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3부작

로스 레키의 카르타고 3부작을 읽기 전에 먼저 해야할 일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포에니 전쟁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잊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소설이 지니는 미덕을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역사적 기본틀에는 충실하지만 세부틀은 작가의 상상력이란 특권을 이용해 마구 변형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건 관계의 선후와 인물간의 관계는 이 소설에서 만큼은 잠시 잊어주는 것이 낫다. 개별 사실들을 토대로 이 소설의 허구적 상상력을 구분하는 작업은 지난할 뿐더러 소설 읽는 재미의 본령을 훼손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 3부작은 <한니발>, <스키피오>, <카르타고>란 제목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연작은 각기 다른 시점으로 쓰여졌다. 작가는 <한니발>에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사용했고, <스키피오>에서는 참견 많은 1인층 관찰자 시점을 애용했으며, <카르타고>는 특정 시점을 따지기 보다는 연대기적 구성으로 쓰여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이는 매우 특이한 구성을 적용시켰다. 사실 연작 소설임에도 각기 다른 시점을 사용한 점은 매우 독특했다. 전체 이야기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수준에서의 시점 변화를 통해 공정성과 균형이라는 소설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평화는 이 소설의 핵심 주제다. 하지만 이 주제는 사실과 허구 속에 숨겨져 잘 들어나지 않는다. 한편으로 이 소설은 범인과 비범인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간격에 대한 이야기이며, 코스모폴리탄 시대에 접어든 시기에 태어난 각 인물이 느끼는 이질감과 혼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작에 대한 과잉 해석을 덧붙이자면 경계가 사라진 혼란한 시대, 균형의 회복 가능성을 잃어버린 이 시대에 대한 역사소설의 탈을 쓴 저자의 투정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덧붙여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덧없는 복수심에 대한 조소일지도 모르는…

각각의 주제를 전달하는 수법인 스토리 텔링에서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지만(심지어 이야기 사이에 모순점도 존재한다) 포에니 전쟁을 다룬 역사 소설 가운데 표정이 잘 들어나지 않는 고대의 두 장군에 입힌 성격과 고뇌는 꽤나 재미있었다. 사실 이런 책은 타인에게 선뜻 권하기 힘든 책이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소설이고, 역사 소설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사실보다는 허구가 많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보다 못한 종이두름이 더 후한 평가를 받는 것이 예사이며, 역사 소설의 탈을 쓴 엽색 소설이 판을 치는 이 시기에 이 정도만 되어도 상당히 양호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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