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성배

레베르테의 검의 대가를 읽는 동안 조심스럽게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은 내 삶의 성배는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목표와 지향점을 조심스럽게 개진하도록 교육 받은 탓인지 나나 지인들은 하고 싶은 것. 추구하는 목표에 관해 늘 소극적이다. 우리는 야심차지만 야심이 야욕으로 보이지 않도록, 욕망에 담담한 모습을 보이도록 애써 군자연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현실에 잘 휘어져 목표와 지향점에 이르는 것이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해 버려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랜 고민 끝에 고립된 한 인간으로서 추구하고 싶은 <마음의 성배>를 찾은 것 같다. 대략 3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파리아의 보물>이라 이름지은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등장하는 파리아 신부에 대한 묘한 동경을 품어 왔다. 감옥 안에서 에드몽을 변화시켰던 파리아가 기억이란 수장고 속에 꼭꼭 숨겨둔 그 책들은 어떤 것일까?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욕망하는 것처럼 덧없는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난 이 목록을 욕망한다.

사실 교양보다는 전문지식이 더 중요시되는 시대에 <파리아의 보물>은 더 이상 가치 있는 성배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이 읽어야 할 100권의 책이라든지, 타임 선정 100대 도서등에 실망한 나로서는 지엽적인 지식과 고도로 복층화 된 사고 실험의 구조물이 아닌 사유와 경험이라는 교양의 두 가지 측면에 핵심을 맞춘 제대로 된 리스트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이런 리스트는 너무 버거운 일이다. 나에게는 아직 파리아 신부의 연륜과 절박함이 없다. 나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뿐인데 그마저도 헤세의 <독서가>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달콤한 쾌락의 유용함을 깨닫고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할 따름이다.

또 다른 <마음의 성배>는 45년 이후 70년대까지의 한국의 기업을 다룬 책을 쓰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학교 신문사에서 일하던 시기에 꽤나 많은 자료를 쌓아 놓았기 때문에 첫번째 성배에 비하면 조금 쉬운 일이다. 초창기 기업들을 주제로 기사를 작성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기업의 역사에 관해 조망할 어떤 학문적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있다 하더라도 양극단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기업의 역사에 있어 초창기는 역동적인 모험의 공간에 가깝다. 그들이 창업 공간에서 보여준 기법과 기술의 빼어남은 ‘한국의 재벌’이란 현재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해외의 많은 저술들 역시 한국 기업에서 특수성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일본 기업과의 유사성을 토대로 파악하려 한다. 하지만 이런 유사성을 토대로 우리를 파악하려 노력할 소록 왜 우리가 일본과 다른 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따지고 보면 계열사란 단어와 기업 집단인 그룹, 그리고 재벌. 이 모든 것이 오히려 실체를 가리고 있는 언어가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

(위의 단어는 모두 일본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 언론에 의해 수입된 경우다. 단어가 수입되면서 개념도 함께 수입되었다. 따라서 이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의 시공간에 대해 설명할 개념 어휘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 공간에서 일본 기업과의 유사성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기업집단이 이머징 마켓에서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말은 수긍하지만 보편성에 대한 재정의는 필요하다. 기업의 규모는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마지막 <성배>는 동서양의 무역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이어졌던 동과 서의 무역가운데에서도 대항해 시대와 명은 내가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기이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전문 연구가도 아니고 이 영역에서 갖추어야 할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글은 속된 말로 편집본이 될 확률이 더 높다. 그러나 어쩌면 내게 상아탑의 학자들이 이해하기 힘든 무역에 상업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고. 거래의 이익과 위험에 대한 통찰력이 내재해 있거나, 흘러갈 시간 속에 생겨날지도 모른다.

<마음의 성배>는 단기간에 끝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성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평생에 걸쳐 꼭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다. 물론 개인적인 목표는 사회적 목표에 치여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뒷자리로 밀려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마음 한편에 항상 <마음의 성배>를 담아두는 것은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 위안이다.

2 thoughts on “마음의 성배”

  1. 책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로는 100대 도서같은것에 흔들리기 않게 되었지만 이번 것은 기대되는데요.
    나머지 두가지 성배도 제법많은 시간이 걸릴듯 하지만 기대하겠습니다.

  2. 성배는 일종의 자기 최면이나 다짐 같아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장담조차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써놓고 나면 반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 성배같아요.

    노력해보자고 다짐 중이긴 한데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꿈이라고 이름 붙이면 상황에 따라 요령껏 비겁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오랫동안 적합한 단어를 찾아 헤맸는데 그때 걸려든 단어가 성배인 셈이죠. 꿈과 다르게 성배에는 어떤 의무감이 따라 붙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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