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ak in alcohol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면서, 새벽3시에 잠들었으면서도 멀쩡하게 제 시간에 눈을 뜨는 나를 발견하며, 혹은 전에 느껴보지 못한 속쓰림을 느끼면서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격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근육은 통증을 호소하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눈은 피곤에 젖어 있다. 숨결에는 알코올 특유의 불협화음이 담겨 있고 정신은 맑지만 행동은 굼뜨다. 이른바 전형적인 음주의 후유증이다. 하지만 하루면 사라질 이런 육체의 후유증과 다른 또 하나의 후유증이 존재하는 법이다.

술 마실 때의 나의 나쁜 버릇은 술이 떨어지거나 자리가 파하면 사변적인 눈빛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몸은 그 자리에 존재하는데 마음은 딴 세상으로 가 있다. 무서울 정도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주의력이 사라지고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한다. 술버릇 치고는 꽤나 얌전하지만, 게다가 다들 거나하게 취해 있을 때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버릇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술버릇임은 틀림없다.

자리가 파하고, 두런두런 이어지는 한 묶음의 대화를 거쳐 커피 브레이크까지 끝났을 때 몸은 안암역에 있었고, 글렌 굴드의 Goldberg 변주곡을 듣고 있었다. 생각은 사변에 이르렀고, 변주곡을 듣는 내 자신에게서 매우 ugly한 자아를 발견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스스로가 강요한 목적과 책임에 걸맞은 가면은 평온했지만 그 가면 속에 담긴 진짜 얼굴은 꽤나 슬퍼 보였다. 삶을 알아간다는 것은, 이득과 손실에 민감한 잘 적응된 사회인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분열의 초기 증세라던 어떤 이의 넋두리가 떠올랐다.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다. 이것은 분명한 오버 센스다.

옆 자리의 여자에게서 저녁답지 않은 강렬한 스킨향이 느껴졌다. 알코올의 화한 냄새가 진한 수마트라로 달랬던 속을 뒤집는다. 속이 뒤집어 지며 사변은 생각의 단계로 복귀한다. 어느 사이에 우울하고 권태로왔던 표정은 자취를 감추고 기분 좋게 피곤하고, 적당히 취한 상태로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다 이내 상처라는 단어가 뇌리를 뒤흔든다. 요즘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는 열심히 사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상처라는 지겹도록 끈질긴 번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로 사랑을 두려워 하고, 위태위태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에 회의한다. 거절에 본능적인 공포심을 느끼고,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낯선 이방인이 만들어 낸 혼란을 저어한다. 모험을 동경하면서도 몸은 움직이지 않고, 주어진 것들의 최적화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모두가 상처 탓이다. 사랑에 배신 당하고, 거절 당하고, 믿음과 신뢰를 우롱 당한 상처.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이방인이 만들어 낸 처음에는 잔잔하지만 사라질 줄 모르는 파문에 대한 당혹감. 이것들은 일견 평온하지만 벼랑 끝에 선 듯 위태로운 우리를 만들어 낸다. 이유는 알지만 우리에게 해결책은 없다. 기술의 발달로 편의대로 기억을 지울 수 없는 한 상처는 전쟁의 훈장처럼 삶을 회의하게 만들고 또 우울하게 만든다.

하지만 상처 탓으로 모든 것을 돌리고 회의와 우울에 삶을 내맡기는 것이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모르지는 않기에 우리는 <열심히>란 수사로 우리의 삶을 포장한다. 평온한 표정으로, 열심히 하루를 살며, 시간 혹은 기술, 아니면 우연한 사건 하나가 내 삶을 바꿔주기를 염원한 채.

2005.3.19

[#M_ P.S. | less.. |
반만 내 이야기다. 최소한 사랑에 배신 당하거나, 이방인에 당혹스러웠던 상처는 없다. 하지만 생활을 극복하고 모험을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험 보다는 <열심히>를 권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한번 해봐>하고 조용히 성원할 수 있는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_M#][#M_ . | less.. |
친구는 친구로. 연인은 연인으로. 각각에 알맞은 단어와 거리를 유지할 것.
우아하게 물러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많은 것이 아니다.
상상이 빚어내는 두려움과 멸실의 아픔에 굴복하지 말고 냉정을 유지하면 족할 터.

지금 너에게 필요로 한 것은 한 잔의 술과 담배 한 개피가 아니라
삶을 다잡을 단순하면서도 명명백백한 단 하나의 목표다.

너라면 내가 보여주었던 천착 대신에
성마른 분노와 방향을 찾지 못했던 냉소와 깊은 우울함 대신에
단정하게 잊는 법을, 멋지게 귀퉁이를 도는 법을 배울 수 있을테니까.

모진 배움의 길이라 생각하렴.
모진 배움의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긴 삶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 될테니까.
That’s all

비오는 밤. 주드를 생각하며.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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