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1.
밤새 내리던 비는 새벽녘이 될 때까지 그칠 줄 모르고 줄기차게 내리고 있다. 빗살이 가려버린 시야는 여전히 뿌옇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두해 전 오늘의 난 비를 맞고 고열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날 보았던 창밖의 모습과 지금 보는 창밖의 모습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존재한다. 뭐랄까? 비에 젖은 잎새와 거리의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2.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순간은 굴욕감이 애정을 앞서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증오는 냉담함이란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사람이란 동물은 극도로 예민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어서 겉으로는 태연자약이지만 속으로 받은 상처를 결코 잊는 법이 없다. 그리고 상처를 잊는 법이 없는 만큼 용서하는 법도 없다. 심지어 사랑을 떠나 우정에서조차 그러하다. 문제는 그가 느끼는 굴욕을 이해하지 못한 이상 그의 변화가 당혹스럽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굴욕감은 언제 생기는 것일까? 십중팔구 굴욕감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생겨난다. 사람은 스스로에게는 매우 정직한 동물이어서 겉으로는 들어내지 않지만 스스로를 재는 냉정한 척도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 척도보다 저열한 취급을 받을 때 그는 부당함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부당함을 해소할 수 없을 때 굴욕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상대가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을 수록,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클수록 더욱 강한 굴욕감으로 발전한다. 이 기저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관계 회복은 요원하다.

3.
절친한 지기의 선언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마저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는 것이 못내 섭섭하다. 그라면 조금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역시 나나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 길은 누구나 한번쯤 거쳐가는 공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길의 끝에서 그가 다시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빈다.

4.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에 창밖으로 드리워진 거대한 암운을 보았다. 그 암운이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 돌처럼 굳어버린 마음이 언제 암운으로 변한 것일까 하고 자조적인 웃음을 지어봤다. 그러다 이내 창으로 투영되는 내 얼굴을 보고 표정을 지웠다. 그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내 마음이 더 씁쓸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실행력 100%>의 인간이 되는 것 빼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예정이다. 내 삶이 그림자에 묶인 삶이라는 것은 이제 지겹도록 충분히 증명되었으니 그림자에 묶인 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 겠다.

5.
침대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대고 창턱에 뒷머리를 댄 채 즐기는 글쓰기가 오늘은 어딘지 껄스럽다. 허벅지에 노트북의 발열이 그대로 전도되어서 그런 것일 테지만 오늘따라 이 느낌이 유난히 싫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고, 이런 추세라면 어제부터 오늘까지 150밀리미터는 넘게 내린 듯 싶다. 오전에는 청소를 하고, 빨래를 말린 다음, 면도를 하고 핑거포스트를 마저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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