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오늘날 금융업은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산업 가운데 하나다. 아니 빠른 움직임만큼이나 흥미로운 관찰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해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환전상의 탁자에서 시작된 금융업은(혹은 징세업자-푸블리카누스-의 입찰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업이 되어버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현대 산업 사회는 자본의 사회이고 자본이 낳은 적자는 금융 산업뿐이라고 해도 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본의 적자인 금융 산업은 어떤 자식들을 낳았을까? 불과 1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산업은 많은 자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보험업, 상업 은행, 투자 은행, 투자 운용, 증권사 등.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인가 금융 산업은 왕좌를 빼앗길 거라는 예언을 받은 크로노스처럼 자식들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지난 십년 동안 인수와 합병은 광범한 범위에서 이루어졌고 90년대 초반에 존재했던 기업을 찾기 위해서는 현생 인류의 게통도보다 배는 복잡한 도표가 필요하다. 아니 왠만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복잡해진 기업의 이름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여의치 않다.

아니 여의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렵다. 불과 십년 전에 출간 된 목록에 존재했던 financial corp.의 반은 오늘날 흔적조차 없다. 기업 수준이 아니라 영업 부문까지 시야를 넓혀보면 복잡함은 배가 된다. 기업은 버젓이 살아 있지만 영업 부문을 팔아 넘기거나 인수함으로써 내용이 달라진 기업들이 도처에서 출몰하기 때문이다.

체급 올리기 혹은 몸집 키우기
하지만 이런 복잡한 움직임에도 일정한 법칙은 있다. 일견 복잡계처럼 보이는 금융 산업에도 고전 물리학의 F=ma나 F=μmg 필적할 만한 법칙이 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복싱에서 체급 불리기와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체급이 더 나갈수록 펀치의 세기가 강해지며 맷집도 좋아진다. Financial corp.들이 M&A를 통해 규모를 늘리는 것도 알고 보면 공격력과 맷집을 강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Financial Corp.들에게 이런 고육지책을 강요했을까?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고,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을 제압한다]란 말이 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법칙가운데 하나인데 금융 산업에서만큼은 이 법칙의 절반 밖에 통하지 않는다. 빠른 것은 좋지만 가벼운 것은 적에게 제압당하기 딱 좋다. 설령 제압당하지 않더라도 경기 변동이란 거센 폭풍우 속에서 가벼운 것은 쓸려가기 십상이다.

사실 꽤나 오랫동안 다시 말해 스티걸-글래스 법이 미국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규정한 반세기동안 금융 산업은 평화를 만끽했다. 다소간의 경기에 따른 변화는 있었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당시의 진폭은 웃어 넘길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주택 채권과 관련된 상업 은행의 대몰락 이후 달라졌다.

상업 은행은 그 동안 짭짤한 수입을 올렸던 주택 채권 시장의 위험성을 다시 평가했고, 주택 채권 시장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상업은행의 주력 부문인 소비금융만으로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슬금슬금 무너지던 양자간의 경계는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사라져 갔다. 신경제의 버블과 함께 투자 은행은 두둑한 수익을 거두었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장에 접근한 상업 은행들도 적잖은 수익을 챙겼다.

하지만 버블이 붕괴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몸집이 아닌 빠르기로 승부를 걸었던 투자 은행들은 손실을 견딜 맷집이 부족했고 투자 은행에 맷집(다시 말해 여신)을 지원했던 상업 은행들도 투자 은행들의 도산과 함께 쓰라린 손실을 보았다. 투자 은행은 기업금융 혹은 투자 금융이 높은 수익을 보장하긴 하지만 그만큼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식했고, 경기 변동에 따른 진폭을 견디기 위해서는 소비 금융이란 안전판을 보유할 필요성을 느꼈다.

상업 은행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수익성에 대한 주주들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여신 지원 같은 간접 투자 방식이 아니라 위험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직접 투자 방식을 고려하게 되었다. 무차별적인 몸집 불리기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은행의 핵심 전략
우리 나라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상업 은행과 투자 은행의 분리 대신에 소비 금융과 기업 금융을 전문으로 하는 형식이 아닌 내용의 차이가 존재하는 은행들이 있었고 이들은 최근 10년 동안의 외환 위기와 경기 후퇴를 경험하면서 현실에 눈을 떴다. 막대한 부실 채권으로 은행들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면서, 또 기업 금융보다는 소비 금융을 전문으로 했던 은행들의 높은 수익성과 건재를 보면서 은행들은 가계 금융이란 맷집을 키우기로 전략을 변경했다.

