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그림

좋은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나쁜 책 한 권은 특정 주제에 대한 흥미를 반감시키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동양화 읽는 법>이 그랬다. 무미건조한 도상학의 나열을 보면서 다시 동양화를 감상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인상파의 강렬함에 매료되어 있던 당시의 나로서는 고전주의의 우아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구상성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도상학에만 매달려 있는 동양화가 무척이나 재미없고, 따분한 그림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 희미해졌던 편견은 우홍의 <그림 속의 그림>을 읽으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우홍이 안내하는 중국화의 세계는 매력적이고 재미나다. 그의 <그림 속의 그림>은 서양 미술사를 기준으로 성립된 미의식에 참신함을 더해주고, 예술의 본령에 관해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만들만큼 잘된 책이다. 게다가 보통의 잘 쓰여진 예술서를 읽을 때 반드시 넘어야 하는 통과 의례와 같은 철학과 사회사라는 진입 장벽을 넘지 않고서도 손쉽게 주제의 핵심부에 다가설 수 있다.

<그림 속의 그림>은 병풍이란 매체를 중심으로 중국화에 담긴 시선과 그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소병(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깨끗한 병풍)은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서예 병풍 하나쯤은 지니고 있는 지방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로서는 저자가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중국화에서 병풍이란 소재가 어떻게 쓰였는가?>라는 탐험 주제가 매우 흥미로웠다.

게다가 우홍은 幻의 개념을 일루젼과 일루젼네이션 그리고 실제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마법적 작용으로 나누어 정리함으로써 이 책을 통해 단지 중국식 flaneur 정도만을 찾을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빈약한 상상력을 압도했다. 사실 역제인 <그림 속의 그림>은 역자의 의도와 달리 이 책의 일부만을 표상 하는 제목이다. 우홍이 重屛을 영어로 번역한 Double Screen이란 단어가 되려 저자의 의도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제목같다.

우홍이 重屛를 통해 발굴해 낸 개념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위치한 幻과 context와 시선에 해당되는 flaneur를 동시에 설명한다. 그는 그림에 담긴 이야기를 분석할 뿐만 아니라 임모화를 통해 변화하는 시대상을 포착하고 있으며, 병풍에 투영되어 남겨진 작가가 보편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관과 그에 괸한 감상을 매우 날카롭게 담아내고 있다.

사실 한 권의 책을 통해 일생을 다 받쳐도 그 끝을 보지 못할 세계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홍의 <그림 속의 그림>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놀라운 에피타이져다. <그림 속의 그림>을 읽은 뒤로는 방대한 양에 겁먹어 포기했던 그의 또 다른 저작 <순간과 영원>을 마무리 짓고 싶어지고, <중국회화사 삼천년> 같은 전공자가 아니라면 좀처럼 꺼내 볼 엄두가 안나는 책에 대한 흥미가 생겨나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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