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매에 관하여

김홍도의 화첩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 이야기를 학교에서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를 생각해 보았다. 지인의 반은 아예 무관심할 것이 틀림없고(아마 때때로 시작되는 나의 헛소리쯤으로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나머지 반은 매우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예술품이 지닌 아름다움을 경외하지만 그렇다고 예술품이 지닌 상품성을 무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화첩은 그것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화첩에 담긴 섬세한 필치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예술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높지 않다. 한국이라는 시장 특성상, 더구나 세무조사의 칼날이 서슬 퍼렇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고액의 미술품을 구매하는 것은 세무조사를 자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미술품 시장의 밀수 시장은 보다 양질의 예술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굳이 세무조사의 표적이 되면서까지 공식 거래를 할 개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밀수가 가격 왜곡을 일부시정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응찰에 개인이 나설 수 없다면 남은 것은 미술관 같은 공적 단체뿐이다. 하지만 10억원이란 가격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미술품 구입 예산의 야박한 현실을 고려해 볼 때 10억이란 예산으로 효과가 불분명한 작품 하나를 건져오는 것은 담당자로서는 목을 내놓고 하는 가장 위험한 도박이다.

미술 상품은 저량으로서의 가격과 유량으로서의 가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또 시장에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을 경우 예술품의 가격은 통상적으로 감정액과 보험에 의한 보상액으로 평가된다. 경매에서 낙찰 받은 가격이 공적인 수단을 통해 확인된 저량이라면 당사자간 직접거래시장에서 유통되는 가격은 유량이다. 문제는 미술상품 역시 하나의 가치 축적 수단으로 거래되는 이상 이익실현을 위한 환금성(다시 말해 수요와 기대수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을 숙고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전통 한국 회화의 수요는 전세계적으로는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과거 청화백자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08만달러에 낙찰되었던 전래(96년에 882만 달러에 낙찰된 철화용문 백자항아리의 전래도 있긴 하지만)로 보아 도자기에 비해 세계적 수요가 그리 높지 않은 전통 한국 회화가 비슷한 가격 수준에서 경쟁을 벌이기를 희망하는 것은 헛물켜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14세기 고려불화가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22억원 선에서 낙찰된 케이스가 한국 회화가 세계 시장에서 가장 고가에 팔린 경우다. 박수근의 겨울이 57만달러에 낙찰된 것을 고려하면 김홍도의 명작이 아닌 이상 최소 응찰가 10억원은 웃자는 소리에 불과하다)

김홍도가 우리의 자부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자부심으로 남으려면 그것은 애초에 경매 시장이 아니라 박물관에 있었어야 했다. 경매 시장에 나온 이상 철저하게 시장의 룰에 의해 평가 받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경매 진행자는 홍보면에서는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역으로 수익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깨달아야 한다. 경매에 실패한 미술품이 성공적으로 재기한 경우는 매우 드물며, 세상에 존재가 알려진 미술품의 거래는 당국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그리고 경매에 실패함으로써 그는 되려 우리의 자부심에 상처를 입혔다.

경매에서는 두 가지 묵언 협상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경매자와 응찰자 사이의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협상, 응찰자들 사이에서 가격으로 이루어지는 협상. 하지만 두 단계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전자가 후자에 선행되어야 한다. 응찰자와 실패한 협상에 과도한 홍보를 첨가함으로써 경매인은 향후 한국 회화 미술품의 가능성을 10억원이라는 극점 아래로 고정시켰으며 아울러 시장의 신뢰도 잃었다. 우리가 잃은 것이 비단 자부심만이 아닌 현실이 무척 씁쓸하다.
[#M_ P.S. | less.. |
정확하게 알려진 적은 없지만 경매장의 BEP는 최소응찰가의 0.7에서 1.3사이에 위치할 것이라고 추정된다.(난 순진하게도 1.5 이상을 예상했다. 하지만 고가에 팔리는 미술품이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미술품이 등장하는 그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따라서 경매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경매방식을 취한 경우 작품의 구매 가격을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리고 경매 과정을 통해 시장이 이 가격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가를 알 수 있다. 어떤 것이 되었던 시장에 나온 미술품의 운명은 기구하며 또 기구하다. 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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