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거장展

예술의 전당에 갈 때마다 다시금 깨닫게 되는 사실은 지금껏 그곳에서 본 수많은 전시회가운데 마음에 든 전시회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요일에 본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찰나의 거장展> 역시 그랬다. 이름 높은 사진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은 아름다움으로 나를 감동시키기 보다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내 지루하게 만들었으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사실 내가 브레송의 전시회를 불편하게 봤던 이유는 기획에 있다. 액자가 걸려진 높이가 너무 낮았으며(이것은 내가 큰 것이니 참을 수 있다), 조명은 답답할 정도로 어두웠고(사진전이 아니라 회화전에나 쓰이는 조명이었다), 쓰여지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안내문과, 동선을 따라 이리저리 의미 없이 나열된 작품 속에서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없었다. 애초에 의도가 없는 기획은 의도가 뻔히 들어 나는 기획보다 더 나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의 사진은 혹평하자면 정말 찰나에 불과한 것이고, 호평하자면 사진이라는 도구를 가장 능숙하게 사용한 예술가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 사진의 프레임을 뛰어넘는 강렬한 몰입감과 긴장감, 정열을 발견하기란 요원했다. 흑백 사진에 담긴 인물의 주름처럼 그가 남긴 질감의 사실성은 매우 풍부하다. 하지만 그의 긴장감은 사진이 허용하는 한도 내의 긴장감이고, 시선의 해석 역시 사진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실 그의 사진에서 행간을 읽어내는 즐거움을 누리기란 어렵다. 그는 순간을 포착해내는 탁월한 순발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순발력을 이용한 메세지의 창조에는 서투르다. 그에게는 주장 혹은 생각을 담아내는 자신감이 부족하다. 그의 시선은 항상 조심스럽고, 항상 퇴로를 엿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그의 사진은 카피라이터가 빠진 채 제작된 예술 감독의 광고 필름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전날 보드리야르의 사진 속에서 풍부한 맥락의 향연을 본 나로서는, 프레임을 벗어난 시선과 그 해석이 주는 즐거움에 깜짝 놀랬던 나로서는 이 노대가의 사진이 너무나 단조롭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이런 감상은 로베르 카파의 영향일 수도 있다. 스페인 내전 당시 촬영된 그의 사진은 찰나의 순간과 사진 밖의 시선, 행간을 읽어내는 즐거움과 순간의 평화로움, 그리고 곧바로 어어지는 비극성과 정열, 유혈까지 인간이 사진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런 카파의 사진에 비하자면 브레송의 사진은 어딘지 부족해 보인다.(물론 오늘날 로베르 카파를 대가로 인정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그의 사진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지만 너무나 강렬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 깊은 것은 아니다. 브레송의 사진에서 받은 인상은 전시회장의 출구를 나온 순간 조금씩 흐릿해져 이내 흩어진 조각이 되어 버린다.

사실 브레송은 풍경 사진의 대가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인물 사진 역시 풍경 사진에 비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되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인물 사진이 더욱 인상 깊었다. 우리가 작품이나, 글월을 통해서 느끼고 교류할 수 있었던 창조자 자신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프레임 안에 담겨져 있었다. 그의 인물 사진은 경탄 그 자체이며 그의 사진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지금껏 창조자와 나누었던 대화에 현실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풍경과 인물, 그리고 시간이 만나는 순간이다. 정말 찰나의 인상을 표현해야 하는 순간의 그는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의 부족은 그의 사진을 아름답지만 호기심과 욕망을 자극하지 못하는 ‘나와는 상관없는 객체’에 머무르게 만든다. 그의 사진에서 맥락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가 현대인이기 때문이며, 현대인의 담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느낀 찰나의 순간대신 우리식의 담론에 어울릴 찰나의 순간을 발견한다.

평화로운 코소보를 찍으며 그가 장래에 존재했을 참혹할 유혈을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가 찰나를 포착해낸 것은 평화로운 발칸의 반도의 한 마을이지 우리가 표상하는 유혈의 코소보가 아니다. 그의 사진의 불행은 의도와 다른 해석앞에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해석 스타일 앞에서 그의 작품은 한층 매혹적으로 변하지만 브레송 본인의 의도와 새로운 해석의 불일치로 인해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M_ P.S. | less.. |
전시회를 보면서 한 예측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자코메티가 담긴 사진을 보면서 이 사진을 보며 떠올릴 감상이 어떤 경로로 나에게 다시 되돌아 오게 될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것은 뜻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용한 점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충분했을 따름이다._M#]

4 thoughts on “찰나의 거장展”

  1. 많이 동감한다,
    전시회를 보면서 그가 말한 결정적 순간이 나에겐 다가 오지 않아 좀 지치더군,,,,
    생각해보니 그 결정적 순간은 브레송이 느끼고 경험한 그 순간이더군,,,
    다만 그의 순간과 나의 경험이 일치를 본 작품이 있었다.
    “리버플” 그 사진만큼은 나에게 숨이 탁 막힐만큼 뛰어들어오더라.
    내가 그 장소 어디쯤에서 느꼈던 황량한 슬픔이 있었거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앙리가 되었다.
    뭐랄까? 그의 작품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할까….
    뭐 예술이 객관보단 주관이긴 하지만…..
    그래도 체게바라사진은 눈물이 핑돌더라..
    진정한 혁명가는 어른이 된 가장 천진난만한 아이라는 생각이 ….

  2. 리버풀의 경우 아마 1956년 작이었을 거야.(기억이 희미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시기에 브레송이 담아낸 황폐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느끼도록 요구하는 황폐함과 다른 것이 아닐까 싶었어.

    아직 전화에서 회복이 덜 된 황폐함을 브레송은 사진에 담았던 것이고, 누이는 한때의 영광을 뒤로 하고 실업과 경기 위축으로 쇠락해 버린 항구 도시를 그렸던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아마도 우리는 그가 의도했던 것 대신에 다른 것을 보고 감동하고 있을지도 몰라.

    체의 경우에는 그 천진난만함이 빛났지만 덕분에 다시 한번 그가 몽상가였다는 사실이 떠올랐어. 그는 혁명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하지만 몽상가의 혁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몽상가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등장하는 사보나롤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더군.

  3. 네 말이 맞아…
    같은 장소에서 다른 생각이지….
    그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우울한 사람의 감정은 비슷할 것 같군….
    혁명이란것이 어쩜 이보전진 일보후퇴….
    아님 일보전진 이보후퇴 다시 일점오배전진…..
    혁명이란것도 때가 지나면 혁명이 아닌것이 되지 않을지…….
    무감각 해질 수도 …….
    다만 혁명과 쿠테타를 마구잡이고 오용했던 경우는 모르겠다.

  4. 너무 우울할 것 없어. 황량한 돌무더기에서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팀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쿠데타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군인들에 의한 전복을 의미하니까 시민 혁명과 오용될 이유는 없다고 봐. 오용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웃어 주어도 될만한 시대이기도 하고. 공식적으로는 혁명과 혁명이 아닌 것이 아니라 혁명과 반혁명(예전에는 반동이라는 단어가 쓰였지)으로 구분되곤 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장 좋은 예가 푸세가 자코뱅 클럽을 폐쇄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군.

    체에 관해서는 그가 정치를 몰랐다는 인간의 본성에 어두운 곧잘 선의를 믿었던 순진한 사람이었다는 평가가 딱인 것 같아. 그렇기에 오늘날 슈퍼스타이자 혁명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