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혈과 성배

<성혈과 성배>는 브라운씨의 <다빈치 코드>와의 표절 논쟁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책이다. 처음 <다빈치 코드>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 난 내심 브라운씨의 표절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권을 모두 읽은 지금에 와서는 표절 논쟁은 다소 과장된 허풍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브라운씨에게 작가로서 의당 지녀야 할 책임감을 발견하지는 했지만 표절 의혹에서만큼은 당당해도 될 듯 싶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매우 쉽게 쓰여진 소설이다. <성혈과 성배>에다가 에코풍의 소설 몇 권을 읽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여자 주인공의 이미지는 <마지막 칸타타>와 매우 비슷하며 플롯은 <플랑드르 거장의 비밀>과 흡사하다. 오직 로버트 랭던이라는 종교도상학자만 그의 창작으로 보인다. 물론 엄격하게 이야기하자면 2명의 존스 부자를 섞어놓은 캐릭터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베끼는 표절과 머리 속에 기억되어 있는 것들을 응용해 만든 다소 비양심적인 창작은 분명 다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다빈치 코드>와 <성혈과 성배>를 관련 지어 생각하는 것은 그만 둘까 한다.

처음 1/3지점까지 <성혈과 성배>는 뛰어난 재미를 선사한다. 중반 부분에서는 까닭 없이 에코의 <바우돌리노>가 떠올라 흥미롭지만 이내 작가들의 소심하다 싶은 조심성 덕에 지루해진다. 사실 부록까지 합치면 6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쓰면서 이렇게 담이 작은 작가들은 처음 봤다. 이들은 끊임없이 변명하고,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불안해 한다. 어차피 이런 장르의 논픽션이 지니는 태생적 특징은 뻔뻔함이 아니었을까?

그레이엄 핸콕의 다큐멘터리의 비하면 이들의 주장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평범한 주장으로 보인다. 되려 이들의 소심한 변명이 나로서는 답답하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의 반은 부활을 믿지 않는다. 종교가 지닌 힘은 신이와 기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나 같은 보통 사람에게 바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삶의 기준을 그려 보이는데 있다.

사실 이 논픽션의 초반 부분은 보고밀파와 카타리파를 구분하지 못했던 짧은 지식 덕분에 재미있었다. 알비 십자군과 성모 숭배를 북부 이탈리아 어디쯤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알고 있었던 나의 무지가 들어났기에 충격이었고, 과거 나바르 왕국으로 불렀던 이 땅의 역사에 관해 내가 미처 모르던 사실을 채워간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반은 <푸코의 추>와 <바우돌리노>로 대표되는 에코의 소설의 추종자에게는 다소 싱겁다. 성배와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에 관한 이야기는 이제는(물론 이 책이 출간된 그 시기에는 전혀 고전이 아니었겠지만) 너무 일상화된 이야기라서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딱 하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면 푸생과 푸케의 관계다. 얼마 전에 읽은 임프리마투르에서의 왕의 재무 총감인 그가 지녔던 비밀은 페스트였는데, 이 논픽션에서는 성배의 비밀로 등장한다.

이 소설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역사적 상식에 반기를 든다. 프롱드 동란의 핵심 주동자는 뮤슈 혹은 콩테가 아니라 부르봉의 영원한 숙적 로렌이고, 이들은 두 번째 고배를 마신다. 합스부르크-로렌 왕가의 어이없는 몰락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독자에게 근친상간과 자살, 살해로 얼룩진 이 왕가에게 유럽 제국의 황위를 넘기려 했다는 시온 수도회의 음모는 코메디 수준이며 솔직히 대책 없어 보인다.

하지만 드골과 말로가 등장하는 현대의 시온 수도회 부분은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많다. 말로와 드골의 무덤이나,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드골의 이상한 행적, 드골의 장례식에서 말로가 행한 연설에 포함된 ‘마지막 기사’라는 단어. 많은 이들은 이 기사라는 단어가 레종 도뇌르를 의미한다고 발언의 의미를 평가절하 했지만 베르나르 대령 시절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 로렌의 십자가를 세우겠다던 말로의 선언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 이 음모설에 일말의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책이 다룬 주제는 유령 혹은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 세대의 본질은 과거에서 비롯되었지만 더이상 과거에 구속받지는 않는다. 신이라 불리는 한 사람의 혈족이 신성할 까닭은 왕족이 더이상 고귀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없으며, 최소한 우리 세대는 혈통의 전승보다 일신의 능력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 방각본 소설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을 붙여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 내기 좋은 책!

