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Capital

대학 1학년 가을학기쯤인가? 나와 나의 절친한 지기는 MNC(Multi-National Company)의 특징에 대해 실례를 들어가며 발표해야 할 과제를 맡은 적이 있었다. 철없던 당시의 우리로서는 포춘 500대 리스트를 흥겨운 마음으로 뒤졌고, 각 산업별로 MNC의 이미지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기업들 몇개를 골라냈다. 지금 기억나기로는 로레알과 시티그룹, 모토롤라와 알리안츠를 골랐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웃긴 발표를 하고 있는지 까맣게 몰랐다. 시티코프와 시티뱅크, 시티그룹조차 제대로 구분하고 있지 못했던 우리는 스티걸-글래스법이 이미 사망 선고를 당하고 샌디 웨일(시티그룹의 전CEO, 현직 회장. King of Capital의 주인공)에 의해 시티그룹의 해외영업망이 수술 절차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 후로 난 이 발표에 대한 언급을 피해왔다. 철부지 고등학생들에게 조차 각인되어 버린 <월드 뱅크, 시티 뱅크>라는 슬로건을 창조해낸 존 리드(시티그룹의 전 공동CEO)를 저주하며 말이다. 그리고 그 불편한 기억은 시간 속에 묻혔다. 뱅크원의 CEO였다가 이제는 JP모건의 CFO가 된 제이미 디몬의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샌디 웨일의 수제자였던 그가 시티그룹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인 JP모건의 차기 CEO로 내정된 아이러니를 재미나게 읽던 나는 그제서야 투자 은행들과 상업 은행들의 합종연횡이 무슨 이유에서 시작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겉다. 인터뷰를 다니면서 수없이 들었던 교차 판매(혹은 방카슈랑스)와 기업의 수익 극대화 전략, 그리고 보장된 수익과 안정 자본이란 단어에 관한 깨달음을 그제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미래에 읽게 될 <시티 그룹 그 열정과 도전>은 모두 이해한 것이나 진배 없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책의 중반까지는 그런 생각을 가지며 책장을 넘겼다.

<시티그룹의. 그 열정과 도전>의 원제는 King of Capital이란 다소 원색적인 제목이다. 하지만 책장을 모두 넘긴 지금으로서는 이 보다 더 좋은 제목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제목은 제목이고 내용은 내용이다. 이 책의 세그멘테이션은 다소 엉뚱하다. 문장은 편이하고 쉬운 대중서를 지양하는데 담긴 내용은 대중적이기 보다는 약간 전문적인 내용이다. 그렇다고 또 매우 전문적인 영역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역에서 캐리어를 구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친숙한 이야기여서 굳이 책으로 읽을 필요성 조차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King of Capital은 월스트리트나 미래의 금융 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 보는 것이 좋을 만한 책이다. 샌디 웨일식 성공의 법칙으로부터 인수 합병의 황금률을 배울 수 있고, 투하 자본량비 수익성이라는 실제 영역에서 이따금 잊혀져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재무제표 분석 방법과 효율성을 위주로 조직을 재편하는 운영의 노하우가 오늘의 샌디 웨일을 있게한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내의 이사회의 제어법과 기업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숨은 전쟁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덤으로 60년대 시장의 불황과 함께 시작된 기나긴 인수 합병의 역사를 얹어준다.

이 책은 big deal로 불린 샌디 웨일의 거래에 초점이 맞추어 있고, financial corp. 간의 인수합병의 모범 교범으로 자리 잡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략적 이동이나 선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기업 문화와 합병 과정의 문화적 융합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역시 이 책의 관심이 대상이 아니다. 대신 이 책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은 해가 지지 않는 하나의 금융 왕국을 건설한 한 남자에 대한 관찰 보고서이다.

사실 이 정도도 나쁘지 않다. 이 책 한권으로 ‘시티 그룹 그 열정과 도전’을 알 수는 없겠지만 월스트리트를 다룬 수많은 단행본 속에 당연스레 등장하는 기업들의 인수 합병에 대해서 간략하게 맥을 잡고 싶다면 이 보다 나은 대안은 없어 보인다. 경영서 특유의 유려하기 보다는 의도가 뻔히 들어나는 구성과 심플한 단어 선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 thoughts on “King of Capital”

  1. 재미있겠네요. 뭘 읽을까 뒤적거리던 차에 잘됐네요.
    답글은 자주 안남기지만, 글은 잘 읽고 있어요. ^^

  2. 제 경우에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복잡한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멕스에 관련된 부분이라던지 살로먼 브라더스의 인수에 관련된 부분이라던지. 다른 책들에서 너무 간략하게 언급되거나 생략한 이야기를 이 책은 꽤나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더라구요.

    자주 들려 주세요. 답글은 안남기지만 저 역시 Blooming Town의 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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