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nting Japan(근대 일본)

오래 전 인터뷰에서 만난 한 선배는 산케이신문이나 니혼게이자이신문을 출근길에 읽는 것이 잘 나가는 비즈니스맨(person을 써보려고 했는데 체어퍼슨과 다르게 영 어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 상황을 왜곡하는 말장난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의 상징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회고담을 꺼낸 적이 있다. 아울러 산케이와 니혼게이자이가 월스트리트저널과 FT로 대체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을 이야기 했다.

솔직히 내가 성장한 시기는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이 버블의 붕괴와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의 수렁에 빠져들던 때였다. 상사원들이 일본어 대신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시기가 이때였고, 일본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강력하다는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 얄미운 나라일 뿐이었다.

사실 선배의 회고담을 들으면서 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해방 이후의 한국 기업의 성장 과정을 취재하던 난 일본의 기업문화를 받아들인 많은 기업들이 성장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고 수긍하기 어려웠던 미국식 전략을 선택한 기업들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비교해 보면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기업만이 아니라 일본의 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80년대 미국은 the Goal를 통해 일본의 효율적인 생산성에 경탄을 보냈을지도 모르겠지만 21세기에 대학을 다닌 나로서는 일본인의 글쓰기에서 사상과 철학의 부재만을 발견했다. 단절된 호흡과 끊겨진 맥락, 어딘지 핀트가 맞지 않는 주장과 실용성에 바탕 했으면서도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결과물을 바라보며 그들을 마음껏 조소했었다. 그들에게서 어떤 합리성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매우 즐거워 하며 책을 내던진 적도 많다. 어쩌면 이런 내 태도에 한세기전 요시노 사쿠조가 예언했던 대로 ‘한국인이 된다는 것은 곧 반일본인이 된다는 사실이 거의 백년 후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는 문장을 실현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inventing Japan’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책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오늘의 내가 애써 외면하는 많은 사실들이, 혹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지켜보고 있는 미래가 이 책에서는 과거에 실재했던 역사적 사건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 혹은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이 일본에서 이미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을 지금껏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일본에서조차 현재 진행형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아울러 식민시대를 거친 모든 나라들이 풀지 못한 채 그저 숨기는데 급급한 언급할 수 힘든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근대 일본>은 200여 페이지의 분량에 페리의 개항이후 백년 남짓한 역사를 다룬 짧은 글이다. 간결한 문장은 꼭 필요한 것들만 담고 있으며, 생략의 묘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증오심과 편협함에 사로잡혀 일본인들을 폄하하거나 비난하지 않으며, 광기에 사로잡혀 이들의 죄악을 정당화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보다 더 중요한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유의 정체성을 잃고 서구 사상의 새로운 응용시험장이 되어버린 많은 나라들의 공통된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M_ P.S.
| less.. |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가끔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책들이 시야에서 묻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경우이다. 자세한 과정은 <너복설과>이지만 이것을 inventing Japan으로 읽지 않고 inventing Korea로 접근해 보면 놀랄만한 사실이 들어 난다. 그리고 그 놀랄만한 사실은 나를 두렵게 만든다. 좌파 반골과 우파 엘리트로 불리는 집단 통합주의 관점에서는 모두 틀릴 수 있다라는 사실이 이책을 읽고 느껴지는 두려움의 실체다._M#]

2 thoughts on “Inventing Japan(근대 일본)”

  1.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일본을 비웃는 건 어쩌면, 의외로 ‘너무 비슷해서’일런지도. (사람은 자기의 그림자에 특히 예민해지는 것 아니겠어요. 타인이란 걍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고)

  2. 예. 읽으면서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들의 근대를 보면서 이리 아찔한 기분이 드는 것은 우리가 서로 정말 닮았기 때문이겠죠?

    꽤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처음에는 가볍게 넘기던 책장이 종국에는 꽤나 우울해져 버렸거든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