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인

주문한 장서인이 도착했다. 새김 글자가 붉은색으로 나오는 朱文印 전각이었다. 사실 전각을 주문한다는 표현에 담긴 아이러니를 모르지는 않는다. 전각을 새길 도구와 도장석을 주문했다는 표현과 다르게 전각 자체를 주문했다는 표현은 전각 예술의 발전 방향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15세기에서 16세기에 일어났던 일련의 새김 도구와 도장재의 발달은 전각 예술을 전문 장인의 손에서 문인층의 우아한 취미로 빼앗아 왔다. 실제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전각가운데 일부는 우리에게는 이미 역사적 인물이 되어버린 그 소유자가 직접 새긴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상황은 다시 반전되었다. 문인들의 우아한 취미는 강점기와 서구화 중심의 발전기를 거치면서 맥이 끊겼고 서체를 연구하고 도각을 가다듬는 일은 인장사나 전각 작가의 일로 전문화 되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전각을 주문했다라는 말에 담긴 아이러니가 되려 반갑다. 어린 시절부터 둔하고 거칠며, 성긴 손놀림을 자랑했던 나로서는 방촌(혹은 인면)에 글자를 새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장서인을 손에 넣었으니 그것을 사용할 원칙만 세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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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M#][#M_ 내 책 만들기의 원칙 | less.. |

책을 읽는 단계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한다. 1단계는 문장 자체를 읽는 일, 2단계는 문장의 내부에 해당되는 행간을 읽는 일. 3단계는 행간을 읽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며, 마지막 4단계는 의문을 토대로 새로운 글을 남기는 것이다.

(이 4단계를 읽다, 이해하다, 생각하다 쓰다의 4단계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이 단계 구분이 조금 더 명확한 정의의 효과를 보여주나 개인적으로 난 이 단계가 명확하게 구분 지어서 일어나는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랜 교육을 통해 습득한 관습적 독서방법은 일반적으로 이 4단계가 동시에 일어나도록 짜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 이유로 4단계를 차분하게 밟아 올라가는 것은 꽤나 버거운 일이다. 어떤 책들은 의문을 토대로 새로운 글을 남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조야하며, 어떤 책들은 그 성격상 새로운 글을 남기기가 매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보통 <내 책 만들기>는 읽기의 3단계에서부터나 사용 가능하다. 개인적인 <내 책 만들기>의 과정을 설명하자면 구입한 도서의 경우 일단 낙장과 파본을 점검한 다음 Scan를 통해 표지와 서지 정보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읽기의 단계로 넘어간다. 이 경우 읽기는 1단계에서 3단계가 동시성의 원칙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4단계가 불필요 하다고 인정되는 책에는 곧바로 장서인을 찍고, 다음 단계가 필요한 경우에는 waiting list에 제목과 개요를 추려 놓는다. 이 경우 waiting list에서 제거되는 순간 책에 장서인을 찍음으로써 단순한 수장서가 아닌 진짜 내 책이 되었음을 표시한다.

사실 엄격하게 말해서 스스로 쓰지 않은 책에 지적 소유권을 표시한다는 것은 조금 웃긴 일이다. 하지만 우스운 바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책 만들기의 원칙을 포기하거나 그 과정을 저어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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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장서인”

  1. 앗.. 멋지네요. 이런 것도 구입할 수 있군요.. *.* 내 책 만들기의 원칙도 멋집니다. 우아…

  2. 뭐야~
    왠지 압박이 느껴지는 군.

    그나저나 수강신청 정말 짜증.
    학생수가 많으면 수업을 늘리던지, 수강인원을 늘리던지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명색이 경영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조직’ 구성에 헛점을 보이다니 맘에 안 들어.
    물론 개인적인 기호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교수정도 되는 사람들이 속이 좁아서야….

  3. /zorba
    감사합니다. 조르바란 닉네임에 끌려 예전부터 슬며시 들리곤 했는데 이제부터는 정식으로 들릴 수 있겠네요.^^

    /wc
    제약조건 아래에서 공급을 줄임으로써 수요에 압박을 가해 대체제를 적극 활용시키겠다는 발상이 아닐까? 그리고 조직의 정의는 자네의 코멘트와 엄청 떨어져 있다네. OB안들은 표내기는 ^^

    개인적으로 학부생한테 그 정도 강의 시간을 배려한다는 것이 국제적인 기준에서는 오히려 대단하다고 보여져. 뭐 어쨌거나 이것 자꾸 복학하기 두려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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