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
스무 살 겨울을 함께한 그녀는 로맹 가리를 좋아했다. 그녀는 <새들이 페루로 가서 죽다>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책들이 서점에 풀리는 시기를 문의할 정도로 로맹 가리를 좋아했다. 사실 그녀와 달리 로맹 가리에 대한 내 인상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드골의 장례식이 끝난 후 앙드레 말로와 함께 뒤뚱뒤뚱 걸어가는 건장하면서도 위태로운 노인의 이미지가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당시 난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등장하는 노아르티에씨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한가지 더 있다. 피슈테르의 표절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어쩌면 파블리의 모델일지도 모를 로맹 가리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존재했다. 에드워드 데스트리가 내 자화상이라면 로맹 가리는 그런 내 자화상을 괴롭히는 멋진 악마임이 분명하다고 제멋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진세버그 같은 미인을 아내로 둔 이 복 받은 남자가 싫었다. 비록 그의 마지막이 이유가 불분명한 자살로 끝났다 해도 난 신의 은총을 듬뿍 받은 다채로운 경력의 이 남자가 싫었다.

하지만 유럽의 교육은 이 남자에 대한 반감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듯 싶다. 모든 것을 다 누린 이 호방한 사내를 향해 치밀어 올랐던 반항심이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흐릿해 진다. 공군 대위이자, 외교관, 대변인이자 작가라는 요란한 직함을 가진 이 사내의 마음 속에 담긴 우울함과 불안감이 소설을 통해 다가온다. 어쩌면 스무 살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로맹 가리를 좋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츠바이크를 좋아하는 이유나, 그녀가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이유나 알고 보면 다를 바가 없다.

유럽의 교육
<유럽의 교육>은 그리 낯선 책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란 제목으로 일전에 출간 되었던 책이고 Noting important ever dies란 문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실 난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 가끔 인용되는 [중요한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장에 흥미를 가져 왔었는데 이제야 그 원전을 발견한 듯 싶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문장은 이 소설의 반쪽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문장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반면 중요하지 않는 것들은 시시때때로 이유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소멸은 중요한 것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환상이자 중요한 것들을 훼손시키는 원인이다.

중요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화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사라지지 않지만 중요하지 않는 것들이 사라지면서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무의미한 반복이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할 때에야 비로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사라지고 중요한 것만 남은 세계는 또 다시 분열하고 폭발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유럽의 교육이다.

물론 <유럽의 교육>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소설의 표면을 채식하고 있는 장식은 중요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로맹 가리식의 현실적이면서도(리얼리즘적 요소) 희망을 잃지 않는, 그러면서도 지독하게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장식인데 그 수법이 꽤나 노련하고 억지가 없다. 사실 이 장식만으로도 이 소설은 꽤나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유럽의 교육>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쩌면 이 소설을 쓰는 당시의 작가는 훗날의 역사에 기록될 대전환을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주어진 현실을 뛰어넘은 예언자적 요소가 다분한 직업이다. 하늘을 나는 조종사였던 로맹 가리 역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미래의 환영을 보았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는다면 1941~42년 폴란드의 파르티잔과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삼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중요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만 남은 세상은 까닭 없는 공허함이 넘친다. 시간이 흘러 중요하지 않는 것들이 생성되지만 까닭 없는 공허함은 세상에 분열과 폭발을 요구한다. 단지 얼마나 더 많은 유예를 허락 받았냐의 차이일 뿐 중요하지 않는 것들이 사라진 세상은 시한 폭탄처럼 째깍거린다.

중요한 것들이 살아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면 이 소설은 전쟁을 배경으로 삼은 리얼리즘을 자랑하는 성장 소설로 읽혀 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들만 살아남은 세상의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에 초점을 맞추면 유럽의 교육은 중요하지 않는 것들을 잃어버림으로써 반복되는 고통이라는 사실이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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