국민 은행과 장기신용은행의 M&A이후 은행들은 인수와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렸다. M&A를 통해 고객에게 전방위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모토와 다르게 은행권의 속내는 경기 진폭을 막아줄 맷집과 수익성을 동시에 노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다시 말해 다각화와 대형화만이 살 길이라는 데 시중 은행들의 이해가 모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이런 상황 인식은 충분한데 실행 방법에는 걸림돌이 많다. 다각화와 대형화가 대세인 것은 알지만 M&A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정책과 관행, 타성적인 조직이 문제다.

정책과 관행, 타성적 조직의 삼중고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은행간의 M&A를 가로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공적 자금이다. 독자 생존이 가능할 만큼 체질이 강한 은행, 다른 은행을 인수할 만한 능력을 갖춘 은행은 지난 몇 년간의 활발한 통합에도 불구하고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인수할 만한 대상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정부가 대주주로 남아 있는 부실 은행들을 인수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의 투입은 시장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선택에 가깝고,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보다는 정치 논리나 여론의 향배에 관심을 기울 수 밖에 없다. 사실 이것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에서 명백하게 들어 난다. 이른바 부실 은행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일관된 원칙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대처했을 뿐이다.

이런 예측불가능성은 국내 은행에 의한 M&A 가능성을 낮춘다.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은행 문제에서 시장 지향적인 협상력을 가지고 M&A를 성사시킬 수 있는 국내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공적 자금 투입 은행의 처리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다루어지는 이상 정부의 협상력도 국내 은행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제대로 된 협상력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은 국외 자본 뿐이다.

두 번째 문제는 관행이다. 모든 산업이 정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느날 일반론에 가깝다. 하지만 금융 산업의 경우 이런 일반론은 다른 산업에 비해 특수화된 일반론에 가깝다. 정책에 영향을 받을 뿐더러 다른 산업에 비해서도 더욱 크게 받는다. 정부는 법령이외에도 각종 금융감독기관을 통해 금융 산업에 폭 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근래 들어 정부는 관치금융이란 오명을 벗으려 노력 중이기는 하지만 관행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은행장 인선에서 아직도 정부의 입김은 무시 못할 정도로 강하며, 은행의 주주권은 걸핏하면 무시 받기 일수다.

금융과 일반 산업, 소유와 지배의 분리라는 원칙은 명백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정책 안에 내재되어 있다. 해마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는다는 정부 정책의 메인 프레임이 변했던 적은 한번도 없다. [근본적인 대책]이 반창고 수준 이상으로 올라갔던 적도 없다. 굳어진 메인 프레임은 관행을 고착화 시키고 변화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사실 현재의 메인 프레임으로는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도 없다.(금융지주회사법은 메임 프레임의 구조 변경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재된 원칙은 그대로다) 하지만 여전히 정책은 현재의 메임 프레임을 유지하고, 보완하려는 대책에 지나지 않는다. 변화하는 금융 산업의 흐름에 어울릴 만한 원칙의 변경은 여전히 요원한 일로 보인다.

마지막 문제는 은행 내부의 타성적인 조직 문화다. 전통적으로 은행 조직은 보수적이고 신중한 문화를 유지했다. 게다가 각 은행에 따라 고유한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외부인에 대한 벽이 두터웠다. 이런 은행 내부에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위계 서열과 지점망을 중심으로 성장한 조직 문화와 영업 전략은 사업 부문 단위로 광역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

