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경제학

평소의 나는 내가 사용하는 어조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고리타분하다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순히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다던지, 혹은 프로세스화 되었다는 표현으로 거칠게 응수까지 하곤 한다. 하지만 표내지는 않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냉정한 눈이 나에게도 있다. 다시 말해 고리타분하다는 평가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리타분한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반짝이는 재치와 순발력도 중요하지만 재치와 순발력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매우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세상은 순발력과 재치로 무장한 사람들의 무대가 아니라 수도사의 정열을 지닌 편협한 사람들을 위한 무대다. 재치와 순발력은 단 한번의 실패로 모든 것을 잃는다. 반면 편협한 수도사의 정열을 지닌 사람에게 한번의 실패는 잠시 동안의 은둔을 뜻할 뿐이다. 천재는 절망하지만 범인은 삶 자체가 절망이기에 진짜 절망을 모른다.

언뜻 보면 철학서나 종교 서적 혹은 진지한 수필을 읽고 떠올린 생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생각은 아니 변명은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을 읽으면서 한 생각이다. 사실 존경하는 지인들이나 신뢰를 보내는 Reviewer들의 평판과 다르게 이 책은 재미는 있으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우선 내가 아는 경제학이라는 개념이나 논의의 방향과 전혀 다른 형식으로 풀어간 진행 방향도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경쾌하다는 뉘앙스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물론 낙태의 광범위한 허용이 최소생계수준으로 성장해야 했을지도 모를 인구를 존재하지 않게 만듦으로써 범죄율 자체를 낮추었다는 저자의 생각이나 인센티브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견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내가 지닌 반감의 정체가 낙태의 허용이 생명 그 자체를 경시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발상에 기인한 것도 아니다. 그의 방식이 단순히 범죄학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저변에서 사용될 수 있는 사고 게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난 그의 저작이 불편하다. 그의 저작은 쉽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Yankee style이다. 우아한 고전주의에 젖어 사는 나에게는 있을 것은 다 있지만 가벼운 이런 스타일의 저작은 낯설음 그 자체다.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은 서문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안겨주었는데 <괴짜경제학>은 책장을 넘길수록 공허한 마음이 커져간다. 사실 레빗에게서 어떤 철학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용적인 서술과 연구 방식이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재치와 반짝임을 모르지는 않지만 철학이 부재한 서술은 어딘지 공허하다. 게다가 그의 방식은 사고 실험을 넘어선 적극적인 해결책 도출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괴짜경제학>은 분명 재미난 책이다. 신선하고 재치 있으며 경쾌하면서도 예리하다. 문제의 핵심을 탐구하기 위한 집요한 시도를 너무 감추지도. 그렇다고 너무 드러내지도 않은 채 꾸준하게 이어간다.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기 위한 공저자의 노력과 출판사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 마케팅 전략이 섞여 있음에도 충분히 읽을만한 책이 될 자격을 두루 갖추고 있다. 어쩌면 이책의 제목이 Freakonomics가 아닌 Break a Bias of Criminal Economics! 정도였더라면 주저없이 이책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난 이책을 좋아할 운명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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