4 thoughts on “성혈과 성배”

  1. 이 책은 꽤 오래전에 국내에 출판이 되었었는데(기독교 서적 관련으로요) 간헐적으로 재판을 거듭하다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시 나왔더군요. 3-4년전에도 가장 최신의 판본 말고도 구판본들이 존재했던 책이었으니 나름대로 국내에서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보여요. 처음에 발견했을 때 무척 놀라면서 절판된 책이라 재본을 떴더니 이제 보다 깨끗한 표지로 다시 나왔네요. 제 경우는 에코의 <푸코의 진자>와의 상관관계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책이기도 해요.(당시는 <다빈치 코드>가 쓰여지지 않았던 시기인지라.) 에코가 보았다던 ‘어떤 필사본’이 이 책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요. 출판 년도가 이쪽이 앞섰으니까요.

    무엇보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간곡하게 말하는 수법이랄까. 소설이 아니건만 소설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의 박진감이랄까. 그런게 마음에 들었던 글이예요.

    그레이엄 핸콕의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혹시 카타리파와 성배에 관련된 (나중엔 히틀러까지 이어지는) 부분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맞나요? 아닌가. ^^; 예전에 그런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제목을 몰라서 혹시나 해서요.

  2. 이 책의 문제는 항상 종교섹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제 경우에는 종교 서적 코너에 접근하려면 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구요. 딱 한번 영풍문고의 경영신간 섹션의 맞은 편에 있던 종교 섹션에서 이 책을 읽던 남자를 발견한 적이 있는데 인터넷으로 구매하려고 보니 절판되었다는 메세지가 출력되더군요.

    에코가 이 책을 읽은 것은 확실해요. 이번판의 서문에서 에코가 보낸 서신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더라구요. 사견을 밝히자면 <푸코의 진자>에 이 책이 영향을 주긴 했지만 중심축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푸코의 진자>와 비교하면 <사실>은 같으나 <해석>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되더라구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경우에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어요. 이 재미난 이야기가 이제는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지루함을 자아낼 정도로 뒤늦게 읽은 것이 아닌가 하구요.

    그레이엄 핸콕에 대한 언급은 핸콕의 뻔뻔스러울 정도의 당당함과 비교하기 위해 쓴 문장이었습니다. 특정 다큐멘터리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구요.^^ 카타리파의 성배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는 저도 보았는데 핸콕의 것인지는 헷갈리네요. 얼마 전에 케이블 텔레비젼에서 보게 된 핸콕의 다큐멘터리 특집에 그 부분이 없었던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었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그 다큐멘터리가 성배와 카타리파의 전승, 그리고 20세기 독일군 장교 한 사람이 성배를 찾는 떠나는 내용이 맞죠? SS출신의 그 장교가 바이에른의 한 산에서 실종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된 그 다큐멘터리가 맞는지 헷갈리네요 ^^;

  3. <푸코의 진자>와 해석이 다르다는 것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성혈과 성배>는 뭐랄까, 좀 어처구니없을 만큼 순진하고, 강박적인 믿음과 신념에 차 있는 글이라면, <푸코의 진자>는 유들유들한 글쟁이의 글이죠. 플롯도 다르고, 말 그대로 참고자료로 쓰였을 정도라도 생각해요, 저도.

    제가 언급한 다큐멘터리가 말씀하신 것이 맞아요! 제목도 모르지만 암튼.
    그리고 당시 왜 이 다큐멘터리가 공중파를 탔는지도 기억이 안나지만.(그냥 역사 스페셜이었나;)
    P.C.I.님과는 구석탱이 취향으로 자꾸 무언가 겹쳐서 너무 즐겁네요.
    거의 ‘이런 사람이 또 있었어’ 삘이군요. ^^

  4. 제목은 <성배의 전설>같은 흔한 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방금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을 찾아 wiki를 한바탕 뒤지고 다녔는데 운명의 창과 티벳으로 간 탐험대의 인솔자는 나오는데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이름은 안나오네요. 조금 더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어 봐야 겠어요.

    ‘이런 사람이 또 있었어’하는 기분은 저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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