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전쟁

크루그먼씨의 국제경제학을 읽다가 <바나나 전쟁>과 조우했다. WTO 체제의 출범 이후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무역 분쟁으로 불리는 이 사건과 마주칠 때마다 난 학교에 입학조차 못했던 먼 옛날로 되돌아가곤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버지와 난 시장을 걷고 있었고, 그날 따라 난 바나나 노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네쪽들이 한 묶음에 3천원이라는 중량당 가격으로는 쇠고기보다 비쌀 그 과일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국 난 아버지를 졸라 획득한 전리품이 담긴 종이봉투를 의기양양하게 집어 들었다.

하지만 수십 미터도 가지 못해 사단이 벌어졌다. 껍질을 벗기던 바나나가 땅에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바나나의 가치를 모르지 않던 난 시장 바닥에 떨어진 바나나를 얼른 주어 들려 했다.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을 탐하는 마음에서 가 아니라 비싼 과일이 아까워서 였다. 아버지는 조용히 땅에 떨어져 더럽혀진 과일을 먹어야 할 정도로 우리가 형편없지 않으며 바나나의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한들 자부심보다 높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지만 난 말뜻을 알아 들었고 정말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나쳤다.

사실 바나나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도 바나나가 듬뿍 나오는 과일 안주를 만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이 가게주인의 손이 크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물론 그런 무의식적인 호의는 오래지 않아 바나나는 더 이상 절대 비싼 과일이 아니라는 현실적 판단에 덧칠을 당하고 말지만, 그럼에도 레드망고에 갈 때면 바나나 토핑을 얹어야 포만감이 드는 바나나에 대한 심리적 허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바나나에 대한 허기는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철의 장막 안에 속해 있었던 구동독인들에게 바나나란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들에게 바나나는 당간부들에게나 허락된 중남미의 사치품이었고 통일 이후 시장에 공급된 바나나는 어느 순간 정치적 재화로 그 위상을 높였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미국과 유럽간의 바나나 전쟁이 있기 전에 독일과 영국 프랑스 사이에서는 바나나 전쟁의 전초전이 벌어졌다.

카리브해의 식민지 사회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던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의 식민지산 바나나를 보호하기 위해 저렴한 중남미산 바나나에 고율의 관세를 물렸고(정확하게는 수입할당제), 독일에서는 정치적 재화로 변한 바나나의 시장 가격을 최대한 저렴하게 유지함으로써 구 동독인들의 마음을 달래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영국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전초전은 관세동맹(유럽의 바나나 의정서)을 앞세운 프랑스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과의 바나나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패배로 결론이 났다. 결국 오늘날의 구 동독인들은 우르과이 라운드의 타결 이후 우리가 저렴한 바나나를 먹게 된 것처럼 가장 싼 값에 마음껏 자유의 선물을 향유하게 되었다.

사실 바나나 전쟁은 무역론이나 국제경제론의 작은 글상자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그리 크게 주목 받은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한때 쇠고기보다 비쌌던 바나나의 가격과 오렌지와 메론, 파인애플과 키위에 대한 동경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난 생크림 케익 위에 올려져 있던 이국적인 과일이 선사하던 풍요로움을 상상하며 생일을 맞던 세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기억만큼이나 자유주의 무역과 경쟁 체제가 가져다 준 선물을 늘어가는 생일 케이크의 촛대만큼이나 분명하게 느끼며 성장했다.

오늘날은 내가 시장 바닥에 떨어트린 바나나로 고민했던 그 시기에 비하자면 분명 많은 의미에서 자유화되었다. 하지만 자유화의 선물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역의 자유화가 낳은 많은 이점들은 정치적 이유로, 혹은 사회적인 이유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다. 무역의 자유와 경쟁 체계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던 쾌락을 기억하고 그것을 하나의 신념으로 받아들인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별종이 되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사람들은 자유화가 가져 다 준 쾌락을 넘어서 또 다른 가치들에 눈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과 쾌락의 이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여전히 경쟁 시스템과 무역의 자유화이다. 우리가 기억하던, 기억하지 못하던.

