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도

내가 막 글을 배웠을 무렵 큰누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이었고 연합 고사가 끝났음을 핑계로 추리소설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큰누이가 들여 놓은 추리소설은 전염병처럼 다른 누이들에게 퍼져 나갔다. 물론 당시의 나에게는 누이들의 관심을 몽땅 채어 가버린 추리소설은 호기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원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누이들이 잠들거나 텔레비전에 열중하는 사이 시나브로 추리 소설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르와 미스 마플을 알게 된 것이 바로 그 무렵의 일이다. 하지만 에도가와 란포와 에드가 앨런 포를 구분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사실 여기까지가 <옥문도>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구상한 글의 첫머리였다. <옥문도>는 추리 소설에 지루함마저 느끼는 나에게 이제는 기억 속에나 희미하게 남아 있는 추리 소설을 처음 접하던 순간을 회상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런 묘한 힘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어림이 가능하다. 첫번째는 일본어와 하이쿠를 모르는 무지 덕분에 얇은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완독하는데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사실이고, 두번째는 육문도란 섬의 분위기 속에서 처음 추리 소설을 읽었을 당시에 알게 된 칙칙하면서도 암울한 추리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빼고나면 오늘의 기준으로 볼 때 <옥문도>를 뛰어난 추리 소설로 평가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다. 수많은 추리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가 보기에는 탐정의 행동이 굼뜨고 느린데다가 행동의 섬세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갖 추리 소설의 트릭을 머리 속에 아로새긴 독자로서는 의도적으로 독자를 심리적 함정에 빠트리려는 작가의 수가 휜히 보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범죄의 동기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범인을 찍어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원인이 있는 곳에 결과가 있다는 금반언보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정황 증거를 모으는 미시 수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처음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되던 시점에서는 이런 내용 전개가 무척이나 흥미로 왔을 테지만 추리소설에 닳고 닳은 오늘의 독자들에게는 오래 전에 유행하던 낡은 스타일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비 내리는 초가을의 어느날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어두운 스탠드 불빛에 의존해 읽기에는 분위기가 살아 있는 소설이다. 가끔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소리에 놀라고 천둥과 번개, 을씨년스러운 물방울 소리에 놀라며 읽다 보면 어느 사이 안개가 사방을 감싼 새벽이 되는 책. 이것이 <옥문도>의 매력이다.

5 thoughts on “옥문도”

  1. 전쟁이 끝나고 귀환선 안에서 죽어간 전우, 기토 치마타. 그가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죽어가면서 남긴 말, “죽고 싶지 않아..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세 누이동생들이 살해당할 거야.. 사촌이.

  2. 근데 사람들이 죽어갈 때는 별다른 도움이 못 되더라고요. 김전일처럼..☞☜.. 한 명의 죽음이라도 막아보려고 하는 것 보다는 다 죽고나서 추리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3. 주인공의 행동에 합리성이 결여 되어 있는 것이 제일 눈에 띄었어요. 아예 처음부터 치마타씨의 유언을 언급했다면 오히려 경각심을 일으켜 살인을 억제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귀환병 특유의 느릿하고, 허무한 분위기, 될 때로 되라는 식의 방관이 눈에 띄었어요. 사실 이런 분위기가 전후 일본 남자들이 겪었던 정신적 붕괴의 일면이라고는 하지만 마냥 이해하기에는 세자매의 죽음이 덧없었어요.

  4. 누가 범일일까 맞추는 추리가 아니라 왜 그렇게 썼을까….
    그 생각을 하게 하더라…..
    작가가 왜 그랬을까….?

  5. 추리 소설에는 그 나라 劇的전통이 녹아 있다는 말을 상기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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