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포스트 1663

<라파엘로의 유혹>을 가혹하리만치 냉담한 어조로 혹평했기에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지 않아 <핑거포스트, 1663>이 무척이나 잘된 소설이라는 말을 하려는 스스로가 실력없는 야바위꾼처럼 느껴진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라파엘로의 유혹>에 대한 혹평을 철회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가 단순한 먹물이라는 표현만큼은 취소하고 싶다. 그는 단순한 먹물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훈련 받은 속임수의 귀재다. 아니 그만큼 깔끔하고 멋지게 패배를 인정하게 만드는 역사추리소설 작가는 없다.

사실 김석희씨의 번역에도 불구하고 <핑거포스트 1663>에서는 17세기 역사 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 가령 <전날의 섬>이나 <왕비의 침실>, 혹은 <삼총사>, <임프리마투르>를 지배하는 매너리즘과 바로크가 교차하는 고혹적이면서도 매혹적인 특유의 그 분위기가 전혀 감지 되지 않는다. 되려 이안 피어스의 서술은 다분히 디킨즈풍이다. 디킨즈의 서술에 캐드펠 시리즈로 유명한 앨런 피터스의 서사가 결합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문체에 있어서 그는 뛰어나기 보다는 평범하다. 문제는 문체가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태피스트리다. 평범한 재주의 문체에서도 이렇게 멋진 작품이 나온다는 사실을 오늘 난 처음 알았다.

<핑거포스트 1663>은 4개의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증언은 <시장의 우상>, <동굴의 우상>, <극장의 우상>, <핑거포스트>라는 부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트릭은 베이컨의 idol이 4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쉽게 풀린다. 각각의 우상은 진술의 주인공이 저지르는 오류일 뿐만 아니라 진술이 독자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저지르게 만드는 오류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부제로 소개되지 않은 종족의 우상은 어디에 쓰일까? 종족의 우상이야말로 이 소설의 복잡한 씨줄과 날줄을 한번에 꿰뚫어 보는 요결이다. 종족의 우상만 기억하고 있으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소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종족의 우상에 담긴 이중성(책 내부의 등장 인물들, 그리고 책과 독자 사이의 관계)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피어스가 의도한 지적인 스릴러를 온전하게 즐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를 다룬 모든 역사소설에 등장하는 테마는 종교 개혁이다. 유럽이 이 시기만큼 종교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기는 없었으며, 종교가 모든 것이었던 시기도 없었다. 따라서 이안 피어스가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과학적 실험론과 경험주의에 이끌려 참혹한 마녀 사냥과 맹목적인 광신을 잊는다면, 더욱이 끝까지 그것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면 이 소설은 그저 구성이 독특한 소설쯤으로 치부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것을 너무 빨리 알아서도 안 된다. 적당한 속도로, 책장의 끝에 이르렀을 때 아! 하고 알아채는 것. 그것이 바로 이안 피어스가 바라는 바다.

소설의 힌트는 1663이라는 연도다. 역사적으로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연도에 불과하지만 이 연도는 개인의 추리를 발전시키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역사책을 펴놓고 1663년을 기준으로 사건을 비교해 보면 진술이 놓치고 있는 진실이 확연하게 들어난다.(물론 원제에 1663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시간에 청교도 혁명을 심도있게 배워야 할 이유가 없는 나라다)

이안 피터스의 <핑거포스트 1663>은 분명 매우 재미난 소설이다. 구성의 독창성과 진술이 교모하게 맞물리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로우며 매끄럽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대로 에코를 능가할 정도의 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에코가 역사에 남을 작가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아직 이안 피어스에게는 유머가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온전하게 풀어내는 스타일이 없다.

그의 스타일은 되려 자연스러운 상태를 강제하려는 것에 가깝다. 절제가 미덕이기 보다는 악덕이 된 문장. 그가 사용하는 대화체는 19세기 빅토리아풍이고, 창조해 낸 캐릭터 역시 19세기풍이다. 17세기 특유의 활력과 비합리성, 참을성 없는 광신과 매력적인 정열을 이 소설에서 기대하기란 어렵다.(이것은 당연히 있음직한 17세기 특유의 관례적 논변이 이 책에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진술과 사건의 씨줄과 날줄이 만들어 내는 숨막히게 치밀한 지적 유희의 세계로 빠져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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