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탄생(the Birth of Plenty)

명석한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명석함과 영악함은 백지 하나 차이라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된다. 명석함이 효율적인 일련의 공격과 방어 전략을 통해 드러나는 재치를 일컫는 것이라면 그 밑바탕에는 상대를 제압 혹은 이기겠다는 강력한 동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똑똑한 사람들이 명석해 보이기 위해 품고 있는 이런 영악함이 싫지 않다. 곰보다는 여우가 나은 것처럼, 착하되 무능한 것보다는 영악하되 명석한 것에 쉽게 매혹되기 때문이다.

<부의 탄생>의 저자 번스타인은 이런 박식함과 명석함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명석함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부의 탄생>을 통해 그는 ‘부’가 탄생한 계기를 자세히 다루지만 ‘부’의 본질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한다. 생활 수준의 발전이라는 누구나 수긍할만한 객관적 발전을 ‘부’로 다루지만 ‘부’ 속에 내재된 다양한 가치 문제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일관되게 침묵을 지킨다.

그는 부의 탄생이라는 제목 뒤에 숨어 가장 안전한 위치에서 논의를 진행시켜 나간다. 그가 사용하는 일부 논거들에서 다소간의 억지라는 뉘앙스가 완전히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억지 논거들조차도 자연스러운 논거들과 결합해 탄탄한 구조를 이루며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믿게 만든다.

하지만 굳이 논리적인 구성을 따지지 않아도 이 책은 꽤나 재미난 방법으로 19세기 초반에 시작된 폭발적인 ‘부’의 성장을 다룬다. 주제와 방식에서는 <총. 균 쇠>와 유사하고, 전체적인 서술에서는 갤브레이스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다. 게다가 박식한 저자답게 인용문의 범위가 넓고 비록 직접 인용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참고 문헌의 폭도 상당히 넓다. 무엇보다 공정함과 불공정함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종국에는 neutral한 지점으로 수렴된 그의 판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책의 운명은 항상 같다. 초판을 넘어서는 법이 결코 없고, 학문적으로는 아카데믹하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 받으며, 일반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기에는 진부하고 딱딱한 주제다. 2년쯤 지나면 파격적인 재고처분에 들어가지만 5년쯤 지나면 얄궂게도 절판 되어 구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좀처럼 보기 힘든 빨간 장정을 소유한 이책의 운명은 도서관 속에서 먼지 속에 그 야릇한 몸을 뉘는 것 밖에 없다. 가끔 다른 책을 찾아 지나가는 갈 길 바쁜 길손의 어루만짐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그 속에 담긴 자유 분방한 영역 파괴와 영악함을 인정 받기란 요원한 일이다.

2 thoughts on “부의 탄생(the Birth of Plenty)”

  1. 제 생각이랑 같네요
    방대한 자료에 비해 빈약한 논리가 많이 아쉬웠었는데
    또한 가치를 보는 시각이나 문화권에 대해 지나치게 편협한듯도 했고요
    여튼 공감되는 프리뷰를 읽으니 매우 반갑네요
    잘 읽었습니다

    1. 예. 허술한 논거들이 기묘한 논증으로 뭉쳐 꽤나 단단한 구조를 만드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그저 놀라울 뿐이죠.

      하지만 문화에 대한 편견은 비단 번스타인만이 그런 문제를 가진 것이 아니라 서구의 경제사가 혹은 에코노미스트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편견같습니다. 그렇다고 경제사가들에게 모두가 동아시아 경제사에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구요.

      하지만 최소한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되요. 이 책을 마지막으로 갤브레이스나 킨들버거풍의 경제사에 있어서의 통사적 접근이 사라지고 쉬운 경제학을 표방한 가벼운 책들만 범람하기 시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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