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지는 글

장정이 닳은 오래된 책들과 만날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모든 것이 참 쉽게 쓰여지는 시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인터넷 검색의 강력함은 관련 자료를 찾아내는 번잡한 작업 없이도 손쉽게 한 편의 글을 만들어 내고, 워드프로세서의 편리함은 노력해서 만들어낸 창작물보다 조합물을 더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런 시대 안에 갇힌 존재로서 흐름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나로서는 감내할 수 밖에 없다. 가끔은 이득을 보고 가끔은 손해를 보면서 그렇게 감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끔은 쉽게 쓰여지는 시대를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하곤 한다. 사람마다 그 감내할 수 없는 순간들이 다르겠지만 난 신문 기사에 쉽게 흥분하곤 한다. 읽지도 않은 채 쓰여진 서평과, 보지도 않은 채 쓰여진 평론, 고작 몇 장에 불과한 팜플릿을 토대로 쓰여진 보도 기사들. 이런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가벼워진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에 분노가 치민다.

휴학을 하기 전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들은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원고지 한 장에 4시간 이란 수십 학번 차이가 나는 선배의 충고였다. 제대로 된 기자란 하루 종일 일해도 원고지 여섯장을 쓸 수 없다는 그분의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책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비단 기자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쓰는 동안 사람들은 쉽게 쓰여지는 글과 제대로 쓰여지는 글 사이에서 고민한다. 쉽게 쓰여지는 글은 원고지 40매에 해당되는 대판 1면을 반나절에 쓸 수 있다. 제대로 쓰여지는 글의 경우 같은 분량을 쓰기 위해서는 일주일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반나절과 일주일이란 시간차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완성도보다 효율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이 시대에는 말이다.

가벼워진 기자의 이름에 분노하지만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의 엄격함과 냉철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기사가 소설가의 작품처럼 펜의 탄력을 받아 허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쉽게 쓰여지는 이 시대에 함몰되어 어쩌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초심을 잃어버린 그네의 자화상이 매우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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