사실 오늘의 은행이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운 이면에는 내부의 조직 문제와 외부의 조직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내부의 지점망과 사업 부문의 조직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경전이 첫번째 이고, 두 번째는 서로 이질적인 조직 문화에서 성장한 구성원들 모두가 수긍할만한 원칙을 세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권의 보수적인 인사시스템은 순혈주의 인사 원칙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은행 시스템은 기업 금융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예치고객을 늘리면 수익이 늘어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인력은 다각화와 대형화를 위한 M&A를 성사시킬 전략과 조직 문화의 전문가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은행 문화는 이런 인력들을 내부 시스템에서 키워낼 역동성이 항상 부족했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협
벽두에 있는 SCB의 제일은행 인수 이후 외국계 Financial Corp.와 시중 은행간의 경쟁은 인구에 명백하고도 실존하는 위협으로 떠올랐다. 은행들은 신년사에서 공격 경영과 몸집 불리기를 경쟁적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표어와 다르게 올해 안에 시중 은행간의 인수합병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시중 은행에게는 표어를 현실화 시킬 인력과 자원이 없다. 지금의 시중 은행은 숨 고르기가 아직 덜 끝난 상황이다. 적어도 올 하반기에 이르러야 겨우 숨 고르기를 끝내고 확장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숨 고르기가 끝나도 상황은 국내 시중 은행들에게 유리하게 흐를 것 같지는 않다. 명백하면서도 실존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책과 관행, 조직의 삼중고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들을 극복하고 외국계 은행과 맞붙을 무렵이면 이미 경쟁은 극도로 심화될 것이다.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외국계 은행의 진출로 고금리와 낮은 수수료라는 호재를 누릴 수 있겠지만 은행의 수익성은 악화될 것이고, 지금껏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기업의 고급 정보도 외국계 Financial Corp.에 손쉽게 유출될 것이다.

게다가 이 싸움의 끝에 공존은 없다. 공존을 위해서는 금융 시장의 과점화가 용인되어야 하고, 이것을 막기 위해서 무한 경쟁을 허용하면 국내 은행은 존폐를 보장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선진 자본 시장과의 밀접한 동조화는 경기 변동성의 낙폭을 증가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이래 저래 상황은 어렵다. 하지만 해법은 찾는 것은 상황보다 더 어렵다.
[#M_ P.S. | 덧붙임말이 아니라 일기 수준이 되어 버렸다. |

서술을 보충할 Case와 통계자료는 아직 미입력 상태. 찾아 놓기는 했지만 당장 급한 것은 아니므로 언제 보충할지는 미지수. 다만 모든 입력이 완료될 경우 텀 페이퍼 수준으로 완성될 듯. 주와 하이퍼 텍스트를 이용한 문서로 꾸밀까 본문을 중시하는 본래의 스타일로 꾸밀까 고민 중임. 며칠 전에 출시된 Pages를 이용해 작업한 첫번째 결과물인데 사용이 편리해서 앞으로 MS Word 대신 애용할 듯 싶다.

점심 무렵 놀려온 친구는 나의 이 어이없는 취미 생활에 개탄했지만 스물 다섯이 된 이후 마음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뭐랄까?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11개월 남은 휴가가 끝나가는 것도 아쉽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확실히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기분이 앞서기도 한다. 해야할 일들과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어린 시절, 아직 시간에 쫓기지 전에 이런 것들을 알았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무의미하게 순간의 즐거움을 쫓아 낭비했던 탕아의 삶은 부메랑이 되어 나를 덮친다.

그나저나 원철군. 알다시피 내 고민은 12분 짜리라고. 그 이상을 고민에 쏟아붓는 것은 명백한 넌센스야. 다음날 아침이면 항상 새로운 하루를 이겨낼 힘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논외로 하고 말이야.

_M#]

2 thoughts on “Financial…”

  1. 아직도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금융권이지만,
    꼼꼼히 생각해보면 한계가 명확히 보인다.
    요즘에 와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음.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산업은 없단 말인가?(물론 경영학 내에서..)

  2. 아직 마감에 임박한 것은 아니니까 조금 더 사태를 관망해 보자고.
    그런데 요즘은 나이들어서 하고 싶은 일이 조금씩 변하고 있어.
    빨리 은퇴해서 여행이나 다니며 책이나 읽는 그런 삶을 그리워 했는데

    이제는 부실 기업 인수해서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이 하고 싶어지더라.
    왠지 모르게 가장 짜릿하고, 보람되며, 재미난 일이 아닐까 싶거든.
    물론 지금은 자본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니까 꿈에 불과하지만
    한 30년 뒤에는 충분하게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열심히 해두라고. 가끔가다 이것이 짐 콜린스의 약영향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지금은 안정을 추구하고, 나이가 들고 충분한 경험과 힘을 획득하면 그때에는 본격적으로 모험을 시작해 보자구.

    아무튼 다음 세대를 이끌 패러다임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금융 산업이 소수의 기업으로 구성된 서비스 산업으로 격하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여. 한 20년 쯤 뒤에는 자본의 지배라는 말도 고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뭐 아직까지는 판단할 증거가 부족하니까. 연기금이 폭발하면 그때 쯤에는 확연하게 향후 위상이 드러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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