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전쟁기

최고의 편집본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굴드의 <갈리아 전쟁기>는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책이다. 처음으로 산 원서가 이 책인데다가 아마존을 통해 구입한 첫 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이라면야 아무런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이 책을 사기 위해 십대 소년이 감내해야 했던 빈곤을 회상해보면 이 책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당시에 내가 받던 한 달 용돈을 전부 투입해야 만 살 수 있었던 책이었다. 요즘 내가 캐드펠 시리즈와 쇠망사의 나머지 책들을 보며 살까 말까 고민하는 것보다 더 큰 무모함을 요구했다- 아, 한가지가 더 있다. 트랙킹조차 되지 않는 화물이 선편으로 쉽핑되던 그 시기에 여름 내내 하루가 멀다 하고 텅 빈 우편함을 뒤지며 책을 기다리던 소년의 마음이다. 사실 이 마음은 발전된 트랙킹 기술을 자랑하는데다가 하루면 배송이 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변함이 없다. 두 달이 넘게 걸렸던 해외주문 도서를 기다렸던 마음이나, 궁벽한 시골의 작은 서점에 주문한 책을 기다렸던 마음이나, 오늘 배송될 책을 기다리는 마음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사실 갈리아 전쟁기에 관해 무언가를 덧붙이는 행위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정치가가 아닌 군인 카이사르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인 이 책에 관한 리뷰를 쓰는 것은 어딘지 온당하지 않다. 하지만 서평은 아니라 하더라도 가이드라인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 어설픈 것으로 유명한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배운 잡스러운 지식은 모두 잊을 것. 로마사에 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좋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대중화된 로마사는 매우 위험하다. 그녀의 해석은 공정성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매혹에 근거해 있다. 사실 그녀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알게 된 지식을 로마사의 전부로 착각하는 것만큼 무지한 행동은 없다. 그녀는 훈련 받은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학자라면 의당 신경 써야 할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조차 자유롭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자가 아닌 아마추어 작가 시오노는 사료를 멋대로 편삭하는 오류를 거리낌없이 저지르고 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가 고전으로 살아 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상당한 진솔함과 험난한 원정 과정 때문이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은 시오노의 이야기에 녹아 있는 대로 당연히 이길 수 밖에 없었던 손쉬운 원정이 아니라 언제 패배를 당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이사르는 그녀의 묘사대로 선량한 사람이 아니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그의 갈리아 원정은 매우 악랄한 것이고, 그는 기본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기와 위협을 더욱 즐겨 사용하는 정복자다. 하지만 시오노는 이런 점에 애써 눈을 감고 있다. 그녀가 묘사하는 카이사르는 위대함이란 단어로 치장된 허상에 불과하다 . 그렇기에 그녀가 묘사하는 허상은 <갈리아 전쟁기>에 등장하는 진짜 카이사르의 위대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두번째,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또한 잊을 것. <줄리어스 시저>는 정치극이다. 이 희극이 반영하는 정치 세계는 기원전 1세기의 로마가 아니라 셰익스피어 당대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줄리어스 시저>를 기원전 1세기의 로마를 이해하려는 초석으로 삼는 것은 16세기 말엽에서 17세기 초엽의 내란 직전의 잉글랜드의 혼란을 토대로 로마사를 이해하려는 오류를 일으킨다. <줄리어스 시저>에 등장하는 시저는 역사적 인물인 시저가 아니라 역사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입혀진 하나의 이미지이자 시뮬라르크에 지나지 않는다.

세 번째, 좋은 지도를 구할 것. 아쉽게도 국내에 번역된 책들에는 갈리아 전쟁 당시의 부족과 도시, 작전 경로가 기록된 정확한 Gaul 지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개개의 전투 지형도와 포진도가 등고선의 개념과 함께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 경우 갈리아 전쟁에 사용된 전략과 전술을 확연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동맹 세력의 위치와 보급로를 파악할 수 없을 경우, 또 각각의 전투가 벌어진 지형과 강의 위치, 진지의 상태를 알 수 없는 경우 갈리아 전쟁기의 참 맛은 손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카이사르 자신이 애써 구술한 전술적 판단의 정당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여행기가 그렇듯 전쟁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리 정보가 축약된 지도이다. 지도가 존재하지 않는 전쟁기란 속을 채워넣는 것을 잊어버린 음식과 진배없다.

3 thoughts on “갈리아전쟁기”

  1. 앗, 로마인이야기를 읽어볼까 하고 생각 중이었는데 이렇게 혹독한 평가를 듣고 나니 몹시 허탈한데요. 로마 역사에 대해 재미있게 읽어보고 싶은 초심자에게도 몹쓸 책인가요?

  2. 지도가 중요하다는것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책에 간략하게 지도들이 실려있긴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전 의지가 부족해서 뚫어지게 보다 모르겠으면 그냥 넘어가 버렸지만요;;

  3. //morisot
    재미있는 책이냐고 물으신다면 읽기에 재미난 책이 맞긴 해요.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를 정설이라고 굳게 믿게되면 그것 또한 시오노가 그렇게 비난하는 학자들의 오류를 번복하는 것이 되죠.

    <로마인 이야기>에는 명암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초심자용으로는 국내에는 적수가 아예 존재하지 않을 만큼 읽기 좋게 쓰여진 글이지만 로마사에 본격적인 흥미를 갖게 되면 시오노가 얼마나 떼쟁이인지를 알게 되거든요.

    결론적으로 읽기는 하되 fact만 흡수하고 사견(혹은 떼)은 과감하게 잊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보통 사실이 서술되고 맨 뒤에 따라 붙는 그녀 특유의 코멘트가 있는데 이것이 사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거든요. 좀 억지스럽기도 하고.

    에세이는 에세이 답게 읽어주어야 하는데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 읽고 있는 글이 역사 에세이라는 사실을 잊게 되는 함정이 숨어 있는 듯 해요.

    //Julia
    어제 서점에 가봤더니 범우사에서도 새로운 번역판의 등장에 바짝 긴장을 하는 눈치던데요. 지도야 말로 일반적으로 가장 무시되는 부분같아요. 객관적인 지리적 정보는 거의 제시하지 않은 채 평면에 전개된 병력 배치나, 이동로만 보고 문장을 이해하라는 것은 그냥 문장을 읽고 넘어가라는 무언의 협박이나 진배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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