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寅

唐伯虎는 알아도 唐寅이 누군지는 지금까지 몰랐다. 우홍의 Double Screen을 읽던 중 만난 그의 시는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M_ 西洲話舊圖에서 베껴쓰다 | less.. |

醉舞狂歌五十年 花中行樂月中眠
취하여 춤추고 노래하길 평생
꽃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달빛 아래 잠들었네

漫勞海內傳名字 誰信腰間沒酒錢
비록 내 명성이 천하에 퍼졌다 한들
누가 믿으랴. 허리춤에 술 한잔 살 돈도 없는 것을

書本自慙稱學者 衆人疑道是神仙
책을 들고 스스로 선비라 헛되이 칭해봐도
뭇사람들은 날 신선이라 하네

些須做得工夫處 不損胸前一片天
잠깐 마음 둘 곳을 얻는다 한들
가슴 앞 한조각 공허함조차 덜어낼 수 없는데

P.S.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읽고 있는 <그림 속의 그림>과 내 번역은 다소 차이가 있다
누이가 comic version이란다. 더욱 정신이 없다.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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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唐寅”

  1. <그림 속의 그림>의 한글 번역이 어떤지는 책이 없어서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마지막 연을 제외하고는 제가 갖고 있는 영어원본의 번역과 일치해요. 마지막 연은 영어로 이렇게 해석되어 있더군요.
    I may have to labour a little, But should I disturb the piece of sky before my eyes?

    마지막 연은 문징명과 함께 명말 오파화가 (후에 院派로 분류됨)의 대표적인 화가 였으나, 문징명과 달리 직업화가라는 자신의 처지를, 살기 위해 畵作을 해야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를 표현한 듯 합니다.
    문징명은 집안은 좋았으나 과거에 붙어본 적이 없었고, 그에 비해 당인은 과거 시험에 일등으로 붙었지만, 억울하게 시험 부정사건에 연류되어 문인으로써의 삶을 박탈당한 채, 화공으로 살아야 했거든요. 몇몇 연구자들은 당인의 뒤틀린 소나무와 날카로운 바위의 모양, 표현적인 필치에서 당인의 고뇌를 느낄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해요.

  2. 工夫處와 天의 해석이 다르군요. 공부처의 경우 전 그가 스스로를 직업화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가정 아래 해석을 했거든요. 비슷한 시기의 이탈리아의 대가들처럼 그도 업과 신분은 분명히 구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죽을 때까지 아마 그는 스스로를 신사라 생각했지 화가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이 경우 공부는 학문이나 예기를 닦는다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천의 경우에는 앞에 해내라는 단어로 보아 하늘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비어있다, 또는 허공을 의미한다쯤이 나을 듯 싶었어요.

    당인이 되어 생각해 본다면 50에 들어서 젊은 시절 지인을 만나 직업화가가 되어버린 자신을 한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현재의 상태를 한탄하는 것과 이루지 못한 꿈을 한탄하는 것은 비슷해 보여도 자존심과 허영심 면에서는 매우 다른 이야기가 될테니까요.

  3. 저도 당인이 스스로를 문인으로 생각하고 싶어했으며, 직업화가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해요. “선비라 헛되이 칭해봐도” 라고 언급한 것은 현실과의 괴리감을 나타내는 듯 해요.
    자존심과 허영은 매우 다른 감정이나, 현재의 상태를 한탄하는 것과 이루지 못한 꿈을 한탄하는 것은 나눠져 있는 감정이기 보다는,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아요. 당인의 경우 둘 다가 아닐까요?
    시의 묘미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데 있기에, 어떤 편이 더 맞는 해석이냐는 것은 별 의미없는 것 같아요. 우홍 선생의 해석보다는 좀 더 낭만적인 느낌이 드는 해석이라고 생각해요.

  4. 사실 머리속으로 소설 한편을 썼거든요. 근래들어 읽은 명조를 다룬 책들 토대로 그의 삶을 생각해 보았어요. 타임라인을 착실하게 따라가다 보니 왠지 그의 보헤미안 스타일의 삶 자체가 일종의 반항처럼 느껴지더라구요. 본질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들이 실패를 겪게 되면 더욱 큰 폭으로 선회를 하게 되잖아요. 상인층에서 태어나 신사층으로 인정받은 그야말로 그 박탈감이 더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집안의 기대를 받으며 자란 청소년기. 스스로의 재능을 인정받아 신사로 편입되는 청년기. 그리고 비운과 불운. 문인이되, 더 이상 문인이지 못한 삶. 명대의 4대가라는 명성보다 그의 삶 자체가 더욱 호소력이 있었어요. 뭐랄까? 그냥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기분이란 것이 있잖아요.^^

    -그것은 그대로 두어라. 울림은 각자의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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