13 thoughts on “바나나 전쟁”

  1. 저도 바나나 참 좋아했어요.지금도 좋아하구요.그런데 요즘 바나나가 싸져서 많이 먹게 되니까 예전에 그 맛은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껜 왠지 죄송한 생각이지만요^^;;;

  2. 하하
    그런데 익아! 정말 아빠가 그렇게 말하셨니?
    어째 소설같다…. 음…..

  3. //가디록
    확실히 예전의 그 맛은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바나나 그 자체만으로 충분했는데 요즘은 바나나를 한번 더 조리해야 맛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예요.

    //Ms. 마플
    그때는 아버지도 꽤나 젊으셨다고. 사실 원래는 저것보다 더 있는데 그것은 우리집 난장이 유전자를 너무 드러내는 것 같아서 생략했어. 누나가 모르는 부자지간만의 추억이 있는 법이지. full story를 들으면 아마 ‘하하’ 대신에 다른 말을 쓰게 될 것이라고 확신해

  4. 바나나를 아직도 비싼 과일로 (때때로) 착각하는 저의 무의식속에도 정치적, 경제적 context가 깔려있었군요, 저 역시 안주에 바나나가 등장하면, 어쩐지 privilaged 되었다는 생각이 들다가, 아참.. 아니구나.. 라고 다시 생각을 조정하곤 했어요.
    70-80년대는 경제나 예술계가 모두 자유국가, 자본주의 vs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나뉘던 시기였다는 것이 새삼 극명하게 느껴지네요. 마치 1940-50년대 잭슨 폴락의 추상표현주의가 구 소련의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사실주의에 대항하는 자유의 상징으로 이해되어, 우리나라 화단도 한때 추상만이 존재했던 시기가 있었지요. 바나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무관하지 않죠? 갑자기 자신없어지는군요..

  5. 바나나 쉽게 먹을 수 없던 시절이 있었지요.
    바나나 좋아하는 편이지만, 수입과일은 그다지 즐겨 먹지않게
    되더군요. 우리나라로 수입 되기전에 농약물에 담겨진 후에
    수입이 된다는 소리를 들은 뒤부터는요. : ) 그래도 여전히 좋아해요.
    저는 무엇보다 먹기 편해서요. : )

  6. //urbino
    의도했던 부분보다 해석의 범위가 약간 확장되었지만 무관하지는 않아요. 바나나의 상징성 부분에서 경제적 가치보다는 정치적 가치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정책이 경제적인가 정치적인가 하는 문제겠군요.^^)

    다만 우리가 눈을 뜬 시기는 프라하의 봄이 있었던, 혹은 쿠바 사태가 벌어졌던 극단 시대가 아니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폴란드에서는 바웬사가 승리하고, 모스크바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났으며 몰락하던 차우세스쿠를 텔레비젼으로 똑똑히 목격했던 시기였잖아요? 그러다 보니 통제경제체제의 무능함은 요즘에 들어서는 논외가 된 듯 싶습니다.(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좌파 경제학의 대부 브레너가 유발한 논쟁에서 조차 등장하지 않았죠^^)

    근래의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유무역주의 대 보호무역주의의 논쟁이겠죠. 흐름은 보호무역주의의 패배로 귀착되는 것 같습니디만 보호무역주의의 호소력은 세이렌의 노래보다도 더 강력한 법이죠. 사실 근래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두려움은 교역국인 우리가 흐름에서 너무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예요. 시장에서, 혹은 기회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죠. 목적은 여기까지예요. 나이키와 신자유주의로 케이스化 된 문제에 대해서는 바나나 전쟁를 통해서 다룰 필요가 없는 다른 주제니까요.

    //반달
    생각하시는 바, 뜻하는 대로

    //applevirus
    그 시기에 banana republic의 주렁 주렁하게 열린 바나나를 보여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노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바나나를 사료로 쓴다는 레포터의 말에 얼마나 분노했던지 🙂

    바나나보다는 오렌지를 더 좋아했는데 요즘은 오렌지에 주사기로 방부제를 주입한다는 이야기를 듣게된 이후로는 잘 안먹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여전히 잘 먹는 것은 바나나가 아닌가 싶군요.

