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시대

몇년 전에 출간된 이영희씨의 <노래하는 역사>를 읽다가 일본 학자들이 만엽집을 해석하다가 밥숫가락을 놓고 싶었을 거라는 문구를 읽으며 난 언제쯤에나 이 유치한 표현을 글로 남기게 될 것인가 고민해 본 적이 있다. 물론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던 당시의 나로서는 평생 이런 말을 하지 않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성장과 함께 치밀하고 촘촘한 문장으로 무장한 하우저씨의 저술을 만났고 독해에 어려움을 느꼈다. 사실 여기까지는 하우저씨의 문장에 담긴 깊이와 통찰력은 아직 문화와 예술에 대해 논할 소양이 없는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자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프랭크 커모드의 <셰익스피어의 시대>라는 복병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프랭크 커모드의 <셰익스피어의 시대>는 셰익스피어의 몇몇 희극과 비극, 역사극을 읽은 소양 정도로는 엄두가 안나는 책이다. 나름대로 역사극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고(난 폴스테프의 대사를 음미할 정도로 역사극에 심취했다고 착각했었다. 바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고전 희극이 17세기 영국 희극에 미친 영향에 대해 모르는 편은 아니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나로서는(그의 로맨스극에 사용된 그리스와 로마 희극의 요소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역시 이 책을 읽고 깨진 우상이 되어버렸지만) 전공인과 비전공인의 냉엄한 차이를 느끼게 해준 한 권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셰익스피어를 문예 사조를 중심으로 한 통념이나, 위대한 혹은 천재적인 극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고 금가루 입히기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에 이르는 런던의 극장을 배경으로 셰익스피어를 탐구한다. 커모드는 초서에게나 입혀진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라는 후세의 타이틀과 분석 프레임을 셰익스피어를 탐구하는데 있어서는 사용하기를 거부한다. 되려 그는 ‘처녀 여왕’의 마지막 시대부터, 스튜어트 왕가의 시작에 이르는 시기를 극장과 작품, 그리고 작가라는 3요소에 입각해 분석한다. 이런 커모드의 분석은 우리가 알아오고 접해왔던 셰익스피어의 환상을 벗겨내는데 단단한 일조를 하지만 시선과 분석이 무척이나 참신하고 새롭다.(이것은 아마 우리가 지금껏 배워온 셰익스피어에 대한 해석이 천편일률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랭크 커모드의 시선은 무척이나 넓다. 고전 희극부터, 동시대의 이탈리아의 희비극과 프랑스의 궁정극, 청교도 혁명이 희극에 미친 영향까지 광범위한 시야를 토대로 극장과 극단, 작품과 작가를 분석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많은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 장점을 뒤엎는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정규 교육으로 배우지 않은 우리로서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수많은 희극들과 당연히 안다는 사실을 전제로 진행시켜 나가는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잡기 벅차다.

P.S.
소년 극단과 성인 극단, 노천 극장과 실내 극장,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군주제를 선호했다는 이야기와 그런 그들이 훗날 공화정을 시험하게 되었다는 서술은 정말 일품이었다. 찰스 1세를 가리켜 왕족 배우라는 인용문을 읽은 기억은 있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를 몰랐던 난 오늘에서야 왕족 배우가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책에 낙인한 장서인이 부끄럽다.

2 thoughts on “셰익스피어의 시대”

  1. 작년부터 그렇게 꽂혀있었는데… 측천무후, 내 이름은 빨강, 그리고 방각본 살인사건. 정말 그렇게 꽂혀있어요… 하나도 안 틀리고…난 아직 방각본 살인사건 읽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그 순서대로 꽂아놓았어요.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예요.. 믿을 수 있나요? 내가 하는 말을?

  2. 보지 않은 것도 믿을 수 있은데 본 것은 당연히 믿지요. 우연을 가장한 호기심으로 사진을 감상하다가 어떤 사진을 봤어요. 책등의 아랫표지만 나와 있는 사진이었지만 내 책장에도 같은 배열로 꽂혀 있기에 어떤 책들인지 곧바로 알 수 있었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아니예요. 호기심이 왕성하고, 약간의 스토커 기질에, 충분한 관찰력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라구요. 정말 이상한 것은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것들이 어떻게 쌍으로 배치될 수 있냐는 점이죠. 그것도 서로 다른 책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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