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hoc

1.
정확한 때를 알 수는 없으나 언제부터인가 난 꽤나 무덤덤한 사람이 되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나는 간결하기보다는 수다스러웠고, 차분하기보다는 다혈질이었는데 요즘의 난 도통 낭비가 없다.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망상으로 정신력을 낭비하는 경우도 없다. 가끔 대화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밴딩 머신 같다는 생각에 놀라곤 한다. 대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의성과 따스한 온기가 없다. 표준적인 대화 카테코리를 이용해서 대화를 진행시키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의 충격은 꽤나 크다. 하지만 충격이 삶을 변화시키는 법은 결코 없다. 그저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예전의 난 지하철의 차창으로 한강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길에서 꽤나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곤 했다. 그 눈길을 생각하고 혼자 처량한 표정을 짓는 것이 스스로의 의지로도 어찌할 바 몰랐던 버릇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처량한 표정 대신 신경질적인 표정이 자리잡았다. 번뇌대신 번잡함이 삶을 차지했다. 어쩌면 해야 할 일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무엇이던 간에 이러다 추억조차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꽤나 두렵다. 잊은 것이 아니라 무덤덤해진 것이라는 설명도, 잊은 것이라는 설명도, 잊어야 한다는 설명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3.
사람은 누구나 몇 가지 윈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몇 가지 원칙을 토대로 하루를 살곤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가능한 변명을 하지 말자’라는 윈칙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지속적으로 이 원칙을 후퇴시키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예전에는 마음의 120%를 전달하는 감정 과잉의 상태에 있었는데 요즘에는 마음의 70%조차 전달하기 힘들다. 내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니 무작정 믿어달라고 변명하고 싶은데 도대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래서 어른의 삶은 힘들다. 그저 이렇게 쌓여가는 오해가 낳을 재앙을 기다리며 두려워 할 뿐이다.

4.
언제부터인가 난 이곳을 꽤나 절제된 장소로 만들고 있다. 우선은 빈한한 내 문장의 근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해석력을 지닌 몇몇에게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고, 나머지는 ‘Mortis Lingua’ 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실상은 ‘해석의 달인’ 일수록 더 쉽게 상처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은 말이 해석에 따라서는 비수가 되기도 하고, 살짝 놀리는 수준의 장난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난 증오와 냉담함을 모두 두려워한다. 그것이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두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 두려움을 맨몸으로 받아낼 자신이 나에게는 애당초 없었다.

5.
결론은 냉담함처럼 보이는 나의 무의미한 행동을 변명하고 싶다는 것이다. 호의와 우의가 쉽게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결코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상기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른이 되면서 말이 아닌 마음으로 걱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서 그랬노라고 말하면 용서해 줄지 아니면 비웃을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2 thoughts on “Post hoc”

  1. 아.. 방금까지 상당히 재미있는 걸 읽고 다 읽은후 감동 받으면서도 무덤덤한 자신에 좌절하며 결국 나도 이렇게 되어가는건가- 하고 있었는데 여기왔더니 이런글을 보게 되네요. 공감 백만배 입니다 ㅠㅠ

  2. //테네사
    우리 어서 벗어나자구요. 하나 둘 ‘촌스럽게 순진하기’ 단계에서 ‘우아하게 냉혹하기’ 단계로 접어든 지인들을 보면서 까닭없이 옛날이 좋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여기에 吐달면 강력한 것으로 날리겠어. 도큐멘트에 억제 전력을 보유중이라고 넌지시 알리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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