까지 비교할 만한 부분이 한가득이군요.

  3. “둘 다 그렇게 뻔뻔스럽고, 자기 운명에 확신이 있었으며 호오와 선악이 모순적일 정도로 분명했죠.” <- 어쩐지 부시 주니어가 생각납니다. -_-;; (영화는 아직 안봤어요.)

  4. 2000년까지만 해도 Jr.가 매에서 태어난 솔개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싫었는데 요즘은 매에게서 태어난 것도 재능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재선에 성공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인식이 달라지더라구요. Jr. bullshit! 하기 보다는 흥미가 생겼다고 해야할까요?

    정말 F~~ idiot였더라면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겠죠. 근래의 분위기는 Jr.에 호의적인 표현만으로도 덜떨어진 수구 취급을 받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긴 합니다만 증오에 눈이 멀어 상대를 얕잡아 보거나 절대악으로 몰아 붙이는 실수는 범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증오가 아닌 인도적 견지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의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그것이 증오인지 진정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트렌드에 불과한지 구분이 어렵더라구요.

    (사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네가지 테마가 Our P, Anti조선, 블로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Jr.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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