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즈데이북

[#M_ 매우 긴 서두 | less.. | 읽기는 대화의 연장이다.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대화가 무의미하듯,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읽기도 무의미하다. 이런 까닭으로 난 의도를 무시한 리뷰를 경계한다. 책을 읽을 때 난 읽기를 끝마칠 때까지 타인의 리뷰를 보지 않는다. 이것은 리뷰에 담긴 줄거리도 문제지만 제대로 된 리뷰어가 아닐 경우 그것이 해석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 해서다. 나 자신도 좋은 리뷰어는 아니지만 제법 이름값 하는 잡지나 신문의 기자들도 저자의 의도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글을 쓴 의도를 무시한 채 스토리에만 집중하거나 디테일의 빼어남에 몰두하게 되면 그것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 일으킨다.

정확한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소설 속 문장을 되씹어 쓰는 리뷰는 문학 전공자의 페이퍼나 다를 바가 없다. 리뷰는 감상자의 주관적 느낌만 담겨져 있어야 하고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작품은 빛과 같은 것이라서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색을 품어낸다. 내가 리뷰라는 형식을 통해서 담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작품이라는 빛이 투사되어 반사된 특정 파장의 스펙트럼일 뿐이다._M#]
서론이 길었지만 이렇게 길게 늘여 쓴 이유는 둠즈데이 북에 대한 리뷰때문이다. 물론 그가 반사한 파장이 나와 다를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파장이 다르다고 해도 그것이 보색 관계에 이를 만큼 동떨어져 있는 아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인 감동이란 예상외로 정규분포를 따른다. 정규 분포를 한참 넘어 6σ에 이르는 리뷰를 공적인 지면에 퍼블리싱 하는 것은 이해 할 수는 있으나 용서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단순한 리뷰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감과 신뢰성에 관한 문제다.

위트가 넘치는 SF작품이라는 그의 설명은 진실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다. 아니 내가 지금껏 알아왔던 위트라는 단어의 뜻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 리뷰어의 설명은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초반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둠즈데이를 그리고 있고, 아이러니와 가슴 답답한 숨막힘을 담고 있다.(중반부터 둠즈데이를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종소리가 등장하는 발단부터 이미 둠즈데이는 시작된 것 같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함과 무기력이 낳은 마음의 공허를 확인하게 되는 책. 희망이라고는 우리가 닮아서는 안 된다고 굳게 다짐한 사람들에게나 있는 세상. 하지만 결국에는 웃음지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날카로운 복선이 인상적인 소설. 이런 문장의 나열들이야 말로 이 책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들이다.

만약 표지의 유쾌함에 속아 잠시 doomsday book을 Doomsday Book으로 착각했다면 그 실수는 사람을 당혹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리고 이 책을 제인 에어 납치사건과 비슷한 이야기의 SF소설로 착각한 대가 역시 크다. SF라는 장르 이상의 것을 담아 냈다는 평가는 결코 허언이 아니다. 문학적으로 완성된 결정체는 아니지만 SF라는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담아낸 것은 꽤나 넓고 깊다.

표지와 소개말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마음에 들지 않은 책이지만 이런 엇박자에 속았다는 노여움을 풀 수 있다면 꽤나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게다가 가끔 Error Signal도 내보내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4 thoughts on “둠즈데이북”

  1. 드디어 다 읽었다.
    처음 손에 잡았던 봄날 책을 펴고
    60페이지 정도 단숨에 읽다가 방치해두었고,
    9월에 다시 이틀동안 열심히 읽어서 한 100페이지쯤 남기고
    머리맡에 버려두었던 것을
    엊그제 저녁 때 읽었다.
    읽는데 걸린 시간은 총 3일
    그러나 방치된 기간은 한 6개월은 넘는거 같다.
    이 책은 전반부와 막판 후반부만 보면 될거 같은데…
    난쟁이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지.

  2. 끔찍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키브린이 느낀 공포감과 절망감에 동조해 주어야지. 지겹다고 설렁 읽으면서 전반부의 사건 전개와 콜린의 활약만 읽는 것은 반칙이야. 98년부터 2005년까지 방치한 경력자가 작은방에서 자고 있으니 반년 정도는 견줄 바 못된다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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