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두박질(Headlong)

Pieter Bruegel, the Elder
난 브뤼겔의 그림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물어온다면 대답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어린 시절 백과 사전을 넘기다가 우연히 그의 그림에 매혹되었다는 말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브뤼겔의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격식있고, 우아한 고전의 세계에서 나타난 만화같다고 해야할까? 고전미의 답답한 세계에 내리쬐는 한 줄기 햇살같다고 해야할까? 물론 브뤼겔과 우리가 익히 아는 매너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고전미의 답답한 세계에 등장한 낯설음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난 그 점이 좋았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낳은 거장들의 꽉 짜인 형식이 슬슬 지겨워 졌기 때문이다.(당시의 난 인상파를 몰랐다. 인상파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휠씬 나중의 일이었다. 그리고 북유럽의 르네상스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구분하는 사고 따위와는 거리가 먼 철부지 소년이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실체를 잡을 수 없는 화가에 대한 동경이었다. 수수께끼같다고 해야 할까? 역사 속에는 브뤼겔이란 성을 가진 작가가 4명이나 존재하지만 그들이 남긴 이야기는 매우 적다. 생년 미상. 자세한 약력도 삶도 남아 있지 않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히어로인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는 격이 다른 대접이다. 델프트 화풍의 전성기가 남긴 화려한 뒷이야기도 없다. 오랫동안 램브란트에 가려져 있던 베르메르는 슈발리에의 소설 한 권으로 망각의 강에서 건져졌지만 브뤼겔은 여전히 농민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채 의문 부호 투성이로 남겨져 있다.

브뤼겔의 그림은 때때로 따뜻하며, 때때로 우울하다. 밝은 톤과 어두운 톤이 교차하며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을 여정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교수대와 무장한 군대를 그린 붓으로 활기차고 유머러스한 생활을 그린다. 브뤼겔의 작품은 아이러니와 혼란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와 혼란 속에서도 재치가 번듯인다. 우리는 그에 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그의 그림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던 그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자유다.

다중의 블랙 코메디

브뤼겔의 그림을 좋아하는 만큼 난 부커상과 소설에 약하다. 브뤼겔의 그림을 소재로 삼은데다가 부커상 최종 결선까지 오른 소설이라면 나의 저항 계수는 제로에 가깝다. 1월의 마지막 날 경건한 마음으로 서점을 순례하던 난 우연히 스친 부커와 브뤼겔 그리고 블랙 코메디라는 단어에 이성을 잃었다. <이런 소설은 아무리 바빠도 읽어줘야 해. 이런 소설조차 읽은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삶을 열심히 살지 않았다는 태만의 증표라고> 마음 속은 악마는 차분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속삭인다. 오래지 않아 난 녀석의 작은 속삭임에 무너졌다. 무심결에 첫번째 챕터를 읽어버린 것이다.

마이클 프레인의 <곤두박질>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면서, 그것을 그린 대가에 관한 이야기이며, 잘 교육받은 지식인의 헛물켜기에 대한 조소이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 소설을 3중의 블랙 코메디로 정의했는데 솔직히 3중의 코메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블랙 코메디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작가는 진지하지만 진지함 속에서 시종 일관 비웃음을 지우지 않는다. 주인공 마이클의 진지한 열정조차도, 되려 그 열정이 강렬하면 강렬할 수록 비웃음은 강해진다. 그러나 주인공 마이클 비웃는 작가의 시선에 동참하는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를 비웃는 것은 스스로를 비웃은 것임을. 독자와 마이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마이클과 우리를 비웃는 작가조차도 결국에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웃음거리임을 깨닫게 된다.

제목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곤두박질이란 제목이나, 거꾸로 혹은 저돌적이란 뜻을 지닌 Headlong은 많은 것을 암시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이 장치에 속아 슬슬 고조되는 긴장을 따라 곤두박질치는 주인공의 운명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작가에게 멋지게 속은 셈이다. 주인공 마이클 클레이의 곤두박질은 그가 <즐거운 놀이>라고 이름 붙인 피터 브뤼겔의 연작중 첫번째로 추정되는 그림을 보는 순간 시작되었으며, 시골의 별장에 들어서는 길의 초입에서 그림의 원주인인 토니를 만남으로써 결정된 일이다.

