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4세의 청춘

오늘에서야 막내 누이는 <앙리 4세의 청춘>을 완독했다. 세 앙리에 대하여, 잿빛 수염과 노고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늘었다는 사실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비록 막내 누이의 완독을 기다리는 사이에 난 스물 다섯이 되어버렸고, 하인리히 만이 말해주었던 지혜의 많은 부분을 까먹게 되었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도 난 하인리히 만이 앙리 4세의 입을 빌려 나의 작은 전투들이라 말했던 그 장면을 떠올린다. 앙리 3세와 나바르의 앙리가 만났을 때 아무도 나바르의 좁아진 얼굴과 잿빛 수염에서 과거의 익살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서술을 떠올린다. 화약 묻은 빵과 갑옷에 닳은 조끼. 어쩌면 나에게 필요할지도 모를 것들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어렵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때로는 무겁게 좌절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난 앙리의 작은 전투들을 떠올린다. 유쾌하고 쾌활하며 믿음을 잃지 않았던 한 왕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위대한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교훈을 마음 속에 되새긴다. 무모함과 불안감, 두려움이 항상 마음을 앞서지만 때때로 교훈은 이들을 넘어서는 힘을 주기도 한다.

힘겨움에 포기하고자 할 때 난 화약 묻은 빵 껍질과 사과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하던 가난한 왕을 생각한다. 포격으로 가지를 잃은 나무 그늘 아래 서서 가난한 왕국을 부유하게 만들 꿈에 행복했던 한 왕을 생각한다. 아직 나에게는 신념과 꿈이 있으니 내 작은 전투는 외롭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권태로움에 잠겨 있던 정신이 고양되며 다시 한번 무기를 잡을 힘이 주어진다. 이래서 삶은 어려운 것이기도 하지만 어렵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푸세를 통해 현실에서 살아 남기 위한 기술을 배운다면 앙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좌절을 모르는, 힘겨움을 견디어 내는 굳건한 신념이다. 비록 오늘의 난 힘들어 하고 좌절할지도 모르겠지만 내일의 난 모든 힘겨움을 이겨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혹 내일 좌절한다 하더라도 모레에는 수염이 잿빛이 될 때까지 운명의 농락과 수고로움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스물을 울린 책은 없다. 하지만 스물에 만나 내 삶을 경건하고, 행복하며, 수고를 두려워 하지 않게 만든 책은 있다. 친구처럼, 혹은 스승처럼 판단의 순간 순간마다 난 하인리히 만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가 아그리파와 모르네를 통해 해주는 충고에 귀를 귀울이며, 몽테뉴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이성과 신념에 대해 생각한다. 앙리 4세의 청춘은 그저 재미난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오랜 지혜와 통찰력으로 단련된 대가가 남긴 스물에 만난 내 소중한 벗이다.
099252.pdf

6 thoughts on “앙리4세의 청춘”

  1. 너의 누님과 차별성을 둔 스킨을 보고파.ㅋㅋ
    이제 뒤마씨의 소설도 어느정도 끝이 보인다. 200페이지 남았어.
    젠장, 상법이 저만큼 남았다면 좋을텐데…

    좀전에 자네가 한 말이 역시 내게도 예외는 아니다.
    건들자니 한도 끝도 없는 분량이라니….

  2. 누님과 나 사이에는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 맺음이 있다고
    그러니 괜시리 다르게 스킨을 사용한다든지 해서
    괜시리 착취 관계를 종식시킬 예정같은 것은 없는 셈이지.

    아무튼 이제 발렌틴만 깨어나면 끝인가?
    난 맨 마지막 파트에서 막시밀리앵과 에드몽이 나누는
    대화가 아직도 이해가 안가더라. 어째서 모렐은 안죽는 것인지.

    아무튼 기업법도 제대로 보려면 한달 이상 걸리는 꽤나 두꺼운 책이라고
    설날에 공부하기 같은 야심찬 계획을 세워서 개강하기 전에는 끝내봄이 어떤가?

  3. 뒤마의 ‘여왕 마고’도 참 재미있었는데 말이에요. (솔직히 실제 그 인물에 대한 제 편견에 비해서는 너무 미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그 시기의 유럽은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죽으면 죽었지 그곳에 직접 태어나보고 싶진 않지만.

  4. 그 게릴라 아저씨 맞습니다.
    다만 조금 더 정확한 사실을 밝히자면 여왕 마고에서 다루어지는 시대에는
    지금 제 나이보다 약간 어린 연배의 청년이었죠.
    (저도 아저씨 소리를 듣는데 그 나이라고 아저씨가 안될리는 없습니다만..)

    전 이자벨 아자니 주연의 Reine Margot을 먼저 보고 읽은 터라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실제 역사와 소설 사이에 있는 소소한 괴리만 제외한다면 뒤마의 작품중 몽테크리스토백작 다음인 것 같아요. 삼총사나 여왕의 목걸이 보다는 휠씬 재미있죠.

    어려서는 앙리 4세에 매료되었는데 요즘은 발루아가의 마지막 왕인 앙리 3세가 약간 더 끌린답니다. 앙리4세의 청춘과 아르마다, 여왕 마고를 토대로 앙리 3세를 주제로 포스팅을 하나 올려볼까 하는 생각중이기도 하구요.

  5. 착취와 피착취? 그런거였어? 그래서 내 블로그 스킨 바꾸라고 들쑤신거야?
    연수 끝나면 네 스킨 컨셉 바꿔줄께.. 제발 내 스킨 좀 가져가지마라. 아우야.
    그리고 쓰려거든 카피라이터는 좀 바꾸고 써라.

  6. 그것이 귀찮아서 말이지.
    조금만 더 버티면 누나가 견디다 못해 바꿔줄 것으로 믿고 있었지.

    까유보테나 Brent Heighton으로 해줘.
    어울리는 그림은 골라서 내 데스크탑에 올려 놓았으니
    가져다가 작업하면 될 것이고. 비용은 백지쿠폰 1장 청구권 포기.
    자세한 세부 사항은 서울 다녀와서 말해줄께.
    서점가서 도록 좀 찾아보고 구상을 다듬어야 겠어.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