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의 피서산장

평상시의 난 스스로의 기억력에 자부심을 지닌 사람이다. 물론 잘못 기억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확률적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경우보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럴 때의 내쉬 전략은 일단 내가 맞다고 우기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이런 자만이 횡액을 부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열하의 피서산장>이 그런 경우다.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새로운 책을 낸다면 절대 읽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한 사람을 뽑으라면 나에게 있어 웨난이 그렇다. 하지만 <부활하는 군단>에서 <마왕퇴의 귀부인>까지, <구룡배의 전설> 거쳐 <황릉의 비밀>과 <법문사의 비밀>까지 매번 같은 다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의 책들을 읽게 되곤 한다. 매번 같은 비난과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면서도 오래지 않아 난 제목에 속아 또 서장을 넘기고 만다.

단언하건데 웨난의 서두는 분에 넘칠 정도로 훌륭하다. 하지만 서두가 끝나는 그 순간부터 지리멸렬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박식한 야사 실력에는 혀를 내두를 수는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로부터 배울 점은 없다. 그의 역사관은 철학이 부재한 정말 엿가락처럼 늘었다 줄어드는 편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마음 복잡한 중국인의 의식 속 깊이 숨겨진 이중 증오를 잊지 못하는 편협함을 지니고 있다. 그의 글을 읽고 보면 소아와 대아가 다양한 상황에서 변용 된 채 흘러나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대상을 명시하지 않은 분노를 터트리고 증오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태연한 안색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빈정거리며, 힐난하는 것 뿐이다.

다시 <열하의 피서산장>으로 돌아가보면 늘 그러듯이 그의 주제는 참신하다. 그의 접근법은 생소한 것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방법이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재미난 주제도 그의 손에 걸리면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초반의 강력한 힘을 서서히 잃어간 그의 필치는 이내 단조롭고, ‘홍위병의 삐라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쇠잔한다. 그의 글을 왕조의 융성기에 빛이 난다. 하지만 다가오는 암운에 신경질이 나버린 펜은 이내 거칠고 방만하며, 세련된 우아함을 잃은 프로파간다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의 서두가 던지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도 매번 같은 표현으로 똑같은 비난을 일삼으면서도 말이다. 매우 언짢은 상황이지만 제발 다음에는 웨난에 대해 똑바로 기억하기를 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4 thoughts on “열하의 피서산장”

  1. 네 제목만으로는 시원한 여름 휴가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죠. 왠지 낚시글 분위기인걸요.^^

  2. 청조 황제들과 관련된 야사를 소개한 부분은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저자의 비판 의식과 어쩐지 조화롭지 못했어요. 흥미를 유발하려는 목적과 그것을 경계해야한다는 의식 모두가 드러나버려 얄팍해져버렸다고나 할까요?

    얄팍한 fiction 이라고 하기에, 진지한 역사적 사실이 열거되어 있고, 그렇다고 역사서라고 하기에 진술된 사실들이 어디에서 부터 인용되었는지 알 수 없어, 쟝르의 규정이 애매해요.

    2권에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함풍제에게 내놓은 조정대신들의 idea들은 정말 블랙 코메디 한 편을 보는 듯, 황당하며 씁쓸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황당함은 요즘 애청하고 있는 이순신에서도 느꼈거든요. 물론 블랙 코메디와는 거리가 먼 처절한 역사이나,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총으로 무장한 왜군에게 칼과 낫으로 맞서야 했던 조선 수군의 모습역시 황당함과 씁쓸함을 주긴 마찬가지예요.

    저 역시 마지막 장에서, 열하산장을 국민당이 파괴했고, 인민정부의 복원했다는 판단은 중국 저자들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고 생각해요. 얄팍한 역사수필에 머물수 밖에 없는 책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저자의 이름을 잊지 말아야 겠어요.

  3. 황릉의 비밀에서는 만력제를 얼마나 무능한 사람으로 묘사했는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예요. 산해관을 넘는 만주족은 무뢰배에다가 비문명인으로 묘사했으면서 이번책에서는 천조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정말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구룡배의 전설이라던지, 신해혁명 이후의 중국을 다룰 때는 군벌이 열강보다 더 나쁘다는 태도를 보이곤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교류가 늦은 것이 결정적 실책이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구요.

    임란이 블랙 코메디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싸운 상대가 참호 보병으로 불리는 파르마의 군대도, 쿠드라에서 승리한 앙리 4세의 피스톨 기병이 아니라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엄밀한 비교는 아니지만 당시의 왜군은 어느날 하늘에서 잘못 떨어져 16세기 전장에 나타나 버린 크롬웰의 군대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일은 몇가지 없었던 셈이죠.

    아무튼 이렇게 글을 남겨 놓았도 몇년 후에는 또 까먹고 웨난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제 남은 시대는 오대부터, 명초에 이르는 기간 뿐인데 이 시기가 또 야사가 가장 흥미로울 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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