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lker’s last sigh

친구들에게조차 밝히지 못하는 심각한 괴벽가운데 하나는 대학 동기인 어떤 아가씨의 흔적을 반복적으로 찾아보는 버릇이다. 물론 그녀와 난 공식적으로는 서로의 이름이나 겨우 아는 사이에 지나지 않고 기껏 선심을 써봐야 강의실을 오가며 인사나 나누는 사이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나를 잊었는지도 모르고 애당초 기억할만한 대상으로 인식조차 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찾아보려는 시도를 멈추지 못했다. 이곳 저곳을 탐험하다가 그녀의 어조와 비슷한 글을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문체와 단어를 주의 깊게 살핀다. 혹여 녀석의 패턴이라고 부를 만한 리듬이 문장과 사진에 담겨져 있지나 않을지 눈에 불을 밝힌다.

생각해 보면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오래 전 학과의 익명 게시판에 쓰여진 어떤 글의 주인을 찾아보려는 순진한 시도는 오래지 않아 어떤 술자리에서 그 글에 호응 되는 단어와 문법으로 말하는 한 아가씨를 발견하면서 풀렸다. 하지만 호기심에 관한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는 호기심은 낳는 것은 더 큰 호기심이란 사실 뿐이다.

사실 난 그녀와 개인적으로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고,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년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녀에 관해 알고 있다는 환상이 있다. 이십대 초반의 그녀는 에곤 실레를 좋아했을 것이고, 클림트의 유디스와 자신 사이의 어떤 유사점을 느꼈을 것이다. 그녀가 Goldfish를 좋아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연금술사>보다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더 재미있게 읽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녀가 <맹목>을 읽었다면 이 책에 빠져들었을 테고, 하루키를 좋아하던 21살 여름에서 벗어나 지금쯤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가 한번 그녀는 익명의 존재가 나인지 모른 채 바람이 시원해 지면 병맥주나 한번 마시자고 청한 적이 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당시의 내 문체는 성별이 모호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대학이란 공간을 떠나기 전에 그녀와 맥주 한잔을 마시는 일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술잔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는 비웃음인지, 헛웃음인지, 지루함인지 모를 모호한 웃음을 자주 지었는데 그 웃음이 공격적인 그녀의 태도와 어울리면서도 어떤 때는 숨겨진 관찰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아주 낮은 가능성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이곳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첫번째 블로그에 그녀가 코멘트를 남겼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훈련소에 다녀온 뒤의 바쁜 겨울을 보낸 다음에는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가벼운 전화 한 통화로도 그녀의 근황을 말해줄 친구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나답지 않은 어색한 행동이다.

며칠 전 많은 친구들이 졸업을 했다. 졸업식 같은 것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졸업장을 찾으려 갈 시간이나 겨우 비우는 졸업이지만 다른 친구들이 그러했듯 아마 그녀도 졸업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아침을 열면서 대학을 떠나기 전에 그녀와 병맥주 한 병을 나누면 재미있을 거라는 과거의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나의 호기심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먼 훗날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명함을 교환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끝내 홍대 앞 커피빈이 그녀에게 갖는 의미라든지, 내가 알고 있다 믿었던 그녀의 像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호기심은 늘 이렇게 끝나곤 한다. 마치 그것이 숙명이라고 되는 것처럼.

P.S.
Happy Birthday to me. 이제야 만24살이 되다.

6 thoughts on “Stalker’s last sigh”

  1. //julia
    고마워요.

    //피오넬
    살만 루시디의 Moor’s last sigh에서 따온 제목이예요. 그는 그라나다가 함락될 때 무어족의 왕이 내려다 봤다는 어떤 지명에서 소설 제목을 따왔다고 하더라구요.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옥상 건물에서 사진을 찍은 저 사진 제목을 Stalker’s last sigh로 지어봤어요. 한참 시간이 지나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찾다 보니 딱 저것이 떠오르더라구요.

    참 생일 축하 고맙습니다.

  2. 생일 축하해요!
    저도 그런 괴벽이 있어서인지 무척 공감이 가는걸요. (씨익)

  3. //Morisot
    축하 고마워요. 이런 괴벽이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아서 그런지 매우 기쁜걸요.

    //닭의 비행
    네. 축하 감사드려요. 잘 지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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