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omnia of Snowing

창밖에 눈이 내린다. 소박하게 내리는 눈을 보며 내일 아침 얼어 붙을 길과 그 길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을 나를 상상하고 있자니 소름이 돋는다. 눈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은 세파에 닳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마음이 닳아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눈은 매서운 바람보다 내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든다. 눈에 내리고 나면 내 마음은 혼란스럽고, 정리가 될 된 옷매무새처럼 어색하다. 눈이 내리고 나면 그 눈이 다 녹아 지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내 마음은 단 한순간도 편하지 않다.

눈이 오는 날이면, 눈 내리는 길을 걷고 있노라면 난 다시 한번 기억의 예속 아래 놓이게 된다. 눈에 관한 스밀라의 감각의 한구절이 생각나면서 기억은 걷잡을 수 없이 마음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긴 한숨이 흘러 나온다. 걸음은 무거워지고 몸도 마음만큼이나 피곤해 진다. 이래서 난 눈이 싫다. 순백으로 채워진 세상은 이익을 탐하고 계산 빠른 나에게 이질감을 부여한다. 보호색을 잃고 사냥꾼에 쫓기는 새처럼 느린 걸음을 억지로 재촉해 눈으로부터 도망친다.

눈 내리는 날에는 향긋한 차를 마시면서 과거의 인연들이 흔적을 찾게 된다. 전화 번호를 잊었다느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입에 달린 변명을 뒤로 하고 진지하게 과거의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뒤를 밟아간다. 명백하게 들어나지는 않지만 대명사로 표기되는 그가 내가 아닐까? 옛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 말이 혹 내가 한 말은 아닐까?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던 녀석이 원하는 과거의 어디쯤에나 내가 서있을까? 문장을 해석하고 혼신을 힘을 다해 행간을 파악해 나간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열정보다 더한 열정으로 해석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눈 오는 날이면 난 버릇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눈이 멈춘 하늘은 천연한 햇살을 드러낸다. 햇살에 녹아 걸음을 붙잡는 진창은 내 마음의 수렁 같다. 눈이 내리는 순간은 황홀하지만 과거의 추억들이 단단하게 굳은 마음의 빗장을 풀어 헤치지만 햇살에 그러난 진실은 늘 볼썽 사납다.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베르누이의 향수에 중독되어 광란의 저녁을 보낸 도시의 시민들이 느꼈을 그 부끄러움이 나에게 찾아온다. 눈은 내면의 진창과 치졸함에 눈을 뜨게 만들지만 실상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햇살이 뜨고 눈이 녹아 사라지면 난 짐짓 능청을 떨 것이며 행동과 판단을 번복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할 것이다. 지나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 대신 다가올 것들에 대한 설레임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것이며 괴로와 한숨 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지금 창밖에는 눈이 내린다. 함박눈이 곱게 거리에 쌓여간다. 나트륨등은 눈에 특별한 생명을 부여하고 바람은 거대한 군무를 연출한다. 내일 하루는, 눈이 녹을 모레까지 내 마음은 한순간도 편하지 않겠지만 어린 소년들은 올해의 첫눈으로 눈싸움을 할 것이며 어린 소녀들은 첫눈을 주제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하지만 난 어서 눈이 사라진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장난처럼 오후부터 내린 눈의 흔적이 말끔하게 사라지길 기원하지만 내 기원의 헛됨을 너무나도 잘안다.

창문을 열고 귀를 귀울이면 눈이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눈에 쌓이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리는지, 혹은 눈이 내리는 동안 편집증 환자처럼 갈피를 못잡을 내일의 내가 두려운 탓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스물 다섯 먹은 무엄한 사내는 잠 못이루는 밤인데 하늘은 더욱 풍성한 눈을 땅위에 선물한다. 여항말로 주책 머리 없는 노인네라 투덜거리며 쉽게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난 눈이 두렵다. 그 옛날에는 사랑해 마지 않았던 눈도 나이를 먹고 시간이 지나면 두려운 그 무엇이 된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