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urmur #2

1
비가 내리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섭던 바람은 차갑기는 하지만 그리 날카롭지는 않은 보통의 바람으로 변했으며 바람의 변화와 함께 더 이상 눈을 기대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계절의 순환을 또 한 차례 보냈다. 이제는 따뜻한 봄날의 태양과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트릴 무엇을 기다린다. 봄이 되면 작년에 가지 못한 보성에 다녀오겠노라고, 주말을 이용해 섬진강에 다녀오겠노라고 마음 먹는다. 사실 여행이 어려울 것도 없다. 길에 둔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혼자 떠나는 여행이 위험할 만큼 서투른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2
모님의 블로그에서 선물에 관한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조금만 빨리 읽었더라도 다른 판단을 내렸을 테고, 지금과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가끔 난 방랑자가 되어 몇 년 만에 훌쩍 나타난 자신을 상상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방랑자가 아니라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에드몽 당테스처럼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이프성의 고통도, 나를 이끌어 줄 파리아 신부도 없으며, 보르지아의 탐욕스러운 손에서 간신히 살아 남은 재보도 없다.(그런데 난 체사레 보르지아의 초상화를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고집이 엿보이는 턱과 강인함 그 자체인 눈동자. 무엇보다도 베레모가 멋졌다. 내 느낌은 뒤마 페르씨와는 조금 다르다)

3
살구향 홍차에 과자를 먹으며 Henryk Wieniawski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듣고 있다. 오늘처럼 비오는 어스름한 날씨와 매우 잘 어울린다. 창턱에 걸터앉아 소나무 끝에 달린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관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딘지 괴기스럽지만. 갑자기 이어피스에서 Zigeunerweisen이 흘러 나온다. 분위기가 변했다. 난데 없이 인 거센 바람에 소나무에 맺힌 빗방울이 모두 떨어졌다. 미묘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진 순간이라고 중얼거린다. 중얼거리는 와중에 스탕달이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그의 소설 가운데 파르마 혹은 파도바와 관련된 한 권의 소설을 아직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제목이 뭐였더라?

4
유용성 없는 소모성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해줄 만큼 여유가 넘치는 시점에는 대화의 단절을 가져올 것이 뻔한 대답을 지양하지만 오늘처럼 말하기 귀찮은 날이면 가령 탁오 이지라든지, 오컴의 월리엄이나 니콜 오렘 같은 이들의 이름을 내놓는다. 대화는 단절되고 난 다시 침묵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 가끔은 상대의 침묵을 지켜주는 것도 유용한 대화의 기술이다. 그러니 말 좀 시키지 말란 말이야!

5
8시에 잠들어서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났다. 침구의 따스함에 정신은 몽롱해졌고, 무엇보다 WC군의 전화가 타격이 컸다. 인정하기 힘든 현실과 마주하거나, 현실에 좌절할 때 아무 이유없이 잠드는 버릇은 여전하다. 하지만 다음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정신은 더없이 맑으며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더 이상의 잠은 사절이지만 여전히 졸립다. 때 이른 춘곤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게 만든다. 잠을 달라. 나에게 잠을 달라! 결국 몽롱함에 취해 듣기 시작한 음악은 미스 사이공의 I still believe. 간만에 들은 레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멋지다.

6
스킨 수정 완료. 이미지 작업은 막내 누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해야 겠다.(누나 Thanks!) 쓰인 작품은 Brent Heighton의 파리 풍경 연작이며 지난밤 일찍 잠들었던 누님이 새벽 일찍 일어난 까닭으로 전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반 고흐의 영원한 팬인 누님으로서는 내가 고흐의 자화상을 쓰는 것이 영 못마땅했던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이 양심 형성의 자유를 넘어 표현에 이르게 되면 향후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으므로 여기에서 멈추어야 겠다.

4 thoughts on “A Murmur #2”

  1. 이 연작 분위기가 참 독특해요. 고흐의 명작만큼 유명한 그림들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제 블로그하고 더 잘어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2. 4번 재밌네요;; 저런방법도 있군요.. 전 죽어도 못하는 행동이지만요 -_-;
    그래도 언젠가 한번은 써보고 싶은 방법이예요(웃음)

    그러고보니 엄청 기분 나쁜일이 있을때 도서관에서 책상에 엎드려 2-30분쯤 자고 나면 개운하곤 했었어요. 아니 개운하다기 보단 컴퓨터가 포멧이라도 된듯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고 심지어는 ‘내가 왜 여기있지?’라는 의문을 던질정도로 깨끗히 모든게 씻겨나가곤 했었죠. 자고나면 모든걸 잊는다는걸 깨닫고 그때부터 우울할때마다 일부러 잠을 잤는데요 그게 반복되다보니 기억을 지우는 힘이 조금씩 떨어지더군요 -_-; 최악의 기분인데 자고 일어나도 그 기분이 남아있게되서 그때부터는 잠자는 방법은 버렸죠. 왜그런지 모르겠어요. 싹 지워버리면 정말 좋은데 말이죠.

    우선은 도망가는거라고는 해도 일어났을대 기분좋게 일어날수 있으면 좋겠네요. 지금도 기분이 꿀꿀한데 내일 아침이 되면 다 잊고 학원에 갈 수 있을까요;

    덧. 새스킨 분위기 아주 좋아요 >_

  3. 절대 권해드리고 싶지 않은 방법이예요. 평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거나, 평생 안 볼 사이가 아니라면 모를까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사람에게 이 방법을 사용했다가는 오래 살기 딱 좋죠.

    하지만 가장 황당한 경우는 적어두었다가 다음에 만났을 때 이들의 프로필을 줄줄 외우는 사람들이예요. 그럴 때는 정말 인터넷이 원망스럽고, 네이버 지식 검색에 대한 짜증이 밀려오며, ‘그래서?’라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드는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되죠.

    잠을 잔다고 해서 기억이 지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억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기억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이예요. 객관화가 가능하다고 해야할까요? 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문제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불현듯 나 자신의 기억과 경험임에도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못미치리란 사실을 깨달아요. 잠이 주는 효과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잠에서 깨어 나면 면역 체계가 새롭게 형성된 기분으로 문제를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해결하게 되거든요.

    저도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아무래도 이 연작을 제대로 소개해야 할 듯 싶습니다. 그 중에 몇 작품은 저같은 싱글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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