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 이블

큰누이는 추리 소설광이다. 황금단도상과 에드가 앨런 포상을 수상한 작가들을 모두 외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추리소설의 트릭을 간파해 낸다. 내가 소거법을 사용하고, 인물의 연관 관계를 분석하면서 복잡한 추론을 하고 있는 동안(심지어 난 기초 논리학까지 동원한다) 그녀는 내가 경이로워 마지 않는 찍기 실력을 동원해 범인을 밝혀낸다.

그녀는 증거와 탐정에는 관심이 없다. 그녀가 바라보는 체스 테이블의 상대는 범죄자가 아니라 작가 한 사람이다. 내가 행마법에 몰두하고 있다면 그녀는 처음부터 끝가지 체크를 부를 순간만 노리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유쾌한 독법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것이 조금 더 나은 독해법이던 간에 내가 추리 소설을 읽는 이유가 누이를 시험하고 골려 먹기 위해서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폭스 이블이 추리 소설광들의 입을 타고 내릴 때 내 기대감은 꽤나 컸다. 어쩌면 내가 엉터리 직관이라고 믿는 누이의 추리력이 무너지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였다. 처음 다섯 페이지를 넘겼을 때 묘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밀했으며 공포감은 뒷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내 평범하고 상투적인 보통의 소설이 되어 버렸다. 추리의 법칙에 충실한 독자라면 이야기의 발단 과정에서 90%이상의 확신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10%에 불과한 일말의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소설의 행간에 집중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10%는 추리의 영역이 아니다. 이 10%의 불안감에 대해 독자는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작가 다만 끝없는 기다림을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만약 큰누이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이 소설이 추리 소설이 맞냐는 질문으로 나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사실 소설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난 이 소설의 장르가 무엇인지, 주제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심하게 말하면 추리 소설로 양념한 범죄 소설로 정의하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인가 탐정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으며 이런 서술 방식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너그러운 마음이 폭스 이블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물과 사건, 트릭과 긴장감. 어느 것 하나 흡족한 것이 없다. 재미난 추리 소설을 찾기 위해서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어린 시절 읽었던 추리 소설의 재미와 흥분을 되찾기란 너무 요원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요원함 때문에 이미 오래 전에 트릭을 외워버린 추리소설들을 다시 꺼내 드는 지도 모르겠다.

[#M_ 그러나 | less.. |폭스 이블에도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다. 첫장은 백점 만점에 95점 이상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멋졌고, 때때로 흐릿한 공포감의 그림자가 등뒤를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기대감이 크지 않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 이 책으로 큰누이의 추리를 가장한 직관의 실체를 벗겨내는 것은 어려울 듯 싶지만… _M#]

2 thoughts on “폭스 이블”

  1. 거참 직관이 아니라니까…
    다만 내가 작가를 읽는 것 뿐이라니까…
    본능적인 논리력이라네…
    나의 독서태도를 그렇게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그대가 있어 좋구먼…
    대단해 분석력은…..

  2. ‘대략 에러’라는 말을 안쓰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보다 나은 말을 찾지 못하겠군.
    그냥 보고 넘어갔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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