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상처 그 굴레 속에서

수줍은 애정고백
갑작스럽게 난장이에 대한 review, 아니 난장이가 실린 헤세의 단편 소설집 <사랑의 상처 그 굴레 속에서>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아침에 누님 방문을 닫으면서 언뜻 본 헤세의 초상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는 동안 난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던 [난장이]와 [이야기꾼]이 머리 속을 지나갔으며 아직도 <유리알 유희>를 완독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사실 헤르만 헤세의 <환상 동화집>이 출간되기 전까지 그의 단편 소설인 [난장이]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나만의 전유물이었다. 소풍이나 수학 여행 길에 가벼운 술 한잔과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난 담담한 어조로 [난장이]를 이야기 하곤 했다. 거친 사내 녀석들도 곤돌라에서 죽음을 맞는 난장이가 그의 강아지 피노를 부르는 부분에서는 숙연한 모습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고, 철없던 방랑 시대에 벤치에 사모하는 아기씨를 붙잡아 두기 위한 마지막 묘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점에서 <환상 동화집>의 첫 장을 여는 순간 난 그 동안 내가 부려왔던 마법의 비밀이 만인에게 공개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이상 난장이와 피노, 미쳐버린 베네치안 블론드의 미녀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겠구나. 술 한잔과 사랑에 대해서 떠들던 밤이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던 레퍼토리를 잃었다는 생각보다도, 나만의 이야기를 빼앗겼단 생각에 슬퍼졌다. 그만큼 난 헤세의 이 짧은 단편 소설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80년대의 작고 낡은 판본에서 느껴지던 난장이의 슬픈 사랑이 환상 혹은 동화란 테마로 값싸게 묶여진 현실에 분노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무엇인가?
꽤나 조숙했던 난 열 살 무렵 <사랑의 상처 그 굴레 속에서>를 읽으며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란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영향을 한껏 받은 90년대 초반에나 유행하던 문장이지만 나이를 두 배 반은 더 먹은 지금까지도 이 이상의 문장으로 이 책을 설명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환상 동화집>이 환상이란 이름으로 헤세가 그리고자 했던 사랑과 상처에 동화란 판타지를 입혔다면 <사랑의 상처 그 굴레 속에서>는 상업적 펜 터치가 묻지 않은 헤세의 완전한 알몸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꿈꾸던 사랑. 내가 꿈꾸던 사랑. 내가 겪은 사랑과 아픔 모두가 그 안에 있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난 이 책에 절판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안타까워 한다. 표절을 사랑하는 그 여자에게 이 책을 선물하겠다는 철없던 내 꿈은 이제는 보상 받을 길이 막막해 보인다.

사실 짧은 단편 소설 안에서 한 인간 사랑과 좌절을 그린다는 것이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랑에 조금 더 초연해질수록 대가의 깊은 통찰력에 놀라게 된다. 짧은 단편 안에 담긴 작가의 인식이 놀랍고, 한치의 오차조차 없이 소설 속 주인공과 똑같은 느낌을 갖는 내 감정이 덧없이 느껴진다. <사랑의 상처 그 굴레 속에서>는 그런 책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담긴 사랑이 이른바 로맨스는 아니다. 신에 대한 사랑과 남녀 간의 사랑, 책과 이야기에 대한 사랑도 함께 담겨져 있다. 이웃과 삶에 대한 사랑과 정열과 쾌락에 대한 탐닉도 담겨져 있다. 우화라는 원제 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솔직히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아니 어느 것 하나 재미나지 않은 글이 없다.

이 소설에는 사랑과 욕정, 방탕과 종교적 헌신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 단편들을 읽고 있노라면 혼란스러움 대신 사랑이 선명하게 손에 잡힌다. 욕정과 불륜조차 맑고 투명하게 느껴지는 단아한 문체와 야하면서도 잡스럽지 않은 소재의 탁월함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사실 이 소설집에 대해 더 이상 말을 늘어 놓는 것은 이 대가에게 큰 실례가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쯤에서 펜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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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_ etc | less.. | 월요일까지 서울에 있을 예정입니다. 월요일에는 강남교보문고와 예술의 전당에 가는 것 이외에는 한가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오랜 만에 차 한잔 하실 분들 망설이지 말고 연락주세요. 특히 파스타 노래부른 K군 전화 좀 켜놓으세요._M#]

4 thoughts on “사랑의 상처 그 굴레 속에서”

  1. 예당가시는군요, 어떤공연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
    푸생에서 마티스까지를 보러가야 하는데 어쩐지 의욕이 안생겨요.
    이러다가 놓치면 안되는데 말이예요.. ㅠㅠ

  2. 공연은 아니구요. 푸생에서 마티즈까지 전시회 보려구요.
    지금 잠들면 내일 일어날 수 있을지 장담이 안되긴 하지만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고 가야 또 몇 주를 참을 수 있을테니까요.
    시험 본 유휴증인지 몰라도 팔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이만 줄여야 할 듯 싶습니다.

  3. 난 헤세의 책을 어느해에 읽었었는지 시간이 많이 갔군…
    헤세의 작품을 접하고 내가 느낀 생각은 주제에 가장 적절하게 살을 붙이는 그의 탁월함과 자연스러움….
    글쓰기의 기본을 배우면서 또 이루기 어려운 한계를 느끼게 해준 존경하는 작가……
    첨에 너무 완벽함을 만나면 그다음의 수준의 단계는 인내하기 힘든 때도 있다.
    갑자기 자란 어른아이처럼 말이지 (핑계일 수도 있고…)
    나한테 난장이는 그랬고 묵직한 돌덩이였다.
    블로그에 있는 책표지를 보면서 그걸 어디서 가져왔던가 생각중이다.
    자랑을 좀 하자면 그책 큰누이가 어느날 책장에 놓았다는 사실을
    이젠 좀 늙어버린 그대가 기억하려는지…
    그런데 그떄가 언제였더라…..?

  4. 헤세의 고약스러움은 바로 그 찾기 쉬운 주제야.
    찾기 쉽게 일부러 보여준다는 사실을 잊을만큼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어려서는 마냥 쉽고, 나이 들수록 난해해지지.

    하지만 우화에 담긴 글들은 지금봐도 멋진 것 같아. 성자와 빵도 그렇고.
    그런데 누나. 절대 그 책을 누나가 책장에 놓은 것은 아니야.
    첫장을 열어보면 1986년 누군가의 생일 선물로 그 책이 건네졌는데
    아쉽게도 그 이름은 누나 이름이 아니거든.

    젊고 싱싱한 내 기억력을 의심하거나 시험하지 말라.
    아직 뇌경변이 일어나기에는 멀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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