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혼돈

이 책의 리뷰를 시작하는 첫 문장을 고민하는 동안 난 [개인적인 reviewer]와 [지인의 소개]라는 단어 사이에서 꽤나 망설였다. 내 언어 체계 안에서는 [지인의 소개]라는 단어가 더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같은 단어라도 전혀 다른 의미와 형태를 표상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첫 문장은 이렇게 덤이 주렁주렁 달린 변명이 되고 말았다.

명대의 상업과 문화라는 부제가 달린 <쾌락의 혼돈>은 상업과 상업적 힘이 문화(사회에 더 가깝다)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거시적 관점의 글이다. 이 책에서 황제와 내각대학사(또는 수보), 그리고 신하라는 세 개의 축이 만들어 낸 복잡한 정치적 이슈를 찾아보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북원으로 불리는 오이라트도, 절강병법으로 유명한 척계광도, 분서로 유명한 이탁오도, 정화의 남해 원정대도, 장거정과 만력제도 아니다. 초기의 홍무제와 영락제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숭정제도 아니다. 명대를 다룬 수많은 책들과 다르게 이 책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들은 명대의 상업적 흐름과 신사층이다.

명대를 초창기의 겨울과 전성기의 봄, 완만한 쇠퇴기의 여름과 멸망기의 가을로 나눈 저자의 시도는 꽤나 참신했다. 그리고 그런 계절적 구분은 임의적이지만(사실 차용이다) 시대의 변화를 극명하게 대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제서야 난 <설탕과 커피 그리고 폭력>을 쓴 포메란츠가 그의 에세이에서 종종 언급한 명대의 상업적 발전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티모시 브룩은 명대의 상업을 이끈 은과 동(청동) 관해서만큼은 포메란츠가 보여준 탁월한 식견에 상응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식과 사고 실험보다는 기록에 의존한다라는 연구 방법을 선택한 필연적인 귀결일지도 모르지만 티모시 브룩이 묘사한 상업적 흐름은 꽤나 지엽적이다. 포메란츠가 언급한 성 또는 지현 단위의 금속 유통의 제한에 따른 전황과 화폐 가치의 광범위한 불일치를 브룩은 간과하고 있다. 게다가 교역의 시작과 명의 상업적 힘을 연결시키는 데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포메란츠가 간과했던 신사층에 관해서 라면 브룩의 통찰력이 더 뛰어나다. 이 책은 명대의 신사에 대한 잘 정리된 초상화이며 20세기 들어 혁명의 시대가 될 때까지 중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그들의 시작과 뿌리에 관한 탁월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1587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를 흥미롭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중국의 붉은 별>에 실린 마오와 스노우의 인터뷰에 언급된 신사와 명대의 자본주의 맹아에 관해 호기심을 느낀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보아도 후회하지 않을 듯 싶다.

[#M_ P.S. | less.. | 사실 이 책의 부제는 명대의 상업과 문화보다 상업과 신사층의 성장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적절할 듯 싶다 그리고 원제 를 그대로 번역한 <쾌락의 혼돈>은 최악의 번역이다. 快樂과 樂은 조금 다른 개념이 아닐까 싶다. 즐거움 속에 느끼는 약간의 혼란과 쾌락의 혼돈은 조금 다른 의미가 아닐까 싶은데 이 부분은 역자의 실수가 분명하다. 자칫 방탕한 삶 속에 느끼는 자아의 분열을 연상시키는 이 제목은 정말 감각이 떨어진다._M#]

2 thoughts on “쾌락의 혼돈”

  1. 저는 글을 읽으면서 자주 만나게 되는 명대의 판화 역시 이 책을 읽는 재미중 하나인 것 같아요. 당시의 사회상을 다루는 명대의 판화에서 꽤나 친근한 조선시대 풍속화의 모습을 엿보는 것도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이였어요. 출판 역시 명대 상업의 발전을 반영하는 동시에, 소비를 촉진한 요소인 듯 해요.

    문인 (신사) 계층의 유희 문화가 소비 문화로 귀결되는 부분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예요. 순수히 상업만을 다루는 부분보다 문화와 상업이 겹치는 부분이 저에게는 더 재미있어요. 사실, 저자가 자주 인용하는 Craig Clunas의 Superfluous Things를 이 책과 함께 읽느라 (각각의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찾아가며 읽고 있어요) 천천히 나아가고 있지만, 흥미로운 책을 빨리 끝내고 싶지 않은 것도 제가 갖고 있는 나쁘지 않는 (?) 버릇이예요.

  2. 요대가 인상적인 가는 수염의 남자들이 등장하는 판화보다 선과 여백이 두드러진 그 판화가 더 재미났던 것 같아요. 사실 매우 담담하게 서술된 가을편에서 한 신사가 전란을 피해 도망다니는 장면이 꽤나 재미있었어요. 살기 위해 가족들에게 노점상을 시키는 동안 부자는 수레 위에 누워 쉬고 있는 장면이 정말 희극적이더군요. 그 와중에 복숭아 장사에, 독선생으로 들어 앉는 처세술이나 역시 중국인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초상화로만 등장하는 한 인물이 명청 교체기에 살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는 내심 놀랬어요. 지금껏 본 초상화가운데 제일 젊고 잘생긴 사람이었는데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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