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역사(Worldly Goods)

내 책장에는 앤드류 그레이엄 딕슨의 <르네상스 미술기행>이 꼽혀 있다. <상품의 역사>와 인접해 모셔져 있는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탁월한 다큐멘터리로 정평 난 BBC의 그것보다 매끄러운 Worldly Goods의 스타일에 놀라게 된다. 내셔널 갤러리의 세인즈버리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느릿하지만 분명한 걸음걸이로 르네상스를 관통한다. 미술품과 사치품에 관해. 인쇄술과 상업에 관해. 르네상스의 숨겨진 동력인 부에 관한 저자의 접근은 참신할 뿐만 아니라 편견에 좌우되지 않는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품의 역사>라는 이 책의 번역 제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든 물건의 역사> 또는 <상업의 역사>같은 진부한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는 데다가 상품이라는 단어에 속아 주제보다도 <상품>에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책은 원서 그대로 Worldly Goods라는 제목이 제일 잘 어울린다. 게다가 에필로그만 읽고 르네상스 시대의 자본주의 태동에 관한 A4 서너 장으로 요약 가능한 주제와 수백 페이지의 디테일로 구성된 책으로 평가하는 것이 큰 오산일만큼 잘 쓰여진 책이기도 하다.

Worldly Goods를 읽는 또다른 재미는 이 책의 작가인 리사 자딘의 정보 카드에 쓰인 내용을 상상하는 데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그녀가 오랫동안 모은 정보 카드를 어떻게 배치하고 있을지 상상해 본다. 한 장의 정보 카드를 채우기 위해서 그녀가 다녔을 여행과 박물관을 상상해 보고.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각 장의 주제를 중심으로 통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그려본다.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쓰기 위해 각 장의 주제를 결합하는 그녀의 작업을 예상해보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쓰기 위해 고심하는 그녀를 상상해 본다. 이렇게 노력이 뚜렷이 들어 나는 책을 단조로운 디테일 덩어리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글을 쓰는 입장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쓰여지는 과정>이 재미난 책이다.

사실 때늦은 리뷰를 쓰는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다. 리사 자딘이 르네상스를 조망해 낸 방법은 비록 시대와 장소가 다르더라도 충분한 유용성을 지닌다. 그녀의 글쓰기는 설령 그 대상이 동아시아의 한 나라일지라도, 르네상스가 아닌 다른 시대일지라도 유용성을 보장할 수 있는 교범에 가깝다. 내가 낸시 코엔의 <브랜드 마스터즈>를 읽고 이런 글이야말로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었노라고 흥분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글쓰기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4 thoughts on “상품의 역사(Worldly Goods)”

  1. 음….
    뭔가 이상한데.
    자네 글 같은 맛도 없고..
    문단 구성도 다소 어색하고…
    퇴고 하셔~ㅋㅋㅋ

  2. 때가 되면 고치게 되어있는 법이야.
    아직 때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고쳐야겠군.
    알고 있겠지만 의도가 있는 글이라서 대구를 맞추어야 했거든.

    하지만 기존의 스타일에 집착하는 것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냐.
    설령 그것이 당장은 좋아보인다 해도 말이야.
    이십대란 나이는 다양한 것을 시도해도 되는 나이가 아닐까?
    벌써부터 스스로의 양태에 임계치를 설정해 버리면
    인생은 너무 모나고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우리 재밌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나저나 몸은 괜찮은 거야?

  3. 뭐, 약은 먹고 있다만…괜찮아 지겠지.

    임계치를 정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다소 산만해 보여서 무슨 걱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음..

    역마살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도 조금은 있는 듯 하다.
    근래에 심적 변화로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으나
    내가 밖으로 나가고 싶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 다소 의외야.ㅋㅋ

  4. 괜찮아 지겠지가 아니라 어서 나아야지.

    어떤 걱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산만한 것은 나 역시 인정.
    이런 책들에 대해 쓸 때는 어떤 수준의 언어를 사용해야 할지 모르겠어.
    게다가 의도에 의한 제약이라는 상황 아래였고.
    무엇보다 들어내기와 숨기기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어렵더라고.

    중간고사 보고 놀러오렴.
    멋진 봄날을 즐겨보자고.
    역마살 운운했던 것도 나의 ABC에 속한다는 것을 알면
    넌 틀림없이 또 멋적게 웃을 것이야.

    역마살의 다음 단계는 마음 줄 무언가를 찾게 되는 것이지.
    난 잠시 사진에 열광했었고, 끝나지 않을 산책 속에서 아이팟 하나로 하루를 때웠지.
    그러다가 이내 공부에 마음을 빼았겼고…

    언제인가는 모든 상황이 즐거워지는 그런 때가 올꺼야.
    까닭없이 웃음이 나와 스스로가 바보처럼 해맑다는 말이 안되는 상상이 드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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