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걸음으로 가다

글은 완결된 문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가끔은 간략한 보고서 형태로 리뷰를 쓰고 싶은 책들이 있다. 권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가 그렇다.

1.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라도 가끔은 졸작을 쓰곤 한다. 특히 막 수상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원래부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보다는 부커상이나 콩쿠르상 수상 작품을 더 높게 평가해 왔지만 이 소설을 계기로 노벨문학상에 대한 선호도를 재조정했다.

2.
그가 고른 주제는 민감하고, 센세이셔널하지만 표현 방식이 매우 서투르다. 대가다움이라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구성. 풋내기의 어설픔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그의 소설이 꽉 짜인 구조의 균형 잡힌 작품은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심하다. 혼란스러운 시간 이동은 소설의 집중력을 떨어트린다.

작가가 글을 쓰는 첫번째 목적은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어서다. 단지 쓰여지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글은 이해의 언저리를 겉 돌게 된다. <게걸음으로 가다>가 그렇다. 제목만큼이나 의도는 뻔히 들어 나고, 개연성과 합리성은 게걸음질 친다.

3.
이른바 아도르노 사건 이후에 성장한 독일 작가들에 대한 실망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독일 문학의 전성기는 오직 아동 문학에서나 그 흔적이 발견될 뿐이다. 좋은 글이 필연적으로 지니는 강한 호소력과 감동을 찾기란 너무 어렵다. 너무 뻣뻣하거나, 한편에 치우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걸음으로 가다>는 이 셋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장벽이 사라진 독일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을 이 작가가 모른다는 데 있다. 그저 심각하지 않게, 반복적으로 보여주고만 있을 뿐 해법과 지향점 모두 없다. 그리고 이런 특징이야말로 대가로서 인정하기 힘든 그의 빈곤함이다.

4.
이렇게 쓰고 나니 장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읽어서는 안될 그런 소설처럼 느껴진다.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다. 전형적이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한 명의 인물이 있고, 하나의 사건이 있다. 부조화와 너무 억지스러워 되려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도 있다.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맑고 시원하게 터져나오는 소설도, 여운이 긴 소설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색채는 분명하다.

2 thoughts on “게걸음으로 가다”

  1. 야후 피플링 따라 들어와 봤는데. 스킨 디자인 감동적이군요.

    솔직히 문학 깨나 읽은 사람들한테 노벨 문학상은 아직도 서방 자본주의 선전을 위한 선전도구에 불과합니다. 2차대전 이후 심한 말로 너무 X같은 작품들만 줄줄이 상을 받으니…

  2. 개인적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글이 재미없다고 느껴진 것은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나 <휴가병 열차>를 읽으면서 느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노벨 문학상이 얼마나 권위있는 상일까 하는 의문에 빠졌거든요. 문학상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일단 재미가 없으니 심드렁해질 수 밖에 없더라구요.

    사실 제3세계 작가들에 대한 발굴마저 끝나면서 이제는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존 쿳시가 수상자로 발표되었을 때 노벨 문학상의 마지막 권위까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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