완전한 속물이 아닌 어설픈 속물이 되기로 마음 먹은 우리의 철학자 양반이 세운 어리숙한 계획의 실현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성공(다시 말해 그림의 원주인인 토니의 몰락)을 기다린다면 우리는 진짜 배기 속물의 저력을 간과한 것이다. 하지만 유쾌한 블랙 코메디는 아직 하나 더 남았다. 주인공은 그림이 사라진 그 순간까지 자신이 발견한 그림이 브뤼겔의 연작이라고 믿으며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은 명화를 마음 속에서 그려낸다.

그는 학자적 양심과(그는 도상학자도 미술사학자도 아닌 유명론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던 철학자였다)과 허영심 사이에서 방황하며 초조해 한다. 어쩌면 고작 오래된 패널의 가치 밖에 없을지도 모를 한 점의 그림때문에 말이다. 그는 철학자이지만 그가 빠진 함정은 그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 사용하는 <허위의 암시>이며 유명론이다. 그가 조사하는 브뤼겔의 생애와 그림에 대한 해석은 분량의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마이클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베니싱 트윈일지도 모르겠다)가 브뤼겔이란 화두를 통해 퍼트리는 <허위의 암시>와 그릇된 방향의 유명론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마음껏 비웃음과 비웃음을 받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며, 아울러 내가 좋아하는 대가인 브뤼겔을 만날 수 있는 보기드문 공간이다. 사실 이 정도면 소설을 읽을 재미는 충분하다. 금전과 가치 평가에 대해 매우 민감하도록 훈련 받은 내가 작가의 함정에 모두 걸렸을 정도로 서술은 천연덕스럽고, 주인공은 물가에 내어 놓은 아이마냥 위험천만하다. 게다가 블랙 코메디나 피터 브뤼겔이란 이름 중 어느 한쪽에라도 매료되어 있다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M_ P.S. | less.. | 책의 디자인에 대해 누이는 당초 무늬가 브뤼겔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북디자인에 사용된 그림은 이카루스의 추락이라는 브뤼겔의 작품인데 원작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용했다. 게다가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나 18세기 전원풍의 영국 그림에나 어울릴 당초 무늬의 테두리는(누이는 이 당초 무늬는 켈트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저무는 태양에 추락하는 이카루스의 곤두박질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_M#]896849.pdf

6 thoughts on “곤두박질(Headlong)”

  1. 오늘 여기 서점에서 headlong 을 찾았더니 없다고 하네요. 아마존으로 주문하라고 하더라구요. 교보문고처럼 온 세상의 모든 책을 앞에 놓고 뒤적이는 즐거움이 없네요.

  2. 궁벽한 시골에 거주하고 있는 저로서는 그 기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것 같아요. <그런 책 찾으시려거든 일주일을 기다리시던지 아니면 온라인으로 구매하세요>란 말을 이곳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거든요.

    다음 주말에는 온 세상의 모든 책을 놓고 뒤적이는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겠지만, 일주일을 못 참고 이른 봄에 읽을 거리를 이미 주문한터라 어쩌면 아쉬움만 품은 채 귀가할지도 모르겠어요. 재미난 읽을 거리는 가용 자원과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법칙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상에는 말이예요.

  3. 익군의 리뷰를 너무 믿지 마라.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얼마전부터 나는 동생이 추천해주는 도서목록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늘 재미있는 책들을 물어다주는 동생이

  4. 전에 P.C.I.님 감상읽고 정말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에요. 처음엔 책의 두께가 두꺼워서 벅차기도 했는데 뒤로 갈 수록 재밌어지더라고요. 안되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주인공에 동화돼서 종종 허탈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고요^^ 좋은 감상읽고 좋은 책 알게돼서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요^^

  5. 당신은 공부를 아주 많이한 일명 ‘먹물’로 불리는 지식인이 되겠다. 박학다식하고 머리도 자~알 돌아간다. 그런데 돈은 많은데 무식하게 보이는 사람의 집에서 그림 한 점을 보게된다. 아! 당

  6. 지난 겨울에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재미난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너무 주인공이 초라하고 불쌍해져서 조금 억지스럽다 싶어도 브루겔의 진본으로 밝혀지기를 원했을 정도예요. 하지만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끝까지 블랙코메디를 고수하더군요.

    사실 이 정도로 재미난 소설에게서 부커상의 영예를 뺏은 소설이 무엇인지 지금은 그것이 되려 더 궁금해지네요. 언제 한번 찾아 봐야 겠어요. 그런데 <스키피오의 꿈>은 언제쯤 출간될 예정인지 알고 계신가요? 8월초라는 루머는 들었는데 장바구니가 지워질 위기에 처해 더 이상 기다리기는 버겁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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