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어쩌면 새벽녘일지도 모를 시간에 눈 쌓인 거리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로수가 병풍처럼 둘러진 인도를 따라 걸으며 눈에 찍힌 족적을 유심히 본다. 족문이 흐트러지는 일도, 보폭이 줄어드는 일도 없는 무미건조한 걸음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어느 겨울날.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눈안개조차도 오렌지빛의 나트륨 조명색을 띠는 이런 날. 풍경이 주는 기분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규칙적으로 내딛는 내 걸음이 싫었다. 눈을 관찰하기 위해 잠시 멈춰도 보고, 뒤도 돌아보고, 옆으로도 걸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너무 빠르게 걷지는 않았지만 눈 쌓인 거리를 정형화된 걸음으로 걸어가는 내게서 사람 냄새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차가운 바람이 머리 속을 시원하게 매만져 준다. 오랜 시간동안 쌓이고 농축되어 이제는 고민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사고의 침전물들을 차가운 바람은 시원하게 쓸어낸다. 캐서린을 찾아 광야를 헤매는 히스클리프의 마음을 오랜만에 되찾았다.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에서 시원스레 웃어본다. 마음이 한없이 개운해지며 상쾌함이 느껴진다.
덧없는 사랑도, 성취욕도 텅 빈 거리의 스산함 만큼이나 재미없는 것이라고 되뇌어 본다. 바람은 차갑다. 추위는 허벅지까지 침범했고, 작은 바람에도 눈물이 솟구친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난 이런 밤이 싫지 않다. 비록 내일이 되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또 한번 번잡한 하루를 보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내 느끼는 기분은 오래전 그날 느꼈던 2분 34초의 기이한 행복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집에 내려갈떄 쯤이면 이미 다 녹아 있겠지?
여긴선 제대로 눈을 본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믿을 수가 없구나!
옛날 우리 새집이 있던 그 거리니?
도서관 앞 건물…..
사진속의 눈이 휙 하고 내 눈속으로 들어온다…
곧 보자…
정확한걸. 꽤나 오랫동안 못가봤을텐데. 게다가 누나가 기억하는 모습과 저 구도는 다를텐데 정확하게 찍어내는 것을 보면 역시 누나는 찍기의 여왕이야.
눈은 예전에 다 녹았고, 저 사진도 작년에 찍은 것이야. 요즘은 귀찮아서 카메라 안들고 다녀.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었을 때 내린 눈은 사진에 담긴 풍경을 능가하는 멋스러움와 황량함이 담겨 있었지. 바람을 타고 몸을 기어오르는 눈가루가 얼마나 멋졌는지 몰라.
하이얌님 하이. 고흐를 좋아하는군요. 흠.. 암튼 자주 보루올께요.
네. 좋아하는 편이예요,
소지품 중에 하나 정도는 항상 고흐와 관련된 품목이 있을 정도로요.
하지만 누이 가운데 한 사람이 방을 통채로 고흐로 채우고 있어서 그런지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기는 어렵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구요. 자주 놀러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