  7. 하나에 대한 허기는 또 다른 어떤 허기로 대체될뿐이지요 예전에는 바나나 좀전에는 노트북 조만간엔 외제차가될지 누가 알겠습니까만은 한가지 확실한건 그어떤 하나의 허기가 그것을 성취함으로 채워진다하더라도 언제나 새로운 허기가 기다리고 있다는거죠 자유경쟁이라는 단어에서 ‘자유’ 라는 단어가 결코 자유가 아니라는것 그 반대라는것 누구나 알죠…

    하긴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건 아닐지모르죠 이미 우리는 밥중독에 걸려서 그져 그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끝없는 허기를 채우는 방식을 답습하고 있을뿐이니까

    그걸 인생이라 부르든말든…

    암튼 아직 어리신분이 벌써부터 밥중독의 전도사흉내를 내시니 맘이 괜시리 찹찹하군요 쫌더 이따가 그리 하셔도 될것을… 더 나이가 드시면 어찌 되실지 사뭇 두렵군요

    “자유화의 선물” 이란 말… ㅋㅋ 푸힛!

  8. 재밌게 봤습니다.

    그나저나.. 바나나가 별종이라서… 몇년뒤에는 멸종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씨가 없고.. 유전적으로 약하데나 어쩐데나… ^^;;;
    바나나 없으면 어떻게 살라고… orz…….

  9. //흠…
    우려 감사하게 받아 들이겠습니다.
    다만 < 자유화의 선물>의 문맥적 의미는 생각하시는 것이 아닌 듯 싶습니다.

    //OrOl
    바나나가 사라지면 옛날처럼 바나나킥을 대용품으로 삼아야 하는 건가요?
    이제는 진짜 바바나에 익숙해져서 바나나킥이 너무 달게 느껴지는데 큰일이군요. 게다가 가끔 안주로 나오는 말린 바나나는 이제 꿈도 못꾸는 것입니까?

  10. 글쎄요… 두고 봐야줘….
    설마.. 진짜 멸종 하겠습니까? -_-;;;

    그렇담…

    유전학자들은 인간같은거 복제 하지말고 지금부터 빠나나나 복제해놔라!!

  11. 자유화의 이점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칠레와의 FTA로 농업 다 죽는다고 난리치지만, 그것이 양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을 보면서 역시 자유화의 두려움 보단 열매가 크다고 느껴집니다.

    또한 동남아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신발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제 생각에는 그것마져도 없으면 도대체 그들을 무엇을 먹고 살까 하는 것 입니다. 저의 생각에는 국내 신발업체에 불매운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동남아의 경제가 발전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쪽 정부및 노동자들이 적절한 노동법칙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투쟁이든 타협이던)
    물론 주40간 노동에 적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지만,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과연 동남아시아 국가의 경제력에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당위성과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만…

  12. //OrOl
    복제 바나나는 유전자변형식물표시협약에 의해 수입이 제한되지 않을까요? 아무튼 설마가 절대 현실이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레플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감상적 낭만주의로 당위성만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이 되지는 않겠지요. 아마티아 센이 주장한 것처럼 < 자유로서의 발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경제적 발전은 정치적 발전과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관계일테니까요.(경제적으로 자유화되지 못한 국가의 정치적 자유화가 독재로 연결되는 예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만연할테니까요)

    하지만 나이키와 하청공장건은 한국인 기업가들이 다소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졌던 일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일부러 그것을 무시했다는 점이 너무나 명확하거든요. 그 나라의 법정최소임금의 88%를 지급하면서도 육체적 고통과 임금삭감을 병과하는 간 큰 기업이 최소한의 양심은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이 자리가 아니면 그 최소한의 임금마저도 얻을 수 없다는 약점을 약탈의 기회로 삼는 기업의 존재는 현실이되 쉽게 인정하기 힘든 부분이예요. 다만 요즘은 여론의 압박에 의해 다소 상황이 나아졌다는 것이 되려 다행이죠.

    근래의 저는 운동화 대신 구두를 애용하지만 메이드 인 인도네시아란 상표를 단 스포츠화를 보면 두가지 마음이 얼켜 듭니다. 분명 부도덕한 과정의 상품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소비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고 있기 떄문이죠. 당위성과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지만 가능한 경우에는 당위성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입니다. 머리로 아는 답과 마음으로 아는 답이 조금